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게 나빠지고 싶어 , 차라리…

공기 도미노 ㅡ 최영건 민음 오늘의 젊은 작가 015ㅡ

 

아침 드라마 , 저녁 연속극 , 막장 드라마 그들이 가진 막장적인 분위기 탓에 이따금 필요에 의해 비유를 들어 언급하지만 나는 아침 드라마나  저녁의 연속극 같은 걸 제대로 본 일이 없다 . 그 시간의 드라마는 내 몫이 아니기에 우연히 재방송 타임에  마주쳐 본 그 장면 하나만을 기억할 뿐 그게 무슨 제목의 드라마인지 ,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하는 계속된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 그저 그런 채로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뭉쳐져 그 시간의 드라마라고 불린다는 게 아마 대게의 사실일게다 . 출연자가 분노하는 장면 , 인물들이 밀약하는 장면 , 서로 궁지로 몰아가는 장면 , 내가 잠깐 스쳤던 드라마의 장면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게 다이다 .

 

이 공기 도미노 ㅡ 라는 책을 설명하자면 , 어쩔 수 없이 토막난 그런 불이해의 드라마를 불러 올 수밖에 없겠다 . 막막하게도 !

 

그래서 책을 읽는게 아니라 아침 드라마 , 혹은 저녁 연속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 매 장면 장면이 익숙하면서도 극적이다 . 그렇지만 뒷 편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무대를 보는 이 느낌은 어쩔까  . 그런 무대라면 그게 무대일까 . 아닐테지 . 극적임이 이미 극을 벗어나 있다면 . 또 현실인데도 그 연속적인 생활감이 없다면 그건 현실일까 무대일까 난 잘 모르겠다  . 하긴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그 조차 어스름한데 설명이나 제대로 될까 싶다 .

 

책 속에 드나드는 인물들이 많다 . 연주 라는 인물로 시작해 백현석이 중요한 것 같다가도 장면은 그들 자식이야기로 미끌어진다 . 원균과 소현 의 발작적인 다툼 , 희미한 존재지만 우왕좌왕하는 듯한 도우미 . 그리고 느닷없이 이어지는 (젊은이들이면서 고용인들인) 문과 성준의 모험같은 비행들 과 그 배경이 되는 연주의 카페와 할머니 복자의 실랑이 .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모른 채 다음 장엔 원균과 부정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스물 일곱살의  해정이 , 해정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찾아온 김손녀 ( 그녀는 백현석네 도우미 같다) . 해정의 버릇없음과 이상한 분노들 . 무기력들 .

 

느닷없이 장면이 바뀌고 또다른 다툼으로 긴장감을 높인다 . 병식과 연주의 문맥이 다른 , 다를 걸로 보이는 지리멸렬한 말 싸움 . 진짜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라는 식의  . 아무 해결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다툼만이 유일한 소통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

이런 방식만이 통하는 관계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 숨은 내가 막히는데 글 속 연주는 한번 제대로 혹은 쎄게 나빠 보지도 못한 채 연약하게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휘둘려 지다가 어이없는 사고로 글 속에서 퇴장한다 .

 

또 한 쪽에선 병식의 예전 동료인 태영이 여동생 진수네 집에서 갈등을 보인다 . 개들과 유모차와 대형마트의 이상한 이해방식 때문에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마구 엉킨다 . 감정의 갑질을 약자로서 받아들이는 게 유일한 자기를 지키는 방식이 된다는 건 화가 나고 상대에게 발끈해 버리고 싶은데 그 자체가 소모적인 일이 될 뿐이란 걸 알기에 포기하는 지점을 그린다 . 우울을 먹고 키우는 제자리 걸음 같은 진수의 말 바꿈 앞에 태영은 그저 이 모든게 지겹다 . 그런 모든 일이 지겹다 .

 

모든 출연진들이 그저 막막한 벽을 향해 서있고 희박한 존재 들부터 차례로 쓰러져버린다 . 쓰러진 채로 거기 그냥 있다 . 존재감이 사라졌는데도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옅은 존재감  . 마치 시스템처럼 . 살아있을 때는 지켜지지 않는 존재성 . 원래있던 공간을 회피해도 놔주지 못하는 남은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는 이상한 반향들 .

 

제목이 공기 도미노 ㅡ인데 나는 그 의미조차 모르겠다 . 지금 음악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이다 . 음악 저 혼자 장렬하다 . 글의 문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공기 중에서 진동하는 악기들만을 집요하게 쫓는 내가 있다 . 그렇지만 공기는 저 혼자 성실하게 어디든 미끄러져 간다 . 저항할 수도 없이 …여기를 미끄러져 간 공기들 , 그것들은 어디를 떠돌다 ,  어디에 당도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