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봄이라는 계절탓인지, 표지부터 산뜻하게 눈에 딱 들어오는 책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고 싶을때 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꼭 보내주겠다고 하는 ‘도토리 자매’.

처음에는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사람들에게 메일 답장을 보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가 중심인 책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그 부분이 핵심이 아니였다.

 

둥글둥글 귀여운 이미지가 느껴지는 “도토리 자매”라는 이름이지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아끼는 사람들을 잃었던 상처를 안고 둘이서 살아가는 ‘도토리 자매’.

활발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결혼은 싫지만 연애의 감정은 좋아서

남자친구가 끊이지 않는 언니에 비해 동생은 여러가지고 닫혀 있다.

사람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언니는 그렇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치유하고,

동생은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것으로 치유한다.

물론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서 동생이 언니보다 더욱 상처가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동생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모르는 익명의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아서 알게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치유가 될 수도 있는것처럼

동생은 언니가 여행을 떠나서 보내온 메일을 통해 조금씩 더 밖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도토리 자매’로 답장 메일을 보내서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것처럼

동생도 똑같은 방법으로 점점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동생은 조금씩 언니와 함께 여행도 떠나고,

여전히 도토리 자매로서의 답장 메일도 보낸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도토리 자매’의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게모르게 치유되는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 자 이제 치유 시작이야’ ,’빨리 치유해야돼’ ,’ 빨리 밖으로 나가야돼’ 이렇게 무조건적인 부담감보다는

자연스럽게,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용기와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것이다.

 

얇은 책이지만 천천히 넘기면서 읽기에도 좋았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한국을 여행하는 장면이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무엇인가 마음에 있는 것을 털어놓기만 해도, 누군가가 아무말 없이 들어주기만해도 괜찮을 때가 있다.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를 전혀 모르는, 그래서 내 걱정으로 그 사람이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을때가 있다.

이럴때 나에게도 ‘도토리 자매’ 가 있다면 참 좋겠다.

책 속의 인물이 아니라, 정말 어딘가에 ‘도토리 자매’ 같은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