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워크 공장장 칼뉴포트씨 , 다음은 어디로 이동 할까요 ?

칼 뉴포트 | 옮김 김태훈
연령 15세 이상 | 출간일 2017년 4월 1일

딥 워크 ㅡ 칼 뉴포트 ,

 

그들은 생산성을 증명하며 밥값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이 목표를 구성하는 요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 가령 높아진 h지수나 수리를 마친 모터사이클을 증거로 제시할 수 없다 . 그래서 이 간극을 극복하려고 많은 지식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던 최후의 시대인 산업 시대로 회귀하는 듯 보인다 . 오늘날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 많은 지식노동자들은 당혹스러운 환경에서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생산성을 말해주는 오랜 정의에 기대고 있다 . ㅡ본문 64 쪽 ㅡ

 

이런 태도는 몰입을 저해하는 많은 행동들이 만연하는 또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 항시 이메일을 보내거나 답하고 , 끊임없이 회의를 잡아서 참석하고 ,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인스턴트 메신저로 말을 보태며 , 개방형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들려주는 등의 행동은 공개적으로 분주한 모습을 드러낸다 . 분주한 모습을 생산성의 대리 지표로 삼으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위해 이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   ㅡ 본문 65 쪽 ㅡ

 

장인의 세계에서는 딥워크와 좋은 삶의 연관성이 익숙하고 흔하다 . 매튜 크로포드는 ” 수작업을 하면서 세상에서 자아를 확고하게 실현하는 만족감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해준다 . ” 라고 설명한다 . 우리는 그의 말을 믿는다 .

그러나 지식 노동으로 주의를 돌리면 이 연관성이 흐려진다 . 문제의 일부는 명확성이다 . 퍼러 같은 장인은 정의하기 쉽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에 대응한다 . 이런 불균형은 목적을 추구할 때 유용하다 . 지식 노동은 이 명확성을 모호성과 바꾼다 . 그래서 지식 노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 서로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

 

심하게 말하면 모든 지식 노동은 직무에 따라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차트만 달라질 뿐 파워포인트와 이메일을 다루는 것으로 귀결 된다 .  퍼러는 이 단조로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 정보 고속도록와 사이버 공간의 세계는 내게 냉기와 환멸을 남겼다 . “  ㅡ 본문 75 쪽 ㅡ

딥워크 공장장 칼 뉴포트님 , 그러니까 다음 일은요 ? ^^

 

 

누구나 한번은 겪어 보지만 누구도 단 한번만 겪지는 않는 그런 일이 있다면 , 그건 뭘까 ? 나는 요즘 흔한 말로 권태에 빠져있다 . 권태에 빠진 나머지 죽을 수 있다면 , 진짜 죽을 수도 있을 만큼의 지독한 권태(그런게 있겠냐 ? 있었음 권태로운 자들은 진작에 땅 속이 아니라면 소파씨의 아파트에 * 있겠지 ?) ㅡ 극한 매너리즘을 넘어선 강도 높은 그 권태 또는 나태 말이다 .

 

또는  한계라고도 쓰고 읽고 듣고 말하기도 할게다 . 영화를 보다 중간에 꺼버린 것도 여러 편이고 , 찝쩍대기 수준으로 펴서 몇 줄만 훑다 덮어 버린 책도  또 수두룩이다 . 머리를 감으러  욕실에 들어 갔다가 긴 머리가 성가셔져선 잡히는대로 싹둑 자르곤  뒷정리도 않고 나와 버렸다 . 그 너저분하고 생기 빠진 머리칼 뭉치를 , 보기를 내 집 욕실이 아닌 미용실 바닥의 발에 채는 머리칼 쯤으로 보고 있다 .

 

아, 아, 언제고 내가 해야할 일들이다 .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 지금의 마음이 몽땅 닳아 빠진 나는 지시문을 잃은 로봇이거나 , 최소한의 인간 흉내나 내는 태엽 인형일게다 .

그러므로 이 글은 태엽인형이 기어코 쓰는 리뷰가 되는 셈이 될까 ? 한계치 만큼 태엽을 꼭꼭 감아두었는데도 자주 그 시간을 초과해선 귀찮게 다시 감게 만든다 .

 

어쩌면 딥워크를 읽기 전에 딥씽크(?)를 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 어떤 면에서 해석하자면 , 글 속의 저자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다르게 하고자 하는 몰입의 상태 중 가장 순수한 상태에 내가 바로 놓여져 있는 건 아닌지 , 하는 의문이 든 까닭에 말이다 . 단 목적없이 순수한 텅 빔의 상태 ( 아무 생각 없슈 ~)를 그리 불러도 좋다면 말이지만 .

 

다른 ,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 머릿 속엔 세입자도 잘 들지 않은 빈 방이 테마 별로 아주 많다 . 대게는 소설가들이 만들어 낸 주인공들이 더러 살고 있는데 , 그러므로 세 (계약서는 있고 ?)는 따로 받을 수도 없다 . 다만 내가 원래의 집주인인 까닭에 예고없이 그들을 마구 몰아 내 버려도 아무도 뭐랄 사람도 없다 .  그걸 몰입을 위한 빈 방으로 불러도 좋다면 . 나는 진작에 세입자들로 인해 부자가 되었을 텐데 . 안타깝게도 그들은 형체도 모습도 없는 상상 속의 산물들일 뿐이니 내 안타까운 망상은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

 

이 책 전에 읽은 책이 같은 출판사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ㅡ 김대식 ㅡ 였기에 , 뭐랄까 좀 제대로 된 문장이나 질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신청을 했었다 . 하지만 역시나 일단 의욕이 먼저다 . 읽고자 하는 것도 , 찾고자 하는 것도 , 삶의 목적이 바로 서 있어야 제대로 된 것들을 주울 수도 꺼낼 수도 있단 생각에 일단 마침표 탕탕탕 .

 

소설이 무료하면 딥워크를 읽었다 . 딥워크가 지루해지면 (이건 좀 다른 지루함인데 , 몽상으로 빠져들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지루함이랄까 ! ) 다시 다른 소설로 테마 별 방들처럼 방을 옮겨 다녔다 . 이 김에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만 할 게 아니라 , 진짜 돌아다니기를 좀 해야겠다 .

 

칼 뉴포트는 자신의 일에 있어 완벽을 추구할 수 있는 상태로 자주,  쉽게 가기 위해서 딥워크라는 이름의 방을 만들었다 (언제 ? 어디에 ? 진짜 ? 신흥 부동산부자?) . 덕분에 이 책을 접하고 읽게 될 독자들은 그에게 소박하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 세상엔 실물이 없지만 , ( 더러 있기도 하겠다 ) 자기만의 방* 을 만들어 뭐든 몰입의 경지에 빠질 수 있다는 친절한 분양자이자 공동 입주자 대표가 바로 그이니까 말이다 . 그럼 이제 나는 현실의 욕실 정리를 위해 자릴 털고 일어나본다 .

 

* 이치은 장편 소설 제목 ㅡ권태로운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ㅡ 를 말함 . * 덧 ㅡ 이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이미 세들어 살고 있음 ㅡ 주의 ! ** 자매품 소설가의 방 , 타인의 방 ㅡ도 절찬리에 분양 중 ! ㅡ주의 !!

 

(이 리뷰는 민음 북카페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