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왕의 귀환 (민음 한국사 조선 04)

김백철, 염정섭, 오상학, 이욱, 정재훈, 최성환, 허용호 | 엮음 강응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4년 12월 17일 | ISBN 978-89-374-3714-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88x235 · 288쪽 | 가격 23,000원

책소개

‘민음 한국사’ 네 번째 권 『18세기, 왕의 귀환』 출간

학계와 독서계의 호평을 받으며 론칭했던 ‘민음 한국사’의 네 번째 권 『18세기, 왕의 귀환』이 출간되었다. 18세기는 대개 ‘영정조 시대’로 불리면서 조선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 왔던 세기인 만큼 다른 어떤 세기보다 논란과 학설이 많다. 『18세기, 왕의 귀환』은 근거 없는 음모론과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 역사의 절정기 중 하나인 18세기를 바라보고자 했다. 아울러 양반 문화에 초점을 두어 왔던 ‘진경 시대’의 관점을 넓혀 청계천 준천 사업, 가면극 놀이 등을 통해 민중의 삶을 더 가깝게 조명했다. 또한 복잡한 붕당 계보와 고지도 속 독도의 모습 등을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역사 체험을 제안한다.

편집자 리뷰

영정조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간 18세기는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왕실의 이야기로 주로 소비되어 왔다. 특히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을 둘러싸고 수많은 학설이 제시되었고, 때로는 음모론에 가까운 근거 없는 추측들이 난무하면서 궁중 암투와 붕당 정치의 측면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왔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조의 3대 치적인 탕평책과 균역법 실시, 개천(청계천) 준천 사업 등으로 조선 개혁이 시작되어, 정조의 규장각 강화와 금난전권 철폐, 화성 건설 등으로 개혁의 꽃을 피우는 조선의 절정기 중 하나다. 더 넓게 보면 청(淸) 역시 강희·건륭 시대를 거치면서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던 세기이고, 서유럽은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계몽주의와 증기기관을 통해 근대의 완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처럼 18세기는 ‘17세기의 위기’를 극복한 세계사적인 전환기이자 경제적·문화적 절정기로서 보다 넓은 맥락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고유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18세기, 왕의 귀환』은 이전의 ‘민음 한국사’가 그랬듯이 당시 한성과 파리의 비교, 김홍도의 「연행도」 등을 통해 당시 세계 각국의 발전 방향과 속도를 비교함으로써 조선을 세계사적 시야에서 조감할 수 있게 한다.

위기를 극복해 부흥으로 이끌었던 조선의 힘

18세기 조선의 과제는 양란으로 피폐해져 거의 몰락 직전까지 갔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영조와 정조는 이전 세기의 대동법을 이어받아 균역법을 실시하고 금난전권을 철폐하는 등 민(民)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개혁을 이루어 나갔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군신공치(君臣共治)라는 애초의 유교 이념에서 변질되어 정치 세력화한 붕당 정치를 왕권 중심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역점을 두었다. 영조는 국왕이 붕당의 심판자가 되는 숙종 대의 환국 정치를 넘어, 여러 정치 세력이 국왕을 중심으로 국정에 동참하는 탕평 정치를 시도했다. 이는 주로 신임의리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공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강경파들을 누르고 탕평파를 적절히 기용하면서 정치를 주도해 나갔다. 영조의 정치는 사림 정치의 한계를 넘어 조선이 아직도 유교의 기치 아래 존립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후 어렵사리 왕권을 잇게 된 정조는 영조의 유지를 이어받는 한편, 절충을 넘어선 ‘의리의 탕평’을 펼침으로써 정치 세력들을 왕권 아래 조화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처럼 공론에 바탕을 둔 합의로써 정치를 끌고 나가기 위해 서얼을 철폐하고 규장각을 활용해 초계문신들을 뽑는 등 인적 쇄신에도 힘을 쏟는다. 아울러 장용영을 신설하고 화성을 건설하는 등 문무의 권력을 장악하고 사도세자 추숭을 계기로 정치권 통합에 박차를 가한다.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일련의 개혁들이 표류하기 전까지, 18세기 조선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왕권이 강화되고 민의 역량이 부단히 성장해 나가는 모범적인 국가였다.

당대의 시각에서 평가한 18세기의 조선

18세기 조선은 한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시기 중 하나다. 정조의 이른 죽음만 아니었다면 조선의 개혁이 계속 이어져 ‘우리 식의 근대’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정조가 즉위했던 1776년 당시 조선의 앞날은 여러모로 탄탄대로였지만, 식민지 미국은 독립을 선언하고 모든 질서를 새로 만들어 내야 했고, 프랑스 역시 절대왕정의 붕괴와 공화정이라는 험난한 실험을 앞두고 있었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고 문화가 꽃피던 시대였지만, 특히 동아시아 3국은 새롭게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상업을 보호할 필요를 달리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적 발전 동력이 충분한 상태였다. 조선 역시 18세기 이후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를 기존 체제 안에서 수용하고자 했고 그런 실험들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면서 19세기라는 타자와 만나게 된다. 이처럼 조선이라는 국가의 역량이 뛰어나 절대왕정 체제가 더 유지될 수 있었다는 역설, 유교라는 전통적인 틀 안에서의 개혁들이 거대한 혁명을 연기하고 있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18세기 조선을 바라볼 때마다 보이지 않는 프레임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18세기, 왕의 귀환』에서는 당시 조선인들의 기대 지평과 시간 의식 속에서 시대적 가능성과 한계를 그려 보고자 했다. 19세기를 향해 ‘나아가거나’, 근대라는 사건에 ‘지각하는 일’ 없이, 유교 국가의 틀 안에서 최대한의 개혁을 일구고자 했던 시도들로 바라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18세기라는 화두

18세기는 조선이 개국 초기 못지않은 활력을 되찾은 구체제의 정점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가 성장하여 기존 체제와 갈등의 싹을 보이던 새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미 중인들은 역관이나 의관이 되어 큰돈을 벌고, 광대들은 궁궐이 아니라 장터에서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천주교와 실학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 주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고 균역법이나 준천 사업, 서얼 철폐, 난전 철폐 등 일련의 개혁으로 갈등을 극복하려 했다. 이렇듯 화해하기 어려운 두 세계가 만나고 있었지만 조선의 지배체제가 치명적인 균열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민중의 삶을 정치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영조와 정조는 기존의 중간 지배층을 배제하고 국왕이 모든 백성들을 일원적으로 통치하고자 했다. 또한 그들에게 지워진 부당한 짐을 덜어 주고 신분적·경제적 제한을 벗겨내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자 했다. 이처럼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중시하는 정치, 정쟁으로 소모되던 에너지를 각종 개혁 프로젝트로 승화시킨 역량, 서구의 문물을 주체적으로 소화하는 자신감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탄의 대상이다. 여전히 외세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면서도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채 파편화되어 가는 오늘날, 18세기의 혁신들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사점과 가르침을 준다.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역사: 붕당 계보도와 독도 문제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화려하면서도 정연한 인포그래픽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이번 『18세기, 왕의 귀환』에서는 그동안의 인포그래픽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한다. 먼저, 그간 대부분의 역사 독자들을 힘들게 했던 조선 시대 붕당의 계보와 역사를 종합·정리해 8페이지의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했다. 동인과 서인으로 갈렸던 1575년의 동서 분당에서부터 1789년의 사도세자 추숭 문제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의 붕당사를 대표적인 인물·사건과 연결 지어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또 우리나라의 영토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주제인 백두산정계비와 독도 문제를 고지도들과 함께 다루었다. 특히 독도 문제는 30점의 고지도와 8권의 고문서를 총망라해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의 영토였음을 시각적으로 웅변하고자 했다. ‘민음 한국사’는 앞으로도 새로운 편집 기법과 디자인을 통해, 역사를 읽는 것을 뛰어넘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혁신해 나갈 것이다.

목차

차례

18세기의 서
18세기의 세계

1장 탕평의 시대
1. 무편무당 왕도탕탕
[18세기의 초점] 붕당과 탕평의 역사
2. 역을 고르게 하라
[18세기의 초점] 18세기 세계와 동아시아 경제
3. 개천을 열어 빈민을 품다
[18세기의 초점] 두 도시 이야기
[18세기의 창] 지도로 보는 조선 후기의 영토 인식 – 백두산정계비와 북방 영토 인식·안용복 독도 수호와 동해의 영토 인식

2장 꿈을 꾸는 사람들
1. 북경으로 가는 사람들
[18세기의 초점] 연행사의 길 – 서울에서 북경까지
2. 수표교에 부는 하늬바람
[18세기의 초점] 18세기 서울의 진경
3. 송석원에 모인 중인들
[18세기의 초점] 18세기 조선의 진경
4. 장터 마당의 광대들 [18세기의 창] 불화 속의 광대들 – 감로탱으로 보는 18세기 연희

3장 화성으로 가는 길
1. 규장각의 만추
2. 갑자년이 오면
[18세기의 초점] 화성과 북경성
3. 서울에 난전을 허하라
[18세기의 초점] 18세기 동아시아 시장경제
[18세기의 창]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붕당정치 – 붕당과 탕평의 변주곡

18세기를 나가며
18세기에 활약한 국가들
18세기를 이끌고 간 인물들
18세기에 처음 나온 물건들

참고 문헌
찾아보기 도움을 준 분들
‘민음 한국사’를 펴내며

작가 소개

김백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부산대학교 사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저서에 『조선후기 영조의 탕평정치: 『속대전』의 편찬과 백성의 재인식』, 『두 얼굴의 영조: 18세기 탕평군주상의 재검토』, 『영조: 민국을 꿈꾼 탕평군주』 등이 있다.

염정섭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 및 공저에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 시대 농법 발달 연구』,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 『한국생활사박물관』 9, 『농가설, 농가월령, 위빈명농기, 농가집성』, 『한국실학사상연구』 4 등이 있다.

이욱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 및 공저에 『조선후기 어염정책 연구』, 『조선의 테크노크라트 이천』,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공저), 『서울 인구사』 등이 있다.

정재훈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 『조선 전기 유교정치사상 연구』, 『조선 시대의 학파와 사상』, 『조선의 국왕과 의례』 등이 있고, 『동사』를 번역했다.

최성환

수원시정연구원 부설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저서에 『정조의 비밀어찰』(공저), 논문에 「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 「『한중록』의 정치사적 이해」 등이 있다.

허용호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 『전통연행예술과 인형오브제』, 『발탈』,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공저),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에 「한·일 ‘발인형연행’의 양상비교와 그 형성과정」 등이 있다.

강응천 엮음

출판기획 문사철 대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저서에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공저), 『문명 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 『세계사 신문』(공저), 『세계사 일주』,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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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작은산 2016.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