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

원제 Die Box (Dunkelkammergeschichten)

귄터 그라스 | 옮김 장희창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5년 5월 1일 | ISBN 978-89-374-3175-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5x210 · 256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실험적 자전 소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꿰뚫어 보는 마술 상자 카메라

그리고 흑백 사진으로 남겨진 귄터 그라스의 가족사

 

귄터 그라스의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해 각자를 지키며 수다를 떤다.

이 책은 아버지의 책 속 과거를 다시 소생시키는 능력에 관한 은유이다.

—《디 차이트》

 

“이야기는 마치 동화처럼 시작되었지.

옛날 옛날 한 사진사가 살았어.”

―본문 중에서

 

★귄터 그라스가 직접 그린 삽화 수록

편집자 리뷰

한 아버지가 있었다. 노인이 된 그는 어느 날 맛있는 요리와 술을 준비하고, 이제 어른이 된 여덟 명의 아이를 한자리에 모은 후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어린 시절 사건들과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에 대한 기억을 거리낌 없이 불러내게 하는 놀이를.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버지와 그의 여자들, 그리고 그들 곁에 항상 존재했던 여인, 마리가 있다. 마리는 언제 어디서나 박스 사진기로 스냅 사진들을 찍었다. 그 흑백 사진 안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히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되는 미래의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귄터 그라스가 2008년에 개인적인 가족사를 성찰하며 써 내려간 실험적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치중하느라 가족, 특히 자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작가 자신의 회한이 진하게 묻어 있는 작품이다.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가정사가 하나둘 드러나는 가운데 작가 특유의 동화적 문체, 환상적인 작풍이 빛을 발한다.

 

 

■ 두 번의 결혼, 두 명의 여자 친구, 그리고 여덟 명의 아이……

바깥일에 집중하느라 가족을 도외시했던 아버지의 회한을 예술로 승화한 소설

 

생전에 글과 그림, 음악과 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내놓았던 귄터 그라스. 그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외부의 부조리에 각주를 다느라 정작 사랑하는 가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적이 많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낱낱이 고백한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2006년에 내놓고 나서 그는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 대상, 즉 가족, 특히 자식들에 대한 회한을 소설에 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암실 이야기』이다.

타고난 이야기꾼 귄터 그라스는 『암실 이야기』에서 기발한 실험을 한다. 화자인 아버지가 여덟 명의 아이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각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한다는 설정을 한 것이다. 아버지의 집에서 시작해 차례차례 자식들 각각의 집에서 총 아홉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맛있는 요리가 차려진 식탁에 모인 아이들은 기탄없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의 눈이 아닌 아이들의 눈으로 가족사를 회상하게 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색다른 시도인 셈이다.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을 둘러싼 복잡한 애정 관계, 책 속에 파묻혀 있느라 한없이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의 모습, 마지막에야 밝혀지는 가족의 비밀 등이 귄터 그라스의 실제 경험담인지, 꾸며 낸 허구의 이야기인지 헷갈린다는 것이 『암실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묘미이다. 또한 설정상 장성한 자식들이 모인 자리인데도 일부러 아이 같은 말투를 써서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전작 『양철북』 등에도 잘 드러나 있는 귄터 그라스의 주특기이다.

 

 

■ “그 박스 사진기는 일어났던 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았으니까…….”

인생의 뮤즈 마리와 마술 상자 카메라를 매개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스토리텔링

 

이 소설에는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아 전달하는 뮤즈 마리와 그녀의 박스 사진기이다. 이 책의 원제인 ‘Die Box’, 즉 ‘박스’는 바로 이 박스 사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리아, 마리 아주머니, 그리고 특별히 애정을 담아 마리헨이라고 불렸던 여인은 평생 아버지 곁에서 그와 그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박스 사진기에 담았다. 아버지의 연인은 아니었으되 그에게 가장 특별했던 여자, 마리. 마리 캐릭터의 실제 모델은 1950년대 중반 이후 그라스와 함께 작업하며 그에게 여러 작품의 소재와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마리아 라마로, 그라스는 이 책을 그녀에게 바치기도 했다.

마리가 아그파 사에서 나온 구식 상자 카메라로 찍은 스냅 사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담겨져 나왔다. 박스 사진기는 모든 것을 투시하고, 소원을 들어주고, 미래를 내다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 낡은 박스 사진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만나는 것이다.

 

“바로 그거였어, 꼬맹이 나나야. 우리의 마리헨은 자신의 박스를 믿었던 거야. 왜냐하면 그 박스는 일어났던 일, 앞으로 일어날 일, 그리고 그 밖에 사람들이 소망하는 일, 예를 들면 장벽이 무너지는 일 같은 걸 알았으니까…….” ―192쪽

 

이 박스 사진기의 주인인 마리 또한 “나의 박스는 하느님과도 같아. 지금 존재하고, 옛날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모든 걸 볼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박스 사진기는 석기 시대로 가 보고 싶다거나 비행 자동차를 타고 지붕 위를 날고 싶다거나 하는 아이다운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고, 아빠가 자상해지면 좋겠다거나 부모님과 함께 회전목마를 타면 행복하겠다는 조금은 슬픈 소망을 들어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미래의 연인을 알려 주기도 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것을 미리 보여 주기도 한다. 소원을 들어주고 미래를 예언하는 마술 상자, 즉 박스 사진기는 귄터 그라스의 예술혼을 상징하는 물건인 것이다.

 

 

■ 타인의 눈에 비친 작가의 모습을 스스로 묘사하는 대담한 도전

누군가의 남편이자 연인, 누군가의 아버지로서의 귄터 그라스를 만나는 기회

 

『암실 이야기』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귄터 그라스의 10~30대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혹은 연인)이자 아버지였던 귄터 그라스의 중년과 노년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는 개혁주의자였던 아버지, 종교를 포함한 모든 도그마를 증오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식들이 세례를 받기를 원했던 아버지, 언제나 혼자 입식 책상 앞에 서서 올리베티 타자기를 두드리며 글 쓰는 일에만 몰입했던 아버지, 얼떨결에 전(前) 아내의 새 연인과 동거하는 신세가 되어 집을 쪼개 쓰는 일을 감수해야 했던 아버지,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고 자식들을 낳았으면서도 결국에는 혼자 있기를 원했던 아버지……. 이 아버지가 귄터 그라스의 실제 모습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에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묘사된 아버지 캐릭터를 통해 가족 안에서 귄터 그라스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객관적인 시점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귄터 그라스는 이 책을 통해 내면에 간직해 온 가족에 대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일을 기꺼이 감수했다. 『암실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한 사람의 일생을 오로지 업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지 돌아보고, 위대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왜 그렇게 변덕스러운가? 아이들이 부모님 사이에서 무엇이 일그러져 버렸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자 마리 아주머니가 속삭여 준다. “그건 사랑이야.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걸 만들어. 하지만 그것에 반대하면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거야. 사랑은 왔다가 가는 거야. 사라지고 나면 고통스럽지. 하지만 이따금 죽을 때까지 남아 있기도 해.” 마리의 입을 빌렸지만 이건 명백히 귄터 그라스의 발언이다.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로서 아버지임을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아버지의 자격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에만 몰두했던 작가는 이렇게 미안함을 토로한다. (중략) 귄터 그라스는 갔지만, 그가 예술혼으로 빚어 놓은 가족애는 장난기 섞인 어조 저 뒤쪽에서 애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품 해설」 중에서

목차

홀로 남겨진 것

플래시도 없이

기적과도 같이

뒤죽박죽

소원을 말해 봐

되돌아보는 시선으로

스냅사진들

금지된 것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작품 해설

작가 소개

귄터 그라스

1927년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열일곱의 나이로 히틀러의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되어 복무했고,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농장 노동자, 석공, 재즈 음악가, 댄서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과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이후 글쓰기에 눈을 돌려 1954년 서정시 경연 대회에 입상하면서 등단했다. 1958년 첫 소설 『양철북』 초고를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 집단인 47그룹 모임에서 낭독해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부터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에 『고양이와 생쥐』(1961), 『개들의 세월』(1963)을 발표해 『양철북』의 뒤를 잇는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76년 하인리히 뵐과 함께 문학잡지 《L’76》을 창간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넙치』(1977), 『텔크테에서의 만남』(1979), 『암쥐』(1986), 『무당개구리 울음』(1992), 『나의 세기』(1999) 등을 발표했고, 1995년에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 『또 하나의 다른 주제』를 내놓았다. 1999년에 독일 소설가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에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었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 『게걸음으로』를, 2003년에 시화집 『라스트 댄스』를 발표했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무장 친위대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에는 그 후속편으로 여겨지는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4월 1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장희창 옮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독서 평론집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귄터 그라스의 『양파 껍질을 벗기며』(공역), 『암실 이야기』, 『양철북』, 『게걸음으로』, 『나의 세기』(공역), 레마르크의 『개선문』,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괴테의 『색채론』, 『파우스트』,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안나 제거스의 『약자들의 힘』, 베르너 융의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 카타리나 하커의 『빈털터리들』, 부흐홀츠의 『책그림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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