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1》흔히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작품을 쓰는 작가도 배경이나 소재를 정함에 있어서, 당시 시대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문학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 시대 배경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답습하지 말아야 할 부분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잊어선 안될 중요한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2》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를 시대 배경으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순수한 사랑과 꿈을 꾸던 한 인물의 비극적 일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닉 캐러웨이’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 되는데, 그것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 생동감 있게 끌고 갈 수 있는 요인이였다고 생각합니다.​
피츠제럴드는 물질적 쾌락에 빠져 사치와 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도덕적 타락에 빠진 미국 사회의 나태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닉의 시각이 그러한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지요.
《3》자본주의 사상을 넘어 물질 만능주의로 타락한 당시 사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도 닉이 증권투자업에 종사하기 위해 동부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4》개츠비는 금주령이 내려진 미국 사회에서 밀주업이라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츠비는 작품 속 그 어떤 인물보다도 순수한 사랑과 꿈을 간직한 인물입니다.
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기는 했지만, 모두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함이였지요.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초록빛 꿈이였으니까요.
거대한 부를 통해 시종일관 오만한 모습을 잃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한심한 행태를 보이는 톰 뷰캐넌과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도덕적인’ 닉이 개츠비에게 ‘그 인간들(톰, 데이지 뷰캐넌 부부)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개츠비의 내면을 보여준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5》피츠제럴드는 그의 탁월한 필력과 개연성을 통해 환상과 이상에 젖은 어린 아이같은 개츠비의 모습을  비도적인 모습이 아닌, 위대한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현대 사회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태생이 부자인 톰 뷰캐넌이 자신의 부를 이용해 조지 윌슨에게 갑질을 부리는 장면이나 개츠비가 밀주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비도덕적인 내용 등이 그랬습니다.
최근 갑질로 화제가 되었던 재벌 그룹이 떠올랐습니다.
《6》거의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나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전혀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의 악습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피츠제럴드는 완벽에 가까운 형식으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그려냈습니다.
2018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고, 지금의 사회와 비교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물질적 쾌락에만 초점을 둔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피츠제럴드 본인도 물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개성일 뿐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시 미국 사회의 생생함을 전하는 <위대한 개츠비>의 뛰어난 작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7》<위대한 개츠비>는 단지 미국 사회의 부패와 타락만을 보여준 작품이 아닙니다.
자본과 물질이라는 먹구름 아래에서도 단연 빛나는 소중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지요.
우리가 문학을 접해야 하는 이유,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찬양 받는 이유를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