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역사

원제 Wanderlust : A History of Walking

리베카 솔닛 | 옮김 김정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3년 3월 3일 | ISBN 978-89-374-2506-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50x224 · 480쪽 | 가격 15,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철학과 예술과 축제, 혁명과 순례와 방랑, 자연과 도시 속으로의 산책
▶ 수많은 인물과 사건 이야기로 가득하다.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걷기의 역사를 수놓은 크고 작은 길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즐겁다. 읽고 나면 우리가 평소 걷는 도심의 거리 풍경도 예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한국일보▶ 축제와 가장 행렬, 성스러운 순례와 탐험, 평화 행진과 혁명 등 걷기에 나타난 쾌락과 명상과 예술, 그리고 정치ㆍ문화ㆍ사회적 의미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걷기가 갖는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편집자 리뷰

▶ 왜 걷기의 역사인가?
주차장이 백화점 입구가 되는 도시 설계, 러닝 머신을 이용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헬스클럽에 가는 현대인들, 점차 인도와 횡단보도가 사라지는 거리. <걷기의 역사>는 이처럼 산책자의 사적 통찰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저자가 처음으로 걷기의 역사에 관심을 갖은 것은 1980년대에 네바다 핵실험 기지에서 반핵 시위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핵무기라 하면 잠재적 인명 피해, 무기 경쟁, 관료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문제를 생각하지만, 저자는 핵무기의 진짜 문제를 ‘살아 있는 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장소의 유린’으로 파악했다. 왜냐하면 걷기는 살아 있음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걷기라는 보편적 역사를 처음으로 다룬 작품
<걷기의 역사>는 인간의 진화, 도시 설계, 미로, 성 문화, 걷기 클럽 등 다양한 인간의 역사를 통해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그려 본다. 고대 철학자들과 낭만주의 시인들을 비롯하여 초현실주의 작가들, 그리고 무단 횡단자, 창녀, 등산가까지 아우르는 저자는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며 걸어온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저자는 걷기와 생각하기, 걷기와 문화 사이의 관련 고리를 찾아내었으며, 또한 자동차와 속도 위주의 현대인에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워즈워스, 게리 스나이더, 루소를 비롯하여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모인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까지 역사 속에서 걸었던 인물들뿐 아니라 앙드레 브르통과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까지 아우르는 이 작품은 몸과 상상력, 그리고 이 세계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한 놀라운 탐구이다. ■ 걷기는 철학자에게 사유의 방법이며 작가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1부에서 저자는 걷기를 사유의 방법으로 택한 철학자들과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은 작가들의 삶을 통해 걷기와 정신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말한다. 소요학파(페리파토스peripatos)와 스토아 학파의 명칭은 ‘주변을 걷다’란 뜻에서 유래한다. 또 정보와 사고에 굶주린 청중에게 연설하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던 소피스트들은 타인을 설득하고 논쟁하는 기술, 즉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을 전파한 방랑객들이었다. 저자는 또한 헤겔이 걸어 다녔던 필로소펜베크, 칸트가 산책했던 필로소펜담,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자의 길’을 따라가면서 걷기와 철학 사이의 모종의 관계를 짚어 나간다. 걷기를 처음으로 신성한 이데올로기로 만든 장 자크 루소는 걷기와 사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자서 걸으며 여행하던 때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끼며 그토록 강렬한 경험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걷는 것에는 생각을 자극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뭔가가 있다. 한곳에 머물러 있을 때는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움직이게 하려면 육체가 움직여야 했다.” 걷기는 루소에게 존재 방식이었다. 키에르케고르도 걷기와 사유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철학자이다. “정신적 긴장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큰길이나 골목길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통한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루소의 『고백록』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나 키에르케고르의 일기처럼 걷기는 몰개성적이고 보편적인 순수 철학보다는 좀 더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글들을 낳았다. 20세기에 와서도 걷기는 에드문트 후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사유를 촉발시켰다. ■ 걷기는 내면의 투쟁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축제와 순례, 행진과 혁명
2부에서 저자는 걷기의 다양한 형태를 살펴보고, 특히 걷기를 평화적인 저항 의지와 연결시킨다. 걷기의 가장 기본적이고 오래된 형태인 순례는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다. 순례자는 일부러 힘들게 여행하기도 한다. 여행travel의 어원이 노동travail이듯이. 순례의 전제는 신성한 것이 전적으로 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영적 권능이 펼쳐지는 지리적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다. 기적과 신화를 강조하는 순례는 영적인 것과 물적인 것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있다. 순례자는 또한 가족, 지위, 의무와 같은 세속의 속박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가 된다. 순례자 사이에는 헌신을 이루는 것 말고는 어떤 서열도 없다. 이러한 순례의 개념은 근대, 현대로 오면서 정치적, 경제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왔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걷기에 직접 참여하면서 걷기가 갖는 문화, 사회, 정치적 의미를 끌어낸다. 농민 조직을 결성한 케사르 차베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정의를 위한 행진>, <마틴 루터 킹 암살 30주년 추모 행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끄는 <네바다 사막 체험>, 인디언 다섯 부족의 주최로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반대하는 <영혼의 달리기 대회>, <유방암 걷기 대회>, <에이즈 걷기 대회>. 이러한 행진에서 걷기는 모든 참여자들을 동등하게 연결시켜 준다. 이 가운데 순례의 분위기나 이미지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 민권 운동이다. 비폭력주의를 실천하며 순교적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순례의 창시자 간디는 유명한 ‘소금 행진’에서 바다까지 행진하여 직접 소금을 만들어서 영국의 세제법을 어겼다. 간디 이후 비폭력은 약자가 강자에게서 변화를 끌어내는 특별한 도구가 되었으며, 걷기는 비폭력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다. ■ 걷기는 인생의 축소판이자 자유를 향한 열망의 역사이다――제한된 정원 문화에서 들과 산으로 확대된 걷기 클럽
2부에서 저자는 또한 걷기가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산책이라는 문화적 개념으로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걷기가 정원 문화에서 들과 산으로 확대된 계기와 그 의미를 짚어 낸다. 워즈워스 이후 걷기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나 기인 취급을 당했다. 도보 여행자에게 걷기는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을 뿐,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 자체를 즐겼던 것은 아니었다. 풍경이 영국 사회의 주요 소재가 된 것은 18세기 영국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중세의 높은 담장은 불안한 시대를 말해 주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시각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바로크 시대에는 부와 권력을 과시했다. 이런 정원의 조경이 자연스러운 풍경을 강조하게 된 것은 18세기 영국의 브라운식 정원에 이르러서이다. 이때 비로소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취향은 교양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걷기는 많은 사회적 제한을 받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언니를 간병하러 5킬로미터의 거리는 혼자 걷게 되는데, 빙리 사람들은 그녀를, 교양 있는 계급의 목가적 행위(걷기)를 실용적인 행위로 바꾼 일종의 위반자로 여긴다. 걷기는 그나마 모두에게 평등하고 똑같이 환영받는 차별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영국 문화에서 대단히 중대한 역할을 했다. 셸리는 귀족적인 무정부주의자였고 바이런은 절름발이 귀족이었기 때문에 선박이나 마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걷기와는 인연이 없었다. 반면 열정적으로 도보 여행을 즐겼던 워즈워스는 산책을 정원에서 끌어낸 최초의 진정한 인물이다. 20세기 초는 걷기 클럽의 황금기였다. 이들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사회적 결속감을,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적 흐름에 저항력을, 사회 변화를 꿈꾸는 자들에게 유토피아적 이념을 제공했다. ‘시에라 클럽’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가 정책에 저항했고, 오스트리아의 ‘자연의 친구들’은 귀족의 공유지 독점에 반대했다. 그리고 중세의 방랑하는 학자와 음유시인을 모방했던 ‘소년 방랑 철새회’는 권위주의에 저항했고 포크송을 부활시켰다. 어떤 정치성을 띠었든 간에 걷기를 즐겼던 이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켰으며 세상을 담장 없는 정원으로 만들었다.『걷기의 역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이념은 ‘자유’다.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이 육체의 감옥이었던 여성에게 나체주의는 정신의 해방이었고, 산업 혁명 시기의 열악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 병들어 가는 육체에 탁 트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계급의 해방이었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열정과 맞물린 걷기는 사회적 해방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최근에 걷기를 예술 매체로 탐구한 영국인 리처드 롱의 <걸어서 만든 선>은 풀밭에 난 오솔길을 찍은 흑백 사진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롱은 두 발로 길을 냈다. 롱은 작품의 의도를 “산책은 공간과 자유를 표현하고, 산책에 대한 지식은 모든 이의 상상 속에 살아 있을 수 있다. 상상력은 또 하나의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걷기를 주로 저항 의지와 연결시킨 저자는 예술로서의 걷기에서도 탈육체화에 대한 저항 의지를 찾아낸다. ■ 도시의 거리――런던, 뉴욕, 파리, 그리고 혁명
『걷기의 역사』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작가들 및 작품의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도시의 역사와 걷기의 관계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3부에서 저자는 특히 도시의 특징과 거리의 삶에 주목한다. 도시 거리의 삶은 현대인과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거리는 사람들이 대중이 되는 곳, 대중의 권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거리로”는 도시 혁명의 고전적인 구호이다. 또한 거리는 도시라는 급한 물살에 휩쓸린 삶을 의미한다. 여기선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섞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적 기동성, 즉 구분 없음이 거리에 위험과 마법을 부여한다. 시골의 고독에는 사람 아닌 존재와의 교감이 있다. 한편 도시 사람은 세상이 낯선 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고독하다.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이방인이 된다는 것,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채 지나는 사람들의 비밀을 상상하며 말없이 걷는 것. 저자는 바로 이 점을 도시 삶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한다. 이렇듯 불특정한 정체성과 무제한의 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도시는, 가족과 공동체의 기대에서 벗어난 사람들, 하위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에게 해방의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에서 산책이 유행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부유한 시민들을 위한 설비가 갖춰지면서이다. 도시의 거리는 사회적 공간의 중추로서 만남, 토론, 구애, 매매가 이뤄지는 장이며 익명성과 다양성이 그 특색이다. 약탈자와 구경거리로 넘쳐 나던 18세기 런던의 폭도들은 19세기에는 점차 무기력한 군중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 시기의 도시 보행을 가장 철저하게 파헤친 작가는 찰스 디킨스이다. 한편 뉴욕을 남성적인 도시라고 지적한 저자는 도시를 뮤즈에 비유하고는, 뉴욕을 찬양한 시인들(휘트먼, 오하라, 긴즈버그, 보즈나로빅츠)이 게이였다는 점은 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 비트 작가들을 낳은 뉴욕의 문화를 소개한다. 반편 망명자의 수도 파리는 여성에 비유되며, 이야기와 역사가 많은 파리 거리를 걷는 것은 책 읽기로 표현된다. 파리를 “19세기의 수도”라 부른 발터 벤야민은 ‘만보객flâneur’을 학문적 주제로 발전시켰다. ‘파리를 거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는 만보객은 19세기 초에 도시가 너무 거대해지고 복잡해져서 도시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낯설게 느끼기 시작할 때 나타났다. 이들의 특징은 ‘여유’였는데 파리에서는 거북을 데리고 보조를 함께하며 산책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만보객은 상품과 여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되 산업화의 속도와 생산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는 양가적 인물로서, 새로운 상업 문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그 문화에 매혹된다. 파리는 또한 혁명의 도시이다.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반란이 일어나기에 이상적인 도시는 “인구가 조밀하고, 너무 넓지 않으며, 부자나 귀족이나 정부 기관 같은 권력이 도심의 빈민가와 섞여 있어야 한다.” 바리케이트를 칠 수 있는 좁고 복잡한 골목이 많았던 파리는 거리의 혁명가에게 이상적이었다. 그런데 오스만 남작이 넓은 산책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등 중세의 도시였던 파리를 개조하자, 길은 주변의 거주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분리되면서 과거 폭동으로 이어졌던 집회가 이제는 행진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처럼 도시의 역할 가운데 특히 거리의 민주적 기능을 강조한다. 역사는 거리에서 만들어졌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이던 해에 중국 정부의 탱크는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을 깔아뭉갰다. 헝가리 공화국을 탄생시킨 계기는 21년이나 늦게 열린 임레 노디의 장례식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유는 장벽이 무너졌다는 오보를 듣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보를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비대는 겁에 질려 사람들을 지나가게 내버려 둔 것이다. ‘프라하의 봄’을 가져온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도 이렇듯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 여성과 섹스와 걷기의 관계
저자는 14장에서 여성이 걷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던 역사에 대해 말한다. 원래 ‘함께 산책하다walk out together’라는 영어 표현은 성적 함의와 함께 ‘교제하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때 ‘산책’은 구애 행위였다. 19세기 말에 영국 여성들은 밤에 부적절한 거리를 걸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창녀로 의심되어 경찰서에서 소위 ‘의학 검사’를 받았는데 만약 거부할 경우 감옥에 갇혔으며, 검사 결과 처녀인 경우에만 풀려났다. 당시 프랑스에서도 경찰은 노동 계급의 여성을 임의로 체포할 수 있었는데, 이들 체포된 여성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고 생라자르 감옥에서 혹사당하거나, 매춘부로 등록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오히려 매춘을 조장하는 조치이다. 현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실비아 플래스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 그것이 나의 끔찍한 비극”이라고 적고 있다. “길거리의 무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려 즐기고 싶은 욕망, 익명의 존재가 되어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싶은 그 타는 듯한 열망. 내가 여자아이라는 사실, 항상 협잡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이라는 사실, 이것이 모든 것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으로부터, 울프, 플래스까지 여성 작가들은 남성 작가들과는 달리 보다 협소한 주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러한 여성의 제한된 걷기와 연결한다. 역사가 게르더 러너에 따르면 아시리아 시대에 “가정이 있는 여성, 즉 남자에게 성적으로 봉사하며 보호를 받는 여성”은 ‘존중할 만하다’ 하여 베일을 써서 보호를 받는 반면, 남자의 성적 통제 아래 있지 않은 여성은 ‘공중의 여성’으로 간주되어 베일을 쓸 수 없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잠을 자지만,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의무적으로 집안에 들어앉아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녀에게는 구혼자들을 직접 거절할 권리조차 없었다. 여행은 남성의 특권이었다. 또한 건축 사학자 마크 위긴스에 따르면 “그리스 사상에서 여성들은 남성성의 상징인 한 ‘내적인 자기 통제력’을 결여”하고 있어서 “건축의 역할은 여성의 성의 통제, 즉 순결과 부인의 정절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현대의 여성 인권 운동은 종종 인종 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여성들이 운동 조직 내부에서 성차별을 겪기 때문이다. ■ 헬스클럽의 시시포스와 주택가의 프시케――도시 설계와 걷기의 관계
로버트 피시먼의 『부르주아의 유토피아』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런던 외각에 중산층의 주택 지역이 생겼다. 이러한 교외는 산업 혁명의 산물로, 이로 인해 현대 생활은 파편화되었다. 교외 건설로 인해 도심 거주자는 사라지고, 도심 업무 지구가 생겨나면서 노동자들은 도심에서 밀려났다. 새로운 주택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과거 가로수 거리와 오솔길은 주택 부지에 속하게 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거리도 사라졌다. 20세기 미국은 교외가 확산되고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차가 없는 청소년들은 집에서 꼼짝할 수 없었고, 그 결과 텔레비전 시청률은 계속 증가했다. 교외의 넓이가 인체가 해낼 수 있는 걷기의 수준을 넘은 것이다. 걷기는 이제 비효율적인 운송 수단이다. 한편 기계화된 수송 기관은 여가를 늘리기보다는 기대치를 변화시킨다. 현대의 미국인은 30년 전보다 훨씬 더 시간이 부족한 형편이다. 운송 속도의 증가는 사람들을 오히려 더욱 분산된 지역에 묶어 둔다. 그리고 야외의 상실을 보상하는 최고의 인기 품목인 러닝 머신 위에서 사람들은 시시포스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프시케처럼 밤에만 서로를 본다.

▶ 레베카 솔닛 Rebeca Solnit
예술, 문화 비평가 및 큐레이터이며 환경 운동가이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 덴버 미술관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하버드 디자인》, 《아트 이슈》 등 유명한 미술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예술, 공공장소, 자연경관, 환경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으며,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저서로는 19세기 문화를 다룬 『그림자의 강River of Shadows』 , 도시의 환경 문제를 다룬 『텅 빈 도시Hollow City』 외에 『어떤 여행A Book of Migration』 , 『황량한 꿈Savage Dream』 등이 있다.

▶ 김정아 옮김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를 마친 후 비교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교수신문》 문화부 기자를 거쳐 연세대 미디어아트센터 연구원 및 파리3대학 영화과 박사과정에 있다. 옮긴 책으로 『옥시덴탈리즘』을 포함하여 다수가 있다.

목차

1 서론ㆍ걷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 2 마음은 한 시간에 3마일을 걷는다ㆍ문화적 행위로서의 걷기 3 일어서고 넘어지고ㆍ직립 보행에 관한 이론들 4 은총에 이르는 오르막길ㆍ몇 가지 순례길 5 상징계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가다ㆍ미로와 캐딜락 6 정원을 나오는 길ㆍ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7 윌리엄 워즈워스의 두 다리ㆍ산책을 정원에서 끌어내다 8 관습적 감성이 천 마일을 가다ㆍ산책 문학 9 미지(未知)의 산과 등정하는 산ㆍ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계10 땅 전쟁에 대하여ㆍ걷기 클럽 11 고독한 배회자와 도시ㆍ런던과 뉴욕 12 파리ㆍ아스팔트의 식물 채집13 거리의 시민들ㆍ축제, 행렬, 혁명 14 자정 이후의 걷기ㆍ여성, 섹스, 공적 공간 15 헬스클럽의 시시포스와 교외 주택의 프시케ㆍ러닝 머신과 스프롤 현상 16 어떤 산책의 모습ㆍ예술로서의 걷기17 라스베이거스ㆍ두 점 사이의 최장 거리

작가 소개

리베카 솔닛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길 잃기 안내서』, 『마음의 발걸음』, 『오웰의 장미』, 『야만의 꿈들』,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등이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래넌문학상, 마크린턴역사상 등을 받았다. 『멀고도 가까운』으로 2013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10년 미국의 대안잡지 《유튼 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김정아 옮김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비교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교수신문》 문화부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센터 연구원 및 파리3대학 영화과 박사 과정에 있다. 옮긴 책으로 『옥시덴탈리즘』, 『걷기의 역사』를 포함하여 다수가 있다.

독자 리뷰

독자 평점

5

북클럽회원 1명의 평가

한줄평

걷기를 통한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하는 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밑줄 친 문장

거리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발언할 수 있고, 차별이 없고, 권력자의 매개가 필요 없는, 민주주의의 가장 훌륭한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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