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첫문장-

책 후면의 소개처럼 ’한 남자의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이야기 인줄만 알고 인과만을 좇아 읽어 내렸음이 못내 아쉽다. 케말의 삶은 터키, 70년대, 상류층 등의 요소들을 배경으로 퓌순이라는 핵에서 마구 뻗어나가는 마인드맵 같았다. 그 그룹핑 안에서 좀 더 다채로운 관점과 넓은 시야로 읽고 좀 더 천천히 곱씹어 읽었더라면 좀 더 일찍이 케말을 이해하고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행복하게 삶을 (그리고 퓌순을) 사랑했는지 알았을텐데.

사실 다소 뒤져있는 터키 사회의 문화와 당시의 인식들은 말 할 것도 없이 진부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퓌순과 관련된 물건 또는 장소로부터 치밀하게 뻗어나간 파노라마임을 생각하면 또 색다르고 재미있게 느껴짐이, 오르한이 얼마나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또한 읽는 내 답답하고 궁굼했던 것이 퓌순의 심리였지만 애초부터 퓌순의 감정 따위야 중요하진 않았으리라. 말대로 이것은 그저 케말의 이야기이고 케말이 얼마나 또는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금도 이스탄불 어딘가에서 솟아있을 박물관은 그의 이야기를, 퓌순을 사랑하는 삶을, 오롯이 영위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순수하고 솔직한 케말의 사랑방식이 처음과 다르게 다 읽고 나선, 내 눈엔 무척이나 애틋하고 짠하게 여겨졌다. 주위의 인식과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 또한 기꺼이 내려 놓으며 결국 남들의 동정을 사기까지에 이르지만 그는 한사코 자신이 행복했다고 올곧게 말한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인생을 사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남들의 눈에선 그의 ’시간’이 처절하고 미련해보였을지 몰라도 퓌순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한 ’순간’들로 점철된 그의 인생이, 더불어 이렇게 진솔하게 또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의 삶이 제법 멋지다고 생각했다(역시 아름답다 말하긴 어렵지만). 나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으로 연속성이 주어지며 어떤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는가.

적어도 지상 위의 역사가 사랑에서 시작되었듯이 케말도 사랑을 함으로써 그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기록하고 전시함으로 대대로 역사가 될 것이다. 오늘도 이스탄불 안에서 퓌순을 사랑하고 있을 케말을 나 또한 기억하며 그의 행복했던 삶들을 존중하고 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