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

원제 Beim Häuten der Zwiebel

귄터 그라스 | 옮김 장희창, 안장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5년 5월 1일 | ISBN 978-89-374-3174-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5x210 · 576쪽 | 가격 25,000원

책소개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행동하는 독일의 양심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거인”

귄터 그라스의 뼈를 깎는 자기 고백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적 작품

 

귄터 그라스는 역사의 공포를 뚫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

유머와 우아함만으로 악마들을 이겨 낸, 독일 문학의 위대한 댄서였다.

—살만 루슈디

 

“나는 불명예에 대하여 그리고 그 뒤를 절룩거리며 따라오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기록하기로 한다. 코를 킁킁거리며 뒤를 쫓으면서

‘왜’라고 말하는 것을 놓쳐 버린 모든 것을 추적한다.”

―본문 중에서

 

★귄터 그라스가 직접 그린 삽화 수록

편집자 리뷰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전후 독일 사회의 양심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귄터 그라스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써 내려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는 온갖 풍파로 가득했던 2차 세계 대전 시기와 전후 격변기를 견디며 『양철북』이라는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귄터 그라스의 삶이 솔직하고 대담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열일곱 살에 히틀러의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당해 복무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여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6년 독일에서 출간 당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라스는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가듯 자신의 과거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나는 그때 왜 몰랐던가?”, “왜 묻지 않았던가?” 하고 끊임없이 자문한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진정한 예술가의 뜨거운 문학적 고백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2015년 4월 1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고뇌와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그때, 나는 왜 몰랐던가? 왜 묻지 않았던가?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大)작가 귄터 그라스의 뼈아픈 고백

 

“회상은 누군가가 벗겨 주기를 원하는 양파와도 같다.” 노년의 귄터 그라스는 매운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흐려지는 눈을 비벼 가며 고통스러운 과거를 마주하고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특히 그라스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집필하면서 제대로 된 기록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당당히 맞서고자 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10대 소년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20대에 예술적 열정과 사랑에 매달렸던 시기를 거쳐 30대를 앞두고 작가로서 화려한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시기를 철저히 개인적인 회상을 토대로 써 내려가고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귄터 그라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당해 복무했던 사실을 고백해, 2006년 독일에서 출간 당시 전 세계적인 논란이 일었다. 그라스가 출간에 앞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밝히고 해당 언론이 ‘귄터 그라스: 나는 무장 친위대 대원이었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면서 그의 고백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전후 독일 사회의 양심을 상징하는 존재인 그라스가 “뒤늦게” 과거를 고백한 것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으나, 과거사를 정리하고 극복하는 차원에서 과오를 인정한 그라스의 용기를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황색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로 논란이 더욱더 커진 감이 없지 않은데, 이에 그라스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그저 작품으로 말할 뿐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왜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던가 하고 끊임없이 되묻는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의 모든 줄거리는 이 물음의 주위를 선회하고 있다. 그러므로 왜, 나는 그때 몰랐던가? 하는 뜨거운 문학적 고백의 텍스트를 앞에 두고, 그래, 이제야 자백하다니 하는 적반하장식 비판은 대중 매체의 표피적이고 선동적이며 폭력적인 속성을 보여 줄 뿐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과연 귄터 그라스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풀어놓는 데 할애하고 있다. 전쟁이 왜 벌어지는지, 나치 체제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소년은 막연히 군인이 되는 것, 그리고 전쟁 영웅이라는 존재를 동경했다.(당시 대부분의 독일인은 독일군이 승리하고 영국군이 패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징집령이 내려지고 소년은 나치 무장 친위대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따름인 것이다. 그라스는 그 당시 소년의 시점(1인칭)과 현재 자신의 시점 사이를 방황하면서, 자신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무의식중에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음을 밝히며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몽매함을 자책하며 그때 “왜?”라고 묻지 않았을까 괴로워한다. 나아가 전후 독일 사회의 과거 청산 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캐물으며, 아픔을 딛고 양파 껍질을 벗겨 나가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귄터 그라스의 죄책감과 책임 의식은 동일하게 일제 강점기와 전쟁, 분단 상황을 겪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시사점을 준다.

 

 

■ 전쟁과 전후 격변기를 거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했던 젊은 귄터 그라스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벗겨 가는 회상의 기록

 

전반부가 소년 그라스가 전쟁을 직접 보고 겪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그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깨닫고 작가로 주목받기까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라스는 조각에 대한 열정, 춤에 대한 열정,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다. 그라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살라고 권했지만, 그라스 자신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세 번째 굶주림”, 즉 창작욕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이 책에는 재능과 열정이 충만했던 그라스의 젊은 시절의 기억이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극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귄터 그라스는 열아홉 살에 미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향했다.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이 전쟁 후유증으로 휴교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석공 밑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고 쉬는 날에는 노인들을 스케치하면서 미술에 대한 감각을 단련했고, 결국 스물한 살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조각과 소조)을 배우고, 방탕하게 여흥을 즐기고, 운명의 사랑(첫 아내인 안나 슈바르츠)을 만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위대한 문인이 이 시절에 본격적으로 싹텄던 셈이다.

안나 슈바르츠와 결혼하면서 그는 장인으로부터 글쓰기 인생을 함께한 동반자, 올리베티 휴대용 타자기, 일명 ‘레테라’를 선물받았다. 그는 평생 입식 책상 앞에 서서(미술 작업을 할 때의 습관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채 타자기를 탁탁 두드리며 글을 썼다. 그 타자기로 지은 시가 라디오 방송국 시 경연 대회에 입상하면서 등단했고, 1955년 47그룹 모임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라스는 47그룹 모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시를 낭독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동화는 계속되었다. 옛날 옛날에 한 젊은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처음으로 시인으로 등장했다. 베를린의 공기를 들이마신 시(詩)들에 자신이 있었기에 그는 두려움 없이 시를 낭송했다. 게다가 그는 조언받은 대로 한 줄 한 줄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기 때문에 그의 낭송에 귀 기울였던 모든 사람이 단어 하나하나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중략) 새로이 시인으로 인정받은 젊은 조각가가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에도 동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출판사 편집 담당자 대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한저 출판사, 피퍼 출판사, 주어캄프 출판사, S. 피셔 출판사’에서 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일곱 편 혹은 아홉 편의 시를 움켜쥐려고 손을 뻗었다. ―536~537쪽

 

그대로 적당히 편하게 독일에 머물러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젊은 그라스 부부는 꿈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안나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고 싶었고, 귄터 그라스는 낯선 장소에서 내면에 갇혀 있는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터뜨리고 싶었다.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고 육아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귄터 그라스는 기어코 첫 문장을 써 냈다. 그라스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대표작 『양철북』은 이런 집념 어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파리에서 우리는 베를린을 잊었다.

파리에서 파울 첼란과 나는 서로 알게 되었다.

파리에서 나는 첫 문장을 찾은 후 한 장(章) 한 장 글을 썼다. ―549쪽

 

 

■ 비판적 휴머니즘과 실천적 글쓰기를 몸소 행한 위대한 예술가

귄터 그라스의 ‘가장 날것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양파 껍질을 벗기며』는 귄터 그라스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흔히 접해 온 작가이자 행동가로서의 귄터 그라스가 아닌, 밤새 춤을 즐기고 재즈 음악에 심취하고 요리에 매진하는 귄터 그라스,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는 귄터 그라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라스는 예술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날 즈음 미군 포로수용소에 갇혔을 때 “요리의 대가”에게서 다양한 요리를 배웠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맛있는 음식을 접한 이후 평생 동안 직접 요리를 만들어 생존해 있는 친구들, 이미 하늘로 떠난 친구들(그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예술가들을 가리키는 표현)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석공 실습생으로 일하던 20대 초반에는 주중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댄스홀에서 딕시랜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안나와 처음 만난 것도 댄스홀에서였다. 그라스는 안나와의 첫 만남에 대해 “우리는 춤 속에서 서로를 발견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춤은 그라스가 늙어서까지 즐긴 취미이자 장기였으며, 그것을 매개로 열정적으로 사랑도 나누었다. 또 그는 플루트 연주자 친구, 기타리스트이자 밴조 연주자 친구와 함께 재즈 트리오를 결성해 즉흥 연주를 즐기기도 했다.

한편 그라스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과 금전 감각을 일깨워 준 어머니,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였고 경제적으로 무책임했던 아버지, 가족의 기쁨과 같은 존재였으나 전쟁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 여동생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도 풀어놓는다. 특히 그라스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였는데, 독서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개인 책장은 어린 귄터 그라스에게 평생 자양분이 되어 주었고, 그라스가 미술 대학에 합격하고 신인 예술가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남몰래 가장 기뻐한 사람도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말년에 암 투병을 할 때 결혼과 일을 핑계로 가까이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은 그라스에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말년에 이 책을 통해 그런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당신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었으며 아들로부터 얻은 것은 적었던 어머니, 내 기쁨의 계곡이자 고통의 골짜기였던 어머니, 이전에 내가 글을 썼을 때도 그리고 당신이 없는 지금 내가 글을 쓸 때도 어깨 너머로 쳐다보며 “그 부분은 빼 버려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말하는 어머니. 하지만 난 어머니의 말에 좀처럼 귀를 기울지지 않았고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 나를 낳고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으면서도 마음껏 쓰고 또 쓰라고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던 어머니, 이제 흰 종이 위에서나마 키스를 해 눈을 뜨게 해 드리고 싶은 어머니, 그렇게 해서 나와 함께, 오로지 단둘이서만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것,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보면서 마침내 “내가 이 아름다운 것들을 아직 볼 수 있다니, 정말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워…….”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은 어머니, 그런 나의 어머니가 1954년 1월 24일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서야 울었다. 아주 한참 후에야. ―512~513쪽

 

2006년 독일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귄터 그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즉 글을 쓰는 동안에, 껍질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좀 더 분명해지고 의미가 통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라진 것들이 생생하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지요.” 『양파 껍질을 벗기며』는 멀쩡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미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한 그라스의 초년 시절을 작가 스스로 기어코 끄집어내어 싸우듯이 남긴 원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위대한 작가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허구적 이데올로기와 온갖 편견과 종교적 위선 저 너머에서 그라스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래, 나는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나무들 사이에 앉아서, 자연이 이루어 낸 모든 것을 놀라며 바라볼 때, 오직 그때만 경건해진단다.” 피를 뚝뚝 흘리는 역사의 내장 속에서 저항을 외치고 진흙을 주무르고 자판을 두드리며 고군분투했던 우리의 작가가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은 것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목차

껍질 아래의 껍질들

캡슐이 되어 굳어 버린 사건들

‘우린그런일안해요’라고 불렸던 소년

나는 어떻게 공포를 배우게 되었나

식탁에 초대된 손님들

막장 밖과 막장 안

세 번째 굶주림

나는 어떻게 해서 흡연자가 되었나

베를린의 공기

암이 소리 없이 진행되는 동안

결혼식 때 선물로 받은 것

 

작품 해설

작가 소개

귄터 그라스

1927년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열일곱의 나이로 히틀러의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되어 복무했고,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농장 노동자, 석공, 재즈 음악가, 댄서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과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이후 글쓰기에 눈을 돌려 1954년 서정시 경연 대회에 입상하면서 등단했다. 1958년 첫 소설 『양철북』 초고를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 집단인 47그룹 모임에서 낭독해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부터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에 『고양이와 생쥐』(1961), 『개들의 세월』(1963)을 발표해 『양철북』의 뒤를 잇는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76년 하인리히 뵐과 함께 문학잡지 《L’76》을 창간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넙치』(1977), 『텔크테에서의 만남』(1979), 『암쥐』(1986), 『무당개구리 울음』(1992), 『나의 세기』(1999) 등을 발표했고, 1995년에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 『또 하나의 다른 주제』를 내놓았다. 1999년에 독일 소설가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에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었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 『게걸음으로』를, 2003년에 시화집 『라스트 댄스』를 발표했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무장 친위대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에는 그 후속편으로 여겨지는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4월 1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장희창 옮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독서 평론집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귄터 그라스의 『양파 껍질을 벗기며』(공역), 『암실 이야기』, 『양철북』, 『게걸음으로』, 『나의 세기』(공역), 레마르크의 『개선문』,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괴테의 『색채론』, 『파우스트』,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안나 제거스의 『약자들의 힘』, 베르너 융의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 카타리나 하커의 『빈털터리들』, 부흐홀츠의 『책그림책』 등이 있다.

안장혁 옮김

동의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고 브레멘 대학교에서 괴테 연구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괴테의 친화력과 이성의 타자성』(독문),『글쓰기와 표현』(공저), 『독일 문학과 한국 문학』(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 『Re: 지금 우리 사랑일까』, 『내 아이 숨은 재능 찾기』, 『내 안의 돌고래를 찾아라』(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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