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모래 구덩이

아베 코보 | 옮김 김난주
출간일 2001년 11월 10일

”아무런 기약 없이 그저 기다림에 길들어, 드디어 겨울잠의 계절이 끝났는데도 눈이 부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구걸도 사흘을 계속하면 그만두기 어렵다고 한다….” (P.204)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P.227)

책을 읽기 시작한 무렵 도무지 소설 속 모래구덩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리저리 뒤져보다 ‘모래의 여자’소설의 배경이 된 돗토리 사구의 사진과 어렵사리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상상은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배경이 그림이 안그려진다고나 할까… .

휴가차 들른 어느 해안가 부락 사람들에게 속아 모래 구덩이에 갖혀버리게 되고, 그 곳을 탈출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돌아오는 현실은 다시 모래 구덩이 속 집에 갖혀버린 남자. .

오랜 시간 끝에 뜻하지 않는 계기로 아무의 제지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탈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는 잠시 모래 구덩이 밖을 나갔다 다시 스스로 모래 구덩이 안의 삶을 택한다. 스스로 개발한 유수 장치가 미련이 남고 그것을 자랑하여야 하는데, 부락 사람들이 딱 그의 청중인 것이다. 도주는 그 다음에 해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소설은 끝이나고, 그 뒤로 그는 최종 실종자 처리가 된다.

오랜 시간 모래 구덩이 속에 길들여지고 그곳에 맞추어 적응되어 살아온 그에게 바깥 세상은 또다른 구덩이 였던 셈이다. .

나도 그랬던적이 있었다.

돈은 벌어야겠는데 회사는 정말 지독하게 가기 가 싫고… 일요일 밤만되면 심장이 떨리고 울며 회사에 노예 아닌 월급 노예로 억지로 출근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일하다 보니 어느날 지인으로 부터 다른 직장에 제의가 들어왔고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애써 현실에 만족하는 척 한동안 못들은 척 계속 다니게 되더란 말이지…

물론 난 소설 속의 주인공과는 달리 그곳에 계속 머무르지도 않았고 기회가 한번 더 찾아왔을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났지만 말이다…

그것이 인간 관계 또는 사회 구성원일수도 우리 삶안에서의 모래 구덩이와 같은 곳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

구약성경의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이집트의 파라오’로 부터 탈출 시키고 광야로 나오게 이끌어준 모세에게 불평을 한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라고 노예 생활을 오히려 그리워 하듯 불평을 한다. .

그것이 노예 생활이라도 꼬박 꼬박 배불리

먹을수 있었던 익숙함이 더 좋았다는 듯이 불평을 하는 것이다. 마치 모래구덩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