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Rouge et Le Noir

스탕달 | 옮김 이동렬
출간일 2004년 1월 15일

학부 때, 프랑스어 고급문법 교수님의 추천으로 알게 된 이 책을 졸업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계속해서 기억 어딘가에 맴돌던 제목이 작품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평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니 참으로 비밀스러운 의미를 간직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출간되었을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책은 후대에 이르러서야 진가를 인정받은 것이라 하는데.. 작가가 저 유명한 화가, 반 고흐처럼 살아있을 때는 외롭고 비천한 긴 투쟁을 해야 했으니 불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사전지식 없이 이야기를 접하는 방식을 좋아해서 이 책 또한 그렇게 시작을 했다.

처음에는 배경과 풍경만이 펼쳐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몰입하게 하는 사건들이 나왔다.

 

주인공 쥘리엥 소렐은 가난하고 비천한 농부의 자식으로 연약하게 태어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취급을 당하며 자란다. 농부로서의 능력은 당연히 노동력이므로 쥘리엥은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우연히 먼 친척으로부터 받은 짧은 기간의 라틴어 교육에 두각을 나타낸 쥘리엥은 동네 신부님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라틴어 신약성서를 모조리 암기하는 등 비상한 머리를 인정받게 된다. 성당이 정치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꿈을 갖는다.

신부님의 추천으로 시장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쥘리엥은 그곳에서 시장의 부인, 드 레날 부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시장에게 발각되어 쫓겨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 더 큰 도시로 간 쥘리엥은 입학하기 전, 그곳에 있는 술집에 들어갔다가 젊은 아가씨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그녀에게로부터 연락을 할 수 있는 쪽지를 받게 된다.

후에, 신학생으로서 그 쪽지가 발각되어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계속 신학생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비상한 능력이 오히려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을 경험한 쥘리엥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던 얀세니스트파 교장 피라르사제의 신뢰를 얻게 되고 그가 교장직을 물러난 후, 그의 추천으로 드 라 몰 후작의 행정비서로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뛰어난 머리와 실력으로 후작의 신임을 얻은 쥘리엥은 귀족들이 드나드는 살롱에 출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귀족들의 행태를 보며 그들을 경멸하지만 후작의 딸이자, 살롱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마틸드 드 라 몰양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녀와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과거를 지우고 신분상승의 꿈을 실현시키는 상황의 정점에서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드 레날 부인의 편지로 인해 야망이 부서지자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 권총을 쏜 그는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마틸드는 쥘리엥의 죽음을 끝까지 슬퍼하고 드 레날 부인은 자살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되는 것 같지만 작품을 읽어보면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심리묘사와 아울러,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토론이 상당히 많은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 되고 있다. 큰 덩어리인 불륜과 연애이야기, 자유주의와 왕정복고파의 정치이야기를 과감하고 자세히 다뤄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자신의 비천한 신분과 상황을 경멸하면서도 귀족의 오만함과 행동을 동경 및 경멸하는 주인공은 끝내 재판에서도 자신의 범행의도를 과장함으로써 주저 없이 단두대로 향한다. 그것은 작가인 스탕달의 인생을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뛰어남으로 인해 무시 받는 주인공의 자존심이 고집스럽게 보이는 걸 넘어서 고귀해보이기까지 했다.

초지일관의 자세로 삶을 해석해가는 경멸함이 때로는 자신을,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향하며 불안해하고 낙심하는 그의 마음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탕달이야말로 그런 자세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런 방식으로 무너지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실로 죽음을 불사하는 태도는 어리석음과 관계없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