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집중의 시간

소멸하는 것은 시와 철학, 바흐의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포세는 당신과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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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은 그녀가 배회해야만 하는 장애물이었다. 침묵을 만드는 것은 때때로 아주 세심한 행위이다. 나는 가끔씩 침묵을 만들기 위해 내 산만한 생각들을 종이에 적어 머리를 비운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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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라는 에세이에서 절대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리적 시간이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계가 움직여서 모두가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절대적 시간은 개인에게만 주어진 시간으로 개인의 경험에 따른 것으로 자신이 창조해 가는 시간을 말한다.

엘링 카게가 말하는 침묵은 결국 정호승 시인이 이야기했던 ‘절대적 시간’의 개념과 동일하다. 그리고 유튜버 겨울서점이 ‘피아노를 칠 때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다.’ 라고 말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집중’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소음이라는 것은 나 자신에게, 특별히 현재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존재이다. 소음은 청각적일 수도 있고 시각적일 수도 있다.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형체가 없는, 내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엘링 카게는 소음을 이렇게 이해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감각으로 소음이 흘러들어 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혼자 조용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하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집중’할 수 있는 방법과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글과 영상들을 통해 ‘자기만의 침묵’과 비슷한 개념들을 접하고, 그것을 꾸준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 후에는 단순한 집안일들을 처리하는 시간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엘링 카게가 말하듯 미래에 대한 생각이 사실은 산만한  소음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계획적인 인간도 좋고, 생각하는 인간도 좋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에는 나 스스로를 소음에 노출시키는 꼴이라는 것. 이런 소음 속에 나를 노출시키고 있었다는 것이, 졸업 직후의 나에게 이 책이 가져다준 굉장히 따끔한, 침묵 속에서의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