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9.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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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취미로 하는 이에게 ‘아쿠타가와’라는 이름은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 <라쇼몬>을 통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학 세계를 처음 경험했으나 일본의 젊은 문학가들에게 문학인으로서의 발판이 되어주고 등단의 지름길이 되어주는 ‘아쿠타가와 상’에 대해 알고 있기에 작가의 이름은 늘 친근했다.

그럼에도 이제야 접하게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학 세계는 삶의 과정에 이어 성찰에 이르기까지, 옛날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전례 동화나 민담, 신화처럼 쉽게 읽히지만 평범한 산문의 형태에서 전혀 새로운 환상 문학 등 특정 장르에 구분 되지 않고 써내려감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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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라쇼몬>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으로 그 유명한 <라쇼몬(나생문)>을 비롯하여 열네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단편선이다.

<노년>이라는 단편으로 등단길에 올랐으며 이어 발표한 <코>가 일본 문학의 아버지인 나쓰메 소세키의 극착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가들이 연이어 자살을 하던 시점이어서 일까, 아쿠타가와 역시 지독한 30대를 보내며 신경쇠약과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1927년 35세라는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일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였으며 향후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문학계의 거름이 된 아쿠타가와는 역사, 종교, 자연주의에서 신비 문학, 환상 문학에 이르기까지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문학인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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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른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깊이 성찰한 <라쇼몬>,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다루는 <코>, <마죽>, 본인이 겪은 막연한 불안감을 그대로 표현한 <다네코의 우울>, <꿈>에 이어 아이를 잃은 두 엄마의 이야기 <엄마>를 읽으며, 인간의 추악한 내면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제3자가 되어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다기 보다는 나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이 강한 작품들이다. 인간의 내면이란 때로는 자신이 컨트롤한 방향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정처 없이 어딘가로 흘러가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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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아니라 마지막 단편 <갓파>는 마치 <반지의 제왕>을 처음 접했을 누군가처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갓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아쿠타가와는 환상 문학에서 조차 상상치도 못한 ‘갓파’의 삶을 보여주며 그 속에 넘치는 우리의 부조리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 우리의 삶에 필요한 사상은 삼천 년 전에 다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오래된 장작에 새 불을 댕기고 있을 뿐이리라. – 과학과 문명이 초단위로 발전하고 있는 21세기의 우리들은, 어쩌면 선대에서 이뤄놓은 수많은 본질들을 잊고 그저 겉만 핥아대며 서로가 더 잘났다는 듯 아우성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사회가, 국가가, 역사가… 우리는 점점 더 그렇게 부조리 속으로 빠져드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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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보게된다. 그리고 본질을 마주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아감이 있다. 올바른 나아감을 위해 이런 문학들을 접하고 생각하고 경험하다보면, 잔인하리만큼 건조한 이 시대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유물론자의 시선이 아닌  관념론자의 시선으로 물질적 이상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자유로이 누리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이건 독서 취미와는 관계 없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위대한 고전을 읽으며 삶에 대한 성찰을 이루고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