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 엄마는 페미니스트

부산대 책방 마들렌에 갔다 쏜살문고 시리즈인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업어왔다. 아주 얇고 가벼운 책이라 한 시간도 안 되어 술술 읽고 책상에 올려놨었다. 가을 옷을 챙겨갈 거라며 동생이 주말에 집에 들렀다. 동생은 책상 위에 올려진 책 제목을 보더니 시큰둥하게 어쩌고 어쩌고 말을 했다. 대부분은 ’페미니스트’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혐으로 일반화하는 것,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남녀 간의 싸움이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맞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동생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동생만 잘못된 게 아니었다. 동생은 철저히 대중의 시각으로 대중에 깔려있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이 ‘페미니즘’의 본질이나 의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나에게도 ‘페미니즘’이란 예민하고 감정적인 것이었다. 분명 여성이 당하는 수많은 부당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으면 소스라치며 아니라고 말할 단어.

 

작년과 재작년, 페미니즘에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이 일어났다. 2017년을 페미니즘의 분기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나쁜 페미니스트’ 같은 책들이 연속적으로 나왔다.(이들이 17년에 나온 책은 아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걔 중엔 페미니즘을 가장한 반페미니스트들도 많지만 말이다. 오후에 동생이 페미니스트라면서 어그로를 끄는 사람들이 페이스북 같은 데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상한 남자들 수만큼 이상한 여자들이 있다고 대꾸했다. 이상한 남자들만큼 이상한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주장이 그릇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화두에 대해서도 나는 아주 느린 시차로 반응하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재독하고 있다.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를 재독하고 포스팅을 정리하고 있다. 독서모임에서 ‘아날로그의 반격’을 다룬 후 페미니즘에 관한 책과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인 차이에 관한 책을 다루기로 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조만간 사 읽으려는 계획이다.

 

나는 느린 시차만큼 나무늘보만한 속도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권의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해서 내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한 번 스스로를 지켜볼 생각이다. 내 안에 어떤 태도가 보이는지. 어떤 당당함이 생기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