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씨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첫 장이 강렬했다. 주인공이 시어머니께 팩폭을 선사했는데 그 순간 모든 등장인물은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못차린다. 당시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시어머니가 된 것 같아, 몇 분이나 충격에 횝싸여 입을 멍하니 벌리고 스크린 도어가 입을 열었다 닫었다 반복하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소설은 82년생 김지영의 모습을 태어나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 부터 2016년 까지의 모든 삶의 모습을 하나씩 나열한다. 실제로 82년생 여성중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고 한다. 평범한 김지영의 삶의 모습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대면하면 할 수록 무서웠다. 김지영 주변의 남자가 나였고, 나의 주변의 여성들이 김지영이었기에.

주인공 김지영뿐만 아니라 그녀의 언니인 김은영을 보며 나의 누나가 떠올랐다. 친가인지 외가인지은 모르겠지만(비밀) 아들을 더 좋아하는 할머니가 계셨기에 누나는 가끔 불만을 토로했다. 소설속 할머니가 김지영의 막내 남동생만 챙기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중간에 형이 있기 때문에 남자이기 보다는 막내여서 나에게 더 많은 해택이 돌아갔고 누나는 이에 자주 불만…흠흠 아름다운(나에게 불리한) 나의 가족사는 이쯤 접어두자. 나의 누나가 쉽게 떠올랏듯 30대에서부터 20대까지 이 시대의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 공감할 것이다. 아마 본인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차별의 모습이 떠오르리라.

고객사에 외근을 갔을 때 몇몇 남성 직원들과 커피숍에 간 적이 있다. 시답지 않은 여러 이야기가 나오다 당시 3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들을 향해 정확히 단어하나 틀리지 않고 소설에 나온 문장과 똑같은 말을 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어쩌고 저쩌고.. 그 자리에서 가방속의 바늘을 꺼내 그 놈의 입을 꿰맸어야 했으나 별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은 그 때의 내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어머니가 김지영이고, 워킹맘인 나의 팀장님이 김지영이고, 나의 친 누나가 김지영이고, 나의 여자친구가 김지영이고, 퇴근길 지하철의 내 옆에 계신분이 김지영이다. 딸바보인 형의 첫째 아이는 김지영이 아니길 바라는 것은 큰 꿈인 것일까.

김지영씨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모든 김지영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