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보다는 느낌만 남는

♥어둡고 쓸쓸한 날들의 평화
소설의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간결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 든다.  아버지를 미워하다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나 꼽추란 멍에를 안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대할 때 주인공의 심성도 담담하지만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이런 단순한 논리로 작가를 상상해보면 조금은 까탈스럽지만 정적이고 따뜻한 심성이 아닐까.

♥이제 나무묘지로 간다
주인공에게 수목장 이야길 꺼냈던 그녀를 성인이 되어, 인간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란 까페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그는 청소년기 시절, 침묵을 자학하고 죽음보다 심각했던 영혼이 휘청거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데, 그리운 듯 아닌 듯 애매한 그 심경을 난 문득 알 듯하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그의 아버지 유언이 ‘책 한 권에 의해 인생이 변화 받았노라고 떠벌리는 인간들과는 상종하지 말아라. 그들은 언제 너를 책 한 권 정도의 값어치로 팔아넘길지 모른단다’였는데 이는 배신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도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서일까.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의 과거가 술집 작부였단 걸 알아버려서일까. 그의 독백은 너무나도 어둡고 염세적으로 흘러 곧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위태로워 보인다.

일견 뭔가 깊은 뜻이 있어보이는 제목인 추억의 속도란 표현이 별로 감흥 없이 지나쳤다. 다시 되돌아 보아도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주인공이 절필낙향한 작가로 나오는데 앞의 단편들처럼 우울하고 어두운 내면을 드러낸다. 또한 그 이면에는 버림과 배신 그리고 외로움이 함께 숨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각각의 단편들이 다 다른 소재로 쓰였음에도 읽다보니 한 인물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함성호 시인이 작가를 평하길 -줄거리의 개념이 성격의 개념 속에 녹아 있다-라고 했는데, 요 표현이 말이 이상하다싶으면서도 딱인 듯하다. 정말이지 읽고나서 줄거리는 거의 기억되지 않고 그 느낌만 남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