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의 체스

흰색 바탕과 검은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체스 판, 그 안에서 각 전략별로 다루는 게임들은 사실 인간들이 겪었던 실질적인 역사적인 시대와도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체스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기분이 들까?

 

 

사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난 후부터 무척 흥미를 가지게 됐다.

조카와 함께 체스를 하기 위해 기초적인 각기 다른 형태의 말과 그 기능들에 대한 것들을 배워나갈 때의 신기함과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바둑과도 비슷함을 느꼈던 흥분을 다시 되새기게 한 책, 더군다나 신예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일인 기업가 프리슈가 자살한 채 발견이 된다.

자살할 이유가 없는 사람,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가정과 자녀, 사업과 심지어 체스에 관한 한 잡지에 기고를 할 정도의 체스광인 그가 무엇 때문에 죽은 것일까?

 

 

그의 죽음에는 각종 희귀한 체스판을 보유하고 소장하고 있던 사람답지 않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이는 헝겊을 기워 만든 체스판과 단추 위에 각 말들의 모양을 새긴 것이 있을 뿐, 그 어떤 유언조차도 발견이 되지 않은 상태다.

 

 

프리슈를 아는 사람이라면 정확한 시계처럼 움직이는 그의 행보를 통해 그가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예측이 가능한 만큼의 철두철미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독일 사람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항상 동료와 하는 체스 게임도 마찬가지-

그러던 어느 날, 한스 마이어란 청년이 체스 판에 대한 훈수를 두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마이어는 자신이 한때 체스에 미쳤었고 그런 만큼 자신의 스승인 타보리와 만난 일과 그를 통해 지독하고도 신비로운 체스 판을 통해 훈련을 받은 일, 각종 체스 게임에서 이름을 알리던 중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스승 때문에 체스를 놓게 된 일들까지를 말해준다.

 

 

관심을 두게 된 프리슈는 결국 그 이야기의 뒤편을 재촉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는데….

 

 

유망했던 두 소년들의 만남, 독일과 독일계 유대인으로서 각종 대회에서 만났고 그 둘은 유대인의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될 즈음 무승부로 판결이 났지만 오히려 유대인 소년이 패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나치즘의 만행들은 지금도 여전히 역사 속에서 증언과 증거, 그리고 그에 대한 독일인들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책임감 있는 행보를 주시하고 있는 이목들과 함께 이 책은 다시 한번 그런 연장선에 있었던 아픈 과거를 통해 그려나간 책이다.

 

 

멋도 모르고 끌려간 수용소에서 죽다 살아난 타보리, 어느 모를 독일인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그 대가로 함께 체스 경기를 벌인다는 설정은 게임에서 패할 때마다 자신의 동족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부터 걷잡을 수없는 혼돈에 쌓이는 과정들이 여전히 심금을 울린다.

 

 

체스가 단순히 즐기는 두뇌게임의 오락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게임을 치르는 방식, 결국 동족의 목숨을 대신해 체스 판에 선 폰을 통해 죽을 각오로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한 유대인의 개인적인 역사는 체스에 몰입하고 그 광기에 빠져서 인간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프리슈란 독일을 대표하는  광란의 폭죽을 그린다.

 

 

자신의 손 하나하나가 체스 판의 폰을 움직일 때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두 명으로 늘어나고 다시 그 배가 되어 목숨을 잃는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찾아다닌 타보리의 목표 또한 마이러를 자신의 폰으로 내세워 다시 마주 보기까지,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이자 악연은 결국 역사라는 바퀴 아래 아픔의 산 현장을 보인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 않지만 그 안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역사 안에서 인종 간의 차별과 광기 어린 행동,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아픔들을 고루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체스 판의 폰의 역할, 폰의 역할을 뛰어넘은 그 이상의 인간 세상의 평화는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