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작가의 책은 단편소설 <가짜 팔로 하는 포옹>밖에 보지 못 했다. 사실 그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뭔가 겉돌다가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볍다 싶기도 하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잠깐 멈추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는 정말 좋았다. 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도 무언가 넘쳐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전엔 뭔가 좀 쑥스러운 사춘기 소년 같은 분위기였다면 이번엔 섹시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성숙하고 우수에 가득 찬 남자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고, 내 얘기도 다 털어놓고 싶은 그런 남자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화성이라는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는 길은 무척 멀게 느껴지겠지만 돌아오는 길은 훨씬 가까울 것이다. 수개월이 걸린다고 해도 떠날 때보다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클 때는, 떠나온 곳이 몹시 그리울 때는, 돌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의 슬픔이다. 송우영은 그런 슬픔이 어떤 종류의 슬픔일지 궁금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의 슬픔은 이제 잘 알게 됐다.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슬픔은 잘 알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는 이제 돌아갈 수 없고, 어머니의 부재는 그 시간을 통째로 뒤덮을 것이다. 곧 기쁨으로 변할 수 있는 슬픔이란 온전한 슬픔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곧 슬픔으로 변할 기쁨 역시 온전한 기쁨이 아닌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시는 코미디 무대에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송우영을 감쌌다.

문장도 훨씬 날이 서고 예리해서 전보다 훨씬 크게 내 감정과 내 생각을 파고들었다. 좀 더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은 글에 괜히 나 혼자 ‘작가님 응원합니다~’하고 외쳤다. 나도 아직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늘 작가들을 존경한다.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솔직함. 그것 없이는 절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나에겐 아직 그런 용기가 많이 부족하다. 용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표현하는 능력은 더욱 부족하다. 어쨌거나 내가 느끼기에 김중혁 작가님이 전보다 그런 용기가 더욱 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주제 넘은 추측을 해본다.

우연히도 요즘 책을 통해 죽음을 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자살을 보고,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을 통해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보고,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소멸로 비유되는 죽음을 보았다. 죽음에 대해 이렇게 오랜 시간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 인간으로 지구에 존재하게 되고 다시 소멸해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같으면서도 참 다르다. 어떻게 와서 어떻게 가는지가 말이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어떻게 갈 것인가. 잘 가기 위한 여정.

자살로 소멸하고 싶지도, 질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소멸하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의 송우영이 농담이 되고 싶은 것처럼, 이일영이 자신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던 우주에서 떠도는 것처럼, 나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소멸하고 싶다. 그게 어쩌면 글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글로 소멸하고 싶어서 계속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평생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긴 하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저는 어디에 살 건지 정했습니다. 저는 말 속에 살 겁니다. 말 중에서도 농담 속에서 살 겁니다. 하나님은 농담을 거의 안 하시지만, 음, 기억나는 게 없긴 하죠? 하나님 농담만 따로 묶어서 책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농담 속에서 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형체는 없는데 계속 농담 속에서 부활하는 겁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농담에서 또 살아나고, 평생 농담 속에서 사는 겁니다. 형체가 없어도, 숨을 못 쉬어도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사라지지만 글 속에 존재한다면.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이 생을 잘 마감하게 되는 것 아닐까.

제목과는 다르게 조금은 무겁고 깊게 생각하게 되는 책. 하지만 남는 찌꺼기들은 없는 깔끔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