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들에서 멈짓멈짓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이 소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설을 읽다는 느낌보다는 인터넷 네이트판의 베스트 글들을 모아 이야기로 잘 포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씨가 겪는 성희롱, 출산에 의한 경력단절, 육아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등 여자로써 겪는 어려움들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김지영씨 한사람이 이모든 여성으로써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과도한 설정이었지만, 김지영씨가 느끼는 경험담 하나하나는 주변에서 또는 자신이 충분히 경험해보았을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는 깨달음이 문득 놀라웠다.

그리고, 연신 이 소설이 화제가 된다는 것은 나와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는 반증이 되는 듯하여 안타깝다.
인상 깊은 구절
P. 65

“몇 번 타세요?“ “네? 왜요?” “데려다줬으면 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요?”“네.” “아닌데요. 아니에요. 가세요.”

P. 90       늘 온화하고 여유롭던 남자 친구는 김지영 씨의 작은 변화나 무신경에도 빡빡하게 감긴 태엽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처럼 종종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했다가, 불안했다가, 화를 냈다.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도 만나는 순간만 서로 애틋하고 휴가 기간 내내 싸웠다.       결국 김지영 씨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남자 친구는 알았다고 의외로 담다하게 돌아서 놓고는 휴가 나올 때마다 밤이면 술에 취해 수백 통씩 전화를 걸었고, 새벽마다 자니, 라고 문자를 보냈고, 밤 사이 죽집 앞에 산더미같이 오바이트를 해 놓고는 그 옆에서 쪼그려 자기도 했다. 상가에는 죽집 둘째 딸내미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서 남자 친구 군인이 탈영해 해코지하러 왔더랬다고 소문이 났다.

P. 99       김지영  씨는 식품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면 일단 분야를 가리지 않고 원서를 냈다. 지원한 43개 회사 중 단 한 곳의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조금 규모가 작더라도 내실있고 꾸준하다 싶은 회사 18곳에 원서를 냈지만 이번에도 모두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P. 124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이미 그날 용량의 충격과 실망이 모두 소진됐는지 큰 감흥은 없었다. 더 이상 대표와 선배들을 믿고 따르며 열심히 일만 할 자신이 없어졌는데, 또 밤이 지나 술이 깨고 나니 습관처럼 회사에 나가게 됐다. 예전과 다름없이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을 해냈다. 하지만 열정이라든가 신뢰같은 감정은 분명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