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이유, 현실은 이해??

평소 쿨 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왜냐하면 난 많은 것에 관심이 없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터득한 나만의 생존법이다.

어릴 땐 세상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사람에게도 사물에게도. 거침없이 다가가 그대로 깨진 경험이 많다. 자체 필터링 능력이 부족한 난 어느 순간 관심이 상처로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기 시작했다. 사람의 집중과 관심은 한계가 있다. 나의 큰 외곽에 그것들의 사용하면 나의 중심과 근접거리에 사용할 에너지가 없다.

나의 중심과 정말 소중한 이들을 위해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시작하니 쿨 하다는 말이 나의 수식어가 되었다. 덕분에 나의 삶은 한결 편해졌다.

 

이런 나의 성격은 나의 성향에 맞는다. 많은 일에 후회를 하지 않으며, 지난 일은 잘 잊어버린다. 하지만 하나에 꽂히면 정말 오래간다. 그래서 난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다른 이의 상처도 중요하지만 나의 상처가 최우선이며, 나의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상대방의 상처도 최소한 하는 방법이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게 그 사람의 성향이라면, 다른 이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게 성격이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상처보다는 주위의 상처를 먼저 본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먼저 보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먼저 보기 시작할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작거나 큰 실수를 만든다. 그 크기는 상대방의 성향에 결정된다는 게 큰 단점이며 삶의 오류를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앨리스의 생활방식에서 앨리스, 그녀 혹은 305호 여자는 자신의 상처보다는 주위의 상처를 먼저 봤다. 심성이 착할 뿐이었는데 그 대가는 혹독했다. 10년 동안 문밖에 나오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앨리스는 10년 동안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치유했다. 그리고 지금도 치유 중에 있다.

 

이유는 과거야. 중요한 건 현재고, 현재에는 이해만 존재해……삶의 방식은 다양해. 자신의 삶을 견디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라 선택한거겠지.”   p186″

 

 

수연의 말이 맘에 맴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이 다르다. 다만 나와의 다른 삶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삶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나와 다를 뿐.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과연 사람의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나는 자주 갖는다. 과연 루이스(민석)이 앨리스를 이해했을까. 나의 생각엔 루이스는 사랑하는 앨리스를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부분까지. 앨리스도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해는 삶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이해는 삶을 지속시킨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절반의 은둔자이거나 잠재된 은둔자다. 그리고 누구나 다 결국은 외톨이다. 나 또한 이런저런 이유들도 며칠 동안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내가 숨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감추어 외톨이로 만든다. 오늘날 은둔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확장된다. 반드시 어떤 공간에 숨어들지 않더라고 자기 안에 갇혀 마음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은둔자다. 어쩌면 세상을 피해 숨는 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하고 용기 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사회와 인간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것. 세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도전이자 애정. 여자 또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더 이상 여자의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유를 묻지도 않을 것이다.

p250-251

 

나 또한 사람들과 어울려져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많은 부분이 은둔자이다. 우울해지면 집에서 며칠씩 안 나가기도 하고, 마음을 꽁꽁 싸매고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치유한다. 나의 방식으로. 주위사람들은 기다려준다. 내가 스스로 치유하고 나오기를.

앨리스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 사회와 소통하면서. 출근을 해야 하는 월요일 새벽에 책을 덮으면서 피곤함도 피곤함이지만 기분 좋은 강한 여운이 남아 좋았다.

다른 이가 나와 생활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이란 이름의 상처를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나 역시 받을 수 있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