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누군가에게 정직하고 충만한 용기가 되는 법

부끄럽게도, 페미니즘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내 권리, 내 목소리를 억압당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회가 정한 ‘여자니까’라는 규범의 일부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했기 때문이었고, 흔히 쓰이는 표현에 물음표를 달아보는 대신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Better late than never. 지금부터라도 페미니즘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워보고자하는 욕망이 생겨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신작,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15가지 제안을 소개한다. 아직 결혼계획도, 출산계획도 없지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구체적인 제안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페미니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 혹은 그 사고에서 멀어져버렸는지 자기성찰을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담론보다는 일상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처럼,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부모, 교사, 선배 등 소위 ‘멘토’의 입장에 놓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처럼 본인이 살아온 길을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되짚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유용한 책이다. 이하, 저자가 소개하는 15가지 제안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충만한 사람이 될 것.
“일하는 엄마라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마. 너는 네 일을 사랑하고,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은 네 아이에게도 굉장한 선물이야.”

2. 같이할 것.
“‘도움’이라는 표현은 거부해. 추디가 자기 아이를 돌보는 건 네 일을 ‘돕는’ 것이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아빠들이 ‘돕고 있다.’고 표현하면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고 아빠는 거기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거라고 암시하는 것과 같아.”

7.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정말로 공정한 사회에서는 남자가 결혼 때문에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여자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8. 호감형 되기를 거부하도록 가르칠 것.
“용감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자기 의견을 말하도록, 진짜 생각을 말하도록, 정직하게 말하도록 격려해 줘.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했을 때는 칭찬해 줘. 특히 아이의 솔직한 입장이 하필 곤란하고 인기 없는 의견임에도 그것을 드러냈을 때는 더 많이 칭찬해 줘. 그리고 친절이 중요하다고 말해 줘. 아이가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했을 때 칭찬해 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애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너 역시 다른 사람들의 친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 줘. 자기 것에 대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도록 가르쳐.”

10. 아이의 일, 특히 외모와 관련된 일에 신중해질 것.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거부하도록 강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 페미니즘과 여성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아. 상호 배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여성 혐오적인 생각이야.”
“절대로 아이의 외모와 도덕성을 연결 짓지 마. 짧은 치마가 ‘부도덕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 옷 입기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과 매력의 문제라고 가르쳐.”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끌기 전인 약 30여년 전부터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다. 보수적인 부모님이라면 ‘여자애가 무슨’이라는 반응이 나왔을 법한, ‘우주비행사’라는 내 어릴적 꿈을 단 한 번도 꺾은 적이 없으셨다. 오히려,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다니며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여주곤 하셨다. ’여자니까’ 결혼해서 내조하며 잘 살면 그게 행복이라는 말 역시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결혼은 안 해도 괜찮으니 내 꿈과 커리어를 당당히 추구하라고 하셨다. 집안일에 관해서는, 엄마가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빠는 항상 집안일을 함께 하셨다. 오히려, 몸이 허약한 엄마를 위해 설거지는 당신이 할테니 엄마는 쉬라고 하셨다. 곱씹어보니, 부모님은 내가 감사했던 것보다 내 꿈을 훨씬 더 많이 지지해주셨고, 내가 알았던 것보다 내게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주셨다.

그렇다고 내가 저자의 15가지 제안을 모두 체화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일컬어 부끄럼 없을 사람인가하면 그것은 아니다. 특히 저자의 열 번째 제안, ‘아이의 일, 특히 외모와 관련된 일에 신중해질 것’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레이스 달린 공주풍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본인의 주체적인 생각은 없고, 그저 자신을 여린 소녀로 표현해 남자의 보호를 받고 싶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짧은 치마 혹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싼티난다’고 생각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부끄럽지만 내 과거가 그러하다. 그저, 취향이 달랐을 뿐인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는 나도 ‘멘토’라는 위치에 가게 될 것이다. 그 때, 멘티에게 – 그 멘티의 성별과 무관하게 –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에 구애받지 말고, 본인이 구축한 세계에 갇히지 말고, 차이는 존중하되 차별은 타파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정직하고 충만한 용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