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친한 친구에게 “너 정말 융통성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사전을 뒤져 ‘융통성’이 내가 알고 있는 뜻이 맞는지, ‘융통성 없는 사람’은 무슨 사람을 일컫는 것인지 찾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그 때를 되돌아 보면 그 사전을 뒤져 보는 내 모습 자체가 굉장히 융통성 없는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당시,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선생님 말씀에 거스르는 걸 싫어하고, 친구들에게 공부와 관련된 정보를 나눠 주는 걸 싫어하는, 그리고 규칙을 맹목적을 따르지만 그 이유는 생각지 않았던 때였다.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도 그랬던 것 같다. 존경받는 / 훌륭한 직업인이 되기 위해 눈 감고 귀 막으며 지켜낸 성실함과 직업의식보다 매순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감각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