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평전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4년 4월 18일 | ISBN 978-89-374-8908-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6x222 · 668쪽 | 가격 30,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쓰러져 가는 세상을 공정(公)과 청렴(廉)으로 일으키고자 한

위대한 실천 지식인 다산의 모든 것을 읽는다

다산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집대성한 다산의 삶과 정신

 

전 생애를 통해 병들고 썩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며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선각자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다산 정약용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거듭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엄중한 경고까지 내렸다. 이에 다산은 현실에 활용하면 부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혁안을 마련해 두었으니, 그것이 바로 다산의 개혁 사상, 실학사상이다.

그간 다산을 말할 때면 늘 고된 유배 생활,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써낸 수많은 글들이 먼저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다산은 이론에 앞서 행동을 중시한 실천가였다. 다산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 박석무는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말년의 역작 『다산 정약용 평전』을 통해 예리한 통찰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실천적 학자로서의 다산을 새로이 조명한다. 인권과 사회 보장의 선진적인 조치들을 강구하며 핍박받는 민중의 애환을 보듬은 목민관이자 학자, 시인이자 경세가였던 다산의 전 면모를 오롯이 담았다. 공직자의 ‘공렴(公廉)’, 즉 공정과 청렴만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기본이며 실천에 옮기는 행동만이 학문의 근본 목적이라던 다산의 철학은 여러 병증을 앓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새겨야 할 정신이다.

편집자 리뷰
  •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옵니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요동치게 한 대형 사건,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음에 이르게 한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던 1762년에 다산은 태어났다. 강건한 두 임금 영조와 정조의 시대는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질 만큼 흥성했지만 그 안에는 여러 대립과 모순이 배태되어 있었다. 다산은 1789년, 정조 13년에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둔하고 졸렬해 임무 수행 어렵겠지만,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노라”(139쪽)라는 시로 합격 소감을 읊으며 결의를 다진 다산은 3년 후 정조의 밀명을 받아 암행어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젊은 시절 한 차례의 암행어사 경험은 이후 다산의 일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조선 후기 사회에 만연해 있던 목민관들의 부정부패와 탐관오리들의 등쌀에 고통을 당하던 백성들의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파악하게 된 계기였다. 백성들의 참혹한 실상을 파악한 젊은 다산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며, 가난하고 천한 백성들의 권익과 자유 확보를 위해 생애를 바쳐야겠다는 굳은 신념을 다졌다.

다산은 일생 동안 벼슬살이나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전 과정에서 ‘공렴’의 의미를 새기는 생활을 했다. 다산이 추구했던 학문의 궁극적 목적이나 실현코자 했던 국가에 대한 목표는 바로 ‘공(公)’,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의 실현이었다. 다산이 간절히 바라던 평등사상, 공정한 수사와 재판, 인재 등용의 공정성, 문벌 타파, 신분제 타파, 지역 차별 타파, 빈부의 불균등 해소 등은 모두 공정과 공평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의 ‘염(廉)’, 청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청렴을 통해서만 나라가 유지되고 역사가 발전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다산은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글에서 지도자나 공직자들이 공렴할 때 세상은 요순시대를 맞을 수 있으며 공렴한 공직자들이야말로 쓰러져 가는 세상을 일으켜 세울 수 있으리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이렇듯 ‘공렴’은 다산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이 책에서는 다산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을 암행어사 수행 시기를 서두에서 먼저 소개한다. 3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젊은 다산이 가장 빛났던 시절에 칠십 평생을 이끌어 간 인생의 신념을 세우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그가 『목민심서』에서 벼리로 세우고 스스로 철저히 실행에 옮겼던 생각, “청렴이란 목민관의 근본 되는 임무이며, 만 가지 착함의 원천이고, 모든 덕의 뿌리이다.(廉者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는 여전히 더러운 소리와 고약한 냄새가 가득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산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만이 타락한 세상을 바꾼다

 

일찍이 정조에게 뛰어남을 인정받았으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 멀고 먼 강진 땅에서 수많은 대저를 남긴 비운의 학자이자 뛰어난 작품들을 남긴 시인, 절절한 편지로 가족에게 마음을 전한 아버지로 다산은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정작 다산의 대표적 저서가 『목민심서』임에도 그의 공직 생활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다산은 아버지 정재원이 여러 부임지에서 목민관 생활을 할 때마다 함께 생활하며 지켜보았고 그 자신도 황해도 곡산 부사로 재직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았다. 다산은 성리학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이치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늘 실천을 주장했다. 그의 목민관 생활도 자신이 굳게 다짐했던 ‘공렴’을 제대로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재판은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의 발로로 ‘이계심 사건’에서는 탁월한 법의식을 내세워 백성들이 곡산의 주인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혁명적 판결을 내렸으며, 착취의 소지가 있는 관행을 하나하나 뜯어고쳤다. 또한 인명을 중시해 『마과회통』 12권을 저술하여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자 했으며 경영에도 뛰어나 비축된 자금을 활용하여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목민심서』야말로 이론적 저서가 아니라 다산이 직접 체험한 사실을 정리한 실무적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실천에 옮기는 행동만이 학문의 근본 목적이라던 다산의 철학은 그의 평생을 움직인 힘이었다.

이에 따라 다산의 학문은 사서육경을 연구하는 경학(經學)에서부터 세상을 경륜(經綸)하는 경세학에 이르기까지, 역사・지리・문학・과학・건축 공학・의학・약학・천문학・음악 등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귀양살이를 하며 벽지 산간 방 안에 앉아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최신 학문까지 섭렵할 정도로 그의 학문 경지는 높았다. 이러한 그의 연구가 집성된 것이 바로 실학이자 다산학이다. 전통적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더불어 다양한 사상을 두루 수용하며 백성과 나라에 실질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실천적 학문으로 거대한 개혁안을 이룩해 낸 것이다.

목차

들어가면서

 

 

1부 암행어사 출두요!

 

1 슬픔을 이기자 득의(得意)의 때가 오다

암행어사 정약용

수령의 잘잘못을 정확히 평가하다

일생의 경세 철학을 확립하다

 

2 민생도 중하게 국법도 존엄하게

왕의 측근도 예외 없는 엄격한 국법 적용

비통한 농민의 삶을 시로 읊다

요직에 올라 정조의 총애를 받다

반대파의 모함으로 권력에서 멀어지다

 

 

2부 학문과 정치의 바탕을 다지다

 

3 영특하고 글을 잘 아는 소년

요동치는 세상, 다산의 탄생

아름다운 고향, 한강 상류 마재 마을

8대 옥당 가문

남다른 시재를 보인 다산의 유년 시절

서울의 명문가와 혼인하여 상경하다

성호의 실학에 마음 기울이다

 

4 아름다운 남도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닦다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화순(和順)에 머무르다

경서 주석을 고치기 시작하다

학승 연담 유일과 만나다

남도의 풍광을 시로 읊고 글로 쓰다

진주 남강에서 배를 띄워 논개를 기리다

 

5 자신의 의지와 학문의 방향을 밝히다

학풍(學風)은 살기(殺機)였네

진사과에 합격하고 정조와 처음 만나다

그리운 성호 선생의 옛집을 찾다

『천주실의』를 읽다

『중용』을 함께 연구한 이벽의 죽음

마침내 문과에 장원 급제하다

공렴(公廉)으로 정성을 바치련다

 

 

3부 정조를 보필하여 정치의 일선에 서다

 

6 험난한 벼슬길의 시작

왕의 총애와 함께 반대파도 늘어나다

신해옥사로 반대파의 표적이 되다

정약전의 문과 급제

큰 스승, 아버지의 별세

화성 축조로 기술 관료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다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좌천되다

봉곡사에서 성호를 만나다

유용한 학문으로 요순시대 만들자

동적인 다산, 정적인 퇴계를 만나다

다시금 정조의 부름을 받다

 

7 서울로 돌아와 정조를 보필하다

죽란시사(竹欄詩社)를 만들어 문인들과 교유하다

규장각에서 능력을 발휘하다

천진암에서 노닐던 서정 시인

상소를 올려 천주교와 절연했음을 밝히다

 

8 처음이자 마지막 목민관 생활

곡산으로 부임하다

다산의 명재판

혼신의 정열을 바쳐 백성을 다스리다

애민의 마음으로 저술한 『마과회통』

지역 경제 살려 낸 경영 정신

현역 목민관으로서 암행어사가 되다

중앙에서 벼슬하면서 황해도의 폐단을 바로잡다

삼농 정책을 건의하다

서울로 복귀하여 미제 사건을 해결하다

관계에서 영원히 떠나겠습니다

 

9 고행의 터널 안으로 들어서다

정조와 채제공의 죽음

여유당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다

정조와 다산, 18년의 만남

마흔에 맞닥뜨린 집안의 비극

국문 과정에서의 다산의 명답변

신유옥사의 비극

핏빛 어린 종교 재판, 신유옥사

 

 

4부 유배지의 저술 생활

 

10 첫 유배지, 장기에서의 삶과 문학

삼별시(三別詩)의 슬픈 노래

당대 최고의 의원

문학으로 귀양살이의 아픔을 달래다

당쟁의 종식은 국부의 증진에서

토속의 민족 정서를 담은 시 세계

백성의 아픔을 어찌 눈감으랴

 

11 유배지 강진에서 학문에 몰두하다

다시 감옥에 갇히다

밤남정에서의 영원한 이별

형제지기의 아름다운 우애

북풍이 몰아붙여 남쪽 강진의 주막까지 밀려왔네

학동들을 가르치며 마음의 안정을 찾다

편지로 부정을 전하다

윤씨 집안의 도움으로 학문 연구를 재개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

두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바치다

학술 저서들이 속속 완성되다

『천자문』을 대신할 아동용 교과서를 짓다

시를 짓고 경서를 연구하는 유배 생활

가렴주구에 신음하는 농민들의 삶을 읊다

나라를 근심하고 시대를 아파해야

그립고 그리운 약전 형님

학승이자 선승인 혜장을 만나다

날카로운 비판 시, 「하일대주(夏日對酒)」

 

12 다산초당, 다산학의 산실이 되다

차나무 무성한 다산으로 거처를 옮기다

18제자 모여들고 학문은 익어가다

연이어 대흉년을 만난 비통함을 읊다

삶의 대도(大道)를 밝혀준 가계(家誡)

외동딸 시집보내며 「매조도」를 그리다

혜장의 입적

경 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다

벽지에서도 세계를 내다본 학문적 안목

끊임없이 이어진 굵직한 저술 활동

일표이서(一表二書) 3대 저서가 완성되다

역경 속에서 이루어 낸 업적

 

 

5부 학문과 인생을 정리하다

 

13 당대 학자들과의 학문 토론으로 집필을 마무리하다

박식하고 정밀하니, 참으로 드물다

탁월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도다

연천 홍석주의 꼼꼼한 비평

문산 이재의와 우정 어린 학문 논쟁

추사 김정희의 다산 경학 비판

고향에 돌아와 집안일을 정리하다

선배 · 동료와 자신의 일대기를 짓다

은혜롭던 선연(善緣)과 궂은 악연(惡緣)

 

14 여전히 생생한 다산의 학문과 사상

경서 연구를 마감하고 강산을 유람하다

다산의 영면

실학의 집대성, 다산학

경학 연구: 사유 체계의 전환

치인지학(治人之學)인 경세학

문학 사상: 다산의 시관

과학 사상과 기술 개발

진시 초각(初刻)에 운명하다

다산의 사람됨과 학문에 대한 평가

최익한의 『실학파와 정다산』

다산 탄생 200주년 기념 논문집

최근의 다산학 연구 경향

다산을 이은 그의 후세들

 

 

글을 마치고 다산이 그립다

 

연보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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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박석무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으나, 1973년 유신 반대 유인물인 전남대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때의 결실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1979)가 출간되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네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정치 활동 중에도 다산 연구를 이어 나갔다.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전 2권), 『다산 정약용 일일수행』(전 2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역주 흠흠신서』(공역), 『애절양』, 『다산 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 선집』(공편역), 『다산 문학 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그 외에 「다산 정약용의 법률관」 등 많은 다산 관련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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