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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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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부제: 김수영론

김상환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0년 9월 14일

ISBN: 89-374-1147-4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25 · 320쪽

가격: 12,000원

분야 한국문학 단행본


책소개

철학으로 읽은 김수영, 그 속도와 해탈의 풍경시적 사유와 존재 사유로 모색하는 현명한 관념론의 길
 
고단한 시대에 가장 자유로운 의지로 자유를 노래한 시인 김수영. 그의 시세계를 조명한 연구서. 김수영의 시를 철저히 분석해 그가 나타내고자 한 시의 정신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시대에의 항거, 비판을 살폈다.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은 우리나라 철학자에 의해 책으로 씌어진 최초의 단일 시인론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10년 동안 읽고 쓴 김수영에 관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책의 1부에는 시를 존재론으로 읽는 고밀도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시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에 대해 먼저 시를 써야 했던 김수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김수영은 문학이 입법적인 권위를 떠맡아야 했던 시대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김수영에게 시 쓰기는 지금의 낙후성을 건너 현대 미학으로 가는 다리 놓기이자 사랑을 설계하는 기술이다.2부는 모더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김수영의 사유를 조명하고 있다. 김수영이 구현하는 근대적 시민 의식이 주요 계기로 삼고 있는 지식욕의 체험과 시쓰기를 위한 오랜 습작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또한 지은이는 김수영의 시 안에서 벌어지는 책의 죽음에 주목한다. 눈처럼 내리는 책의 글자들에 의해 하얗게 지워지는 ‘글’들이 모더니즘의 책의 운명이다.


목차

1. 시적 사유와 존재 사유 시와 교량술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詩와 時 詩의 視 : 보론 2. 모더니즘의 체험 점묘화와 백색 존재론 시인과 책의 죽음 시인과 모국어 모더니즘과 한국적 광기 3. 사유의 금욕주의 장마 풍경 역경주의 풍경의 미학 시의 속도


편집자 리뷰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읽는 철학자
서양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글을 전개시켜 나가는 데서 자주 문학 작품에 의지한다. 들뢰즈(카프카, 푸르스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렇고 데리다(퐁주, 말라르메)가 그렇다. 새 장이 시작하는 여백에 적는 제사(題詞)에도 어김없이 시 구절을 싣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철학자들에게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주로 외국의 다른 철학자들의 글에 의지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상환은 철학자이면서도 자주 한국 시에 대한 글을 썼고, 자신의 책에서도 곳곳에서 시를 언급하고 김수영을 언급했다.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은 우리나라 철학자에 의해 책으로 씌어진 최초의 단일 시인론이다. 김상환이 10년 동안 읽고 쓴 김수영에 관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분야인 철학에 관한 글도 많이 발표하고 이를 모아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철학에 관해 글을 쓸 때보다도 시에 관해 글을 쓸 때보다 충만한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발견의 기쁨이자 모험의 기쁨. \”마치 내가 세상에 뭔가 보탬이 되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김수영 외에도 이상, 정진규, 이성복, 천상병 등의 시에 대해서도 글을 발표해 왔는데, 다른 청탁은 거절해도 시에 관한 글 청탁은 마다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철학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유의 실험이 김수영론을 쓰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김수영의 글들은 단순하지만 몇 겹으로 중첩된 존재론적 운동을 그 여백에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유지되는 사유의 일관성, 몇 번이고 쓰러졌다 일어서는 안타까운 일관성을 읽으며, 낙후한 현실에서 낙후하지 않게 사는 길을 찾고, 현명한 관념론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詩, 時, 視 – 시와 존재론
이 책의 1부에는 시를 존재론으로 읽은 고밀도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이 만만치 않은 읽기를 통해, 우리는 시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에 대해 먼저 시를 써야 했던 김수영을 만난다.

1 시와 교량술김수영은 문학이 입법적 권위를 떠맡아야 했던 시대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한국, 그 단절과 부조화의 과도기적 시대에 그는 현실의 낙후성을 견디고 썩어빠진 전통 속에서 나뒹굴 수 있는 인내를 가져야 했다. 또한 그 속에서 초월론적 성찰로 이행하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김수영에게 시 만들기는 지금의 낙후성을 건너 현대 미학으로 가는 다리 놓기이자, 사랑(교접)을 설계하는 기술이었다.

2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해탈이 죽음의 기술이라면 풍자는 사랑의 기술이다. 이 책의 두 번째 글은 선시(禪詩)와 현실 참여적 풍자 시조의 전통 속에서 김수영의 시를 읽고 있다. 특히 김수영이 선호하는 선이란 낙천적 파괴를 통해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깡패 같은 와선(臥禪)이다. 이는 거리두기 하는 이성의 표상적 세계관이 잊어버렸던 몸하는 시의 신체성을 찾으려는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존재의 망각에 저항하고 거리 없는 먼 것, 그 무한자에 접촉하는 방식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을 향해 가는 광기는 사랑에서 완성된다.

3 詩와 時시는 본성상 미래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시짓기[作詩]는 시간짓기[作時]이다. 이러한 시의 시간성은 시의 예언성과 통하며 이론적 시선과 다른 것을 구하고 보는 시적 시선의 모호성, 명석하지 않음과도 연결된다. 모든 고고학처럼, 영화처럼, 모든 예술과 인문학처럼 시도 역시 봉인된 유물인 시간을 개봉하지만, 개봉하자마자 다시 밀봉하며, 들먹들먹 꾸르륵꾸르륵거리는 아슬아슬한 설사로 언어의 안과 밖, 제약적인 것과 무제약적인 것,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경계에서 힘의 방출, 교환을 일으킨다.

4 詩의 視네 번째 글은 이성복의 시를 읽으며 시의 視에 대한 보론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視란 이론과 학문의 시선을 떠난 은유의 시선이다. 이 상황은 \”월경(月經)하는(피 흘리는) 존재가 可視 공간을 월경(越境)한다.\”라고도 표현되며, \”視가 의식 안에서 일으키는 불안의 정념적 에너지에 의해 태어나, 그 불안한 몸뚱어리를 점점 꺼멓게 태워버려 마침내 非視의 어둠에 초연해지는, 그 視의 불가능성이 해탈이다.\”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우리가 물 속에 지도를 그리고 헤아려보기 위해서는 물 속에 뛰어들어야(죽여야) 한다.  때로 투명한 가운데 자기를 은폐하는 세계를 보기 위해.

 
모더니즘의 체험 – 광기에 다다랐다 사랑으로 화하는
2부는 모더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김수영의 사유를 조망하고 있다.

5 점묘화와 백색 존재론누구나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정신적 미성숙의 시기를 위한 번거로운 교육의 단계, 김수영은 이러한 방법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는 김수영이 구현하는 근대적 시민 의식이 주요 계기로 삼고 있는 지식욕의 체험과 시쓰기를 위한 오랜 습작이라는 두 상황을 설명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처럼, 지식욕이 충족되는 그 제로 지대에서 시는 완성될 것이다. 애지(愛知, philosophy)의 시인 김수영이 습작의 단계를 거쳐 완성한 이론적 사유는 백색의, 비진리의 시적 사유로 이행한다. 이는 모든 요소를 분해하여 미세한 점으로 다시 구성하는 데카르트식 이론적 점묘화와 같다. 화가처럼 상상적 공간에 이론적 점묘화를 그리는 자아는 조물주를 모방한다. 저자는 이것을 백색의 존재론이라 명명하고 있다.

6 시인과 책의 죽음오늘날 도시에 쏟아지는 기호의 폭설, 하얀 모더니즘의 겨울. 저자는 김수영의 시 안에서 벌어지는 책의 죽음에 주목한다. 눈처럼 내리는 책의 글자들에 의해 하얗게 지워지는 \’글\’들이 모더니즘의 책의 운명이다. 눈처럼 가볍고 충만하게 현상하는 현실 앞에서 책의 신성성에서 격하되고 구시대 유물로 폄하된다. 시인의 죽음이자 저자의 죽음. 또한 혁명의 좌절은 시인이 단지 책 안에만 거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에서 쓰는 시는 막대한 방해거나 용감한 착오일지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의 개인성이 완전히 중성화된 이 죽음의 지점, 글쓰기의 영도에서 씌어진 백색의 글은, 우연성과 개인성이 만드는 모든 모순이 소멸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사건 속에서만 글은, 요지부동으로 열리지 않던 책은 진정으로 열리게 될 것이다.

7 시인과 모국어외국어로 교육받은 세대의 시인 김수영.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언어적 과오를 최고의 상상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시 속의 모든 언어는 과오이고 최고의 상상이란다. 너무 빨리 가는 현실과 너무 더디 가는 언어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진공 상태, 생경한 낱말들이 가져오는 진공성 속에서 김수영은 오히려 어떤 순수한 현대성을 찾는다. 진정한 우리말의 순수성과 고유성을 위해서는, 그것의 외피를 이루는 주관적 향수의 껍질을 깨고서 다시 발아시키고, 글쓰기의 공간 속에 다시 파종시켜야 할 것이다.

8 모더니즘과 한국적 광기새로움에 대한 신앙으로서의 모더니즘,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붙이는 영원의 노래이다. 김수영에게서 드러나는 도시적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질시는 모더니즘을 마치 신적인 것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는 광채로 느낀다. 여기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에 의한 광기가 시작된다. 모더니즘의 환영은 시인의 마음에 담을수록 견딜 수 없는 분열을 일으켰다. 그래서 시인은 모더니즘의 상징인 잡지 《보그》를 살해해서 암매장하며, 그 이후 잡지의 환영이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저자는 라캉의 이론을 빌려, 자신의 의식 세계로부터 원조 모더니티를 제거했던 대가로서의 광기가 한국의 자생적 모더니즘이 자라기 위한 운명적 조건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김수영은, 우리의 자식들만은 앞세대가 겪어야 했던 콤플렉스를 벗어나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기를 염원한다. 죽은 듯 보이는 복숭아 씨의 단단한 각질이 사실은 생명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듯이, 자신의 단단하고 무감각한 껍질이 위대한 사랑의 변신임을 꺠닫는다. 그러면서 광신과 맹종, 지독한 콤플렉스가 물러가기 위해 필요한 양의 고통과 병, 광기를 자신이 감당하고자 했다. 그리고 후대에 그런 사랑의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사유의 금욕주의 – 장마와 홍수 속에서

9 장마 풍경외래 사조의 홍수, 기호의 범람하는 물결에 탐닉하는 쾌락주의자들 중 하나가 김수영이었다.(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그러나 자기를 주장하는 사물의 얼굴은 언젠가 닥칠 자연의 범람 속에서 떠내려가야 하게 마련이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를 초과하는 부분은 도시 자체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였다. 이러한 심적 태도는 금욕주의라는 분명한 자기 의식의 형태에 도달하며, 첨단의 노래와 정지의 미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모순의 해소와 규정성 뛰어넘기는 분산과 깨뜨림의 시학, 「폭포」를 통해서 가능했다. 관념과 현실의 차이가 서로 배리되지 않는 무차별한 정직성으로부터 이런 대립들이 사실은 아주 하찮은 차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러면서 압도적 이미지의 범람 앞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제하고, 연상의 강물에 탐닉하지 않는 금욕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오히려 역동적 내면성이다.

10 역경주의김수영이 천명한 생활 태도인 역경주의(力耕主義)에서 노동은 의식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외적 풍경에 능동적 주체로 관계하도록 하는 유일한 사태이다. 정신의 활동력과 통제력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결과 정신을 외부적 자극과 풍경 앞에 수동적 상태에 떨어뜨리는 힘을 정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도 없으면서 풍경에 살라고 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김수영은 \’장마 풍경\’ 앞에서 \’일\’을 생각하며, 일과 노동이 강요하는 절제와 금욕을 통해 자기 속에 쾌락과 긍지를 품을 수 있었다. 쾌락과 긍지는 자아가 자신에게서 확인하는 성숙과 성장의 정도에 비례한다. 만일 영원히 성장할 수 있다면, 자아는 영원히 수고하고 영원히 피곤하기를 원할 것이다.

11 풍경의 미학피로는 죽음의 체험이며 긍지는 생의 체험이라는 점에서 피로와 긍지는 이중적이다. 본래 노동의 찬미였던 것이 자살의 찬미로 화한 까닭이다. 풍경의 미학적 의미는 노동과 일의 개념을 통해 획득되지만, 죽음의 개념을 통해 완성된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피곤할 정도로 멀리 외출한 시선이 돌아오면서 싣고 온 아득한 곳의 빛과 어둠 때문인 것이다. 이를 통해 김수영은 성장의 두 측면을 현상하고 있는데, 하나는 자기 능력을 초과하는 운동 안에서 풍경과 대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으로 되돌아와 집중하여 순수한 잠재력, 극도의 무관심, 영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근원적 친근성이 먼 곳으로부터 밀려옴이 가능하며, 시가 한 줄 두 줄 이어지기 시작한다.

12 시의 속도김수영은 삶이란 끝없는 부유의 여정이며 시인에게 허락되는 휴식은 처음부터 애착을 두지 않는 머무름임을 깨닫고 있었다. 더구나 현기증 나는 장마의 물결, 그 속도가 가져오는 자기 상실의 위협은 그로 하여금 금욕주의 원리를 품고 시를 쓰도록 하였다. 금욕주의는 의식에게 노동을 통하여 대상에 관계할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수영 시의 속도감은 그의 민첩한 감수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스트로서 자기 반성적 사유 속에 사물의 속도를 수용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그의 시는 사유의 속도와 사물의 속도를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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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환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해체론 시대의 철학』(1996),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1999),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김수영론』(2000),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공저, 2000),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2002), 『라깡의 재탄생』(편저, 2002) 등이 있으며, 그밖에 데카르트와 데리다에 관련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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