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배우는 인간조건

헤밍웨이는 나에게 있어 낭만 그 자체이다. 헤밍웨이 만큼이나 감정선을 쉬이 내보이지도 않고 언어를 절제하여 사용하는 작가에게서 낭만을 느낀다는 것이 어쩌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하나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전장을 찾아다니던 그가 써낸 책들에는 항상 좋은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 없이 교차하는 삶과 죽음을 통해 헤밍웨이가 뼈저리게 배운것이 모든 삶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간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지만 전장을 오가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모든 인간을 아우르며 공평하게 주어지는 ’죽음’인 것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그려낸 헤밍웨이는

“나는 이 소설이 비극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았다. 삶이란 한 편의 비극이라고 믿고 있고 오직 한가지 결말로밖에는 끝날 수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말마따나 ”오직 한가지 결말로밖에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헤밍웨이는 잘 알고 있지만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을 충실히 살 준비를 한다. 비록 그 앞에 또 다른 전쟁터가 놓여있다 할 지라도.
마지막 이유는 그의 더할나위 없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에는 시인 뺨치는 시적 장치들, 상징이나 비유등이 아주 점잖게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덕분에 단 한줄의 군말도 사족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소설은 전쟁소설 혹은 사랑소설 이라 일컬어지지만 나는 헨리가 겪는 전쟁의 참상과 셰익스피어 작품들 만큼이나 비극적인 둘의 사랑이야기 보다도 이 작품을 통트는 헨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가장 흥미로웠다. 각 장에 따른 플롯의 흐름과 함께 헨리가 점차 변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자신의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헨리가 점차 자신의 존재에 의의를 가지기 시작하고 설령 그것이 데카르트를 부정하는 것이라 해도 그 의의에 충실한 모습들은 나로하여금 존재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존재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존재의 연장선상에는 어두운 종말을 고하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또한 잊지 않게 해주었다.
타인의 존재가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된다면 과연 그것은 행복의 시작일까 행복의 끝일까? 캐서린의 죽음으로 먼 이국에 혼자 남겨진 헨리는 어차피 한가지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그의 인생의 결말을 가만히 기다릴 힘이 남아있을까? 이러한 점을 놓고 볼때, 이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삶들이 죽음으로 귀결되기는 매 한가지라 하더라도, 그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한 논지는 전혀 나와있지 않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죽음이 단지 비극이라는것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헤밍웨이 하면 당연히 그의 반전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참상을 다욱 깊이 알고자 전장을 찾아나선 그에게 경외심마저 느낄 수도 있는 한편 그런 그였기 때문에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이 소설에서 그의 확고한 반전의식은 여러 장면들을 통해 나온다. 겁먹은 아군의 총에 죽는 부하라던가 이탈을 근거로 적군으로 오인받은 헨리 역시 총살의 위함에 처했었으며 몇몇 대화 속에서는 전쟁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대적 장치 외에도 바클리는 작은 골반이라는 태생적 구조로 죽음의 장치를 한가지 더 가지고 있었음을 보면 헤밍웨이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정말 엄청나게 강조하고 싶었음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그의 소설에서 늘 비슷하게 강조하는, 전쟁에 참여한 (지휘자는 논외로 하고) 이들이 각자 나름의 정의와 사명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점이 난 늘 굉장히 오묘하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큼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드는 그 이념이라는 것과 생각이라는 것은 늘 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전쟁이라는 비극을 낳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헨리가 오로지 바클리와 사랑을 나누고 먹는 것에만 앞서 말한 삶의 의의를 두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헤밍웨이는 인간의 이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것인지 또한 보여주고자 했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