나는 사건도 열기도 없는 생활에서 떨어져 나왔다. 바네사는 나의 모든 쾌락을 고사(枯死)시켰고, 나를 미묘한 환멸에 눈뜨게 했다. 그녀는 나에게 사막을 열어주었고, 이 사막은 일종의 음험한 문둥병처럼 얼룩으로 반점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공부에서 멀어졌다. 나는 점점 더 자주 친구들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이제 바네사와의 정오의 만남에 의해 허리가 끊긴 텅 빈 하루의 일과는 이제 진절머리 나는 것이 되어버렸다. -6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