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공동체

손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12월 20일 | ISBN 978-89-374-0820-5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4쪽 | 가격 10,000원

수상/추천: 김수영 문학상

책소개

2013년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양파 하나가 쪼개지는 사건 속에서 우주를 보여 주는 시인 손미의 첫 시집

사물이 영혼이 되어 흐르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마이너스 우주의 세계

 

 

2013년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양파 공동체』가 출간되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손미 시인은 최근 활동하는 젊은 시인 가운데 놀랍고 신선한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조용하고 깨끗한 풍경 속에서 사물이 영혼이 되어 흐르는 이야기, 그 영혼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또 다른 이야기라 부를 만큼 시적 언술을 증발시키는 방법이 남다른” 『양파 공동체』는 “영혼 안에 생기는, 요란스럽지는 않으나, 작으면서도 무시무시한 동요(動搖)를 가시화하는, 유리의 실금과도 같은 세계를 잘 구현”하고 있으며, “한 개의 길을 찾으려고 했는데 무수한 미로들”이 나타나고, “한 개의 열쇠를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열쇠들은 무한 변용되고 증식”하는 시 세계를 보여 준다. 이번 시집은 1986년 고은의 『전원시편』을 시작으로 28년간 한국 시단을 이끌어 온 <민음의 시> 200번째 시집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민음의 시>와 <김수영 문학상>의 정신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이 시집 안에는 섬뜩하고 생경한 이미지, 놀랍고 신선한 언어들이 꽉 찬 양파 속처럼 단단히 들어차 있다.

편집자 리뷰

■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소멸하는 존재들의 세계

32번째 김수영이 탄생했다. 2013년 제32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손미 시인은 2007년 『검은 표범 여인』의 문혜진 시인 이후 6년 만에 여자 시인의 수상이라 더욱 반갑다.

손미 시인의 낮과 밤은 다르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시를 쓴다. 얼마 전 한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다니는 직장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네가 그렇게 잘났어?”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글을 발표할 땐 회사의 허락을 받으라며 사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회사 동료들과 술을 먹다가 “나는 시인이다.” 소리치며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런 밤들에 손미 시인은 시를 썼다.

“시를 쓸 땐 죽었던 심장과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에 다시 생기가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 순간만큼 나는 고체가 아닌 생체가 됩니다. 시간과 공간은 사라지고 먼지 한 톨까지 내게 귀를 기울여 줍니다.”(<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양파는 ‘공허’로 꽉 차 있다. ‘텅 빔’으로 꽉 차 있다. 투명한 속에 비밀을 감추고 있는 양파는, 아무리 벗겨도 벗겨도, 사라질지언정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양파의 속은 텅 비어 있지만, 무한히 생성하고 증식한다. 나는 “내가 온 곳”으로 그 “먼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상하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무수한 미로뿐이다.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 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양파 공동체」 부분

 

양파는 벗겨도 벗겨도 벗겨지기만 할 뿐 실체와 만날 수 없다.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이 겹겹이 들어 있는 “마트로시카” 역시 또 다른 양파들이며(「마트로시카」), “한 칸 한 칸 나를 밀어”내고는 사라진 이들이 모여 있는 방도 양파의 방이다.(「체스」) 그러니 안을 열고 들어가도 나는 여전히 바깥이다. 나는 안팎의 경계를 끊임없이 지우는 경계의 존재이다.

 

짐승 같은 귀퉁이를 돌면 또 다른 귀퉁이, 돌면 또 다른 귀퉁이

 

이제 나는 쫓는 길인지 쫓기는 길인지 잊었다네 아가씨여

―「달력의 거리」 부분

 

시집 속 또 다른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도플갱어”다.

 

문을 닫자 이곳은 암전이다 우린 재채기로 서로를 알아봤다

 

새벽 네 시, 당신을 찾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고

들어갔다

당신이 데리러 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알몸으로

한 칸씩 부서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한 움큼 집어갔다

 

추락한 후 우리는 딱 한 번 만나 시계를 똑같이 맞추고 헤어졌지 완벽한 연인처럼 방금 딴 오렌지도 한 개씩 나누어 갖고

당신은 정전된 과일을 밟으며 갔다

 

(중략)

 

우리의 고향은 아주 먼 곳이지만

당신과 나는 딱 한 번 만나 발목에 찬 시계를 똑같이 맞추고 헤어졌지

 

문을 닫으면 북반구의 어둠이 시작된다

이제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도플갱어」 부분

 

‘또 다른 나’인 도플갱어를 만난 사람은 죽음을 맞는다. 따라서 도플갱어는 간절하지만 만날 수 없는 존재, 즉 ‘그리움’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도플갱어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죽는 것. 죽어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만나기 위해 소멸된 존재, 귀신이나 유령이 되어 그를 만난다. “불쑥불쑥 나타나 다오. 귀신이라도.”(「공중그네」) 하고 기도를 하는가 하면, “튼튼한 귀신이 되는 꿈”(「내림」)을 꾸기도 한다. “죽은 삼촌을 달래러 유원지에”(「굿」) 가는가 하면, “긴 손톱을 들어 지나가는 유령을 자르며 논다”.(「젤리」)

이 시집 안에는 끊임없이 찾으려 하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만나려 하지만 끝끝내 만날 수 없는 존재들. 이 시집은 그런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매일 기어오르”지만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줄을 당겨 다른 곳으로 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것도 없으므로,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탈출하지 못한 우리”는 그저 “너 없는 네 방에 들어”가 “숨어 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녹아내리고, 끊어지고, 무너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지고, 없어진다. 그리고 끝내 기억해 낸다. “언젠가 만난 적 있”다는 것을. 바로 “무덤 속에서.” 그래서 그들은 “멸종을 기다”린다. 스스로 소멸을 택한다. “함께였는데 지금은 사라진, 사라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네의 목표는 끊는 것, 끊어 버리는 것

우리는 그네에 한 개 씩 앉았다.

 

엉덩이에 밧줄을 매단 이런 우아함과 관계있고 싶다. 목에 줄을 감고 공중에 매달린 고상한 사람들과 말을 하고 싶다.

아무도 오지 않는 찻잔 속

 

불쑥불쑥 나타나 다오. 귀신이라도.

뛰어내릴 수 없다면 목에 꼭 맞는 밧줄이라도… 내 머리 위에 꼬리라도, 신선한 밧줄이라도…

 

내내 괴롭다. 그네를 타기 전에 그네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이. 바지를 입기 전에 바지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이. 차를 마시기 전에 찻잔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이.

 

그네의 목표는 희미해지는 것. 찻잔에 들어가 목만 내밀고 있다. 오랫동안 나를 우려냈는데 왜 아무도 차를 마시러 오지 않는 걸까.

우리의 목표는 희미해지는 것. 그리고 끝내 희미해지는 것.

―「공중그네」 전문

 

“진실이 살해된 도시의 유일한 목격자”인 시인은 “하나씩 진실을 이야기”한다. 사라질지언정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진실을. 삶은 체스처럼 “내가 온 곳에서부터 나를 떨어뜨리는 게임”에 불과하다는 것. “내가 온 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는 것. 모두가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희고 투명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 함께하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고기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굶어 죽기”를 택하는 사랑이라고. QR코드로 이루어진 시 「물개위성 2」에서는 그런 사랑 앞에서 “열심히 손뼉을” 치며 “내가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생의 간절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심사평에서

 

조용하고 깨끗한 풍경 속에서 사물이 영혼이 되어 흐르는 이야기, 그 영혼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또 다른 이야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시적 언술을 증발시키는 방법이 남달랐다. 시들에 깃든 영혼의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조용하고 고독한 육체의 흐릿한 행동 하나가 눈앞에 고요히 떠올랐다. 거꾸로 그 흐릿한 몸짓 하나를 따라가면 문을 지나 숲, 숲을 지나 시냇물, 시냇물을 지나 사라지는 미로 속의 영혼이 하나 열리는 경험이 있었다. 욕심 없이 가는 선으로 그은 묘사가 머나먼 은유를 불러와 사물의 공간을 드넓게 만들었다.

―김혜순(시인)

 

앙파 하나가 쪼개지는 사건 속에서 우주를 보여 주는 시인이다.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통과하는 무시무시한 동요(動搖)가 유리의 실금과도 같은 식물의 결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 구체적인 사물들이 우리의 넋을 떠맡은 채 녹거나 무너지거나 세상의 어떤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조각들에 찔리는 모습을 훌륭하게 포착하는 것이 손미의 시 세계이다.

―서동욱(시인․문학평론가)

 

체스판의 규칙이나 달력의 한 칸 한 칸처럼 정해진 방향으로 언제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밀려가는 와중이었는데, 예상할 수 없었다. 그가 ‘양파’를 한 겹 벗길 때, 우리의 ‘무의식’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나와 타인들이 어떻게 비밀의 공동체를 이루는지. 그가 다시 ‘양파’의 흰 살을 벗기려고 하고 익히려고 한다. 나는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무한 ‘양파 공동체’에서는 당신의 살점도 뜯기고 당신의 살코기도 함께 익고 있다.

―김행숙(시인)

 

 

■ 작품 해설에서

 

음수(陰數)의 존재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있음’(plus)과 ‘없음’(zero)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다르게, 가짜로, 반대로, 이상하게 있음’(minus)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가 그것을 상상할 때마다 그것은 ‘무’(nothing)로 편입되어 버릴 뿐이다. 우리가 관찰하거나 도달할 수 없을 뿐, 그곳은 이곳과 다르게, 가짜로, 반대로, 이상하게, 있다. 저 마이너스 존재론, 음수로 이루어진 우주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우주에 사는 존재자들이란 어떤 모습일까? 손미의 시가 형상화하는 기묘하고 무섭고 아름다운 세계가 바로 그런 마이너스 우주의 세계인 것처럼 보인다. 손미가 우리에게 소개한 마이너스 존재론은 기묘하고(저 세계는 불가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고(귀신과 시체의 존재론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간절함이 얻어 낸 형상이기 때문이다.) 없는 자들마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다.

―권혁웅(시인․문학평론가)

목차

1부

 

컵의 회화

진실게임

양파 공동체

후박나무 토끼

마트로시카

체스

책상

달력의 거리

내림

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

고층 아파트 유리를 닦는 사람

초록 냉장고

체크 메이트

칠레로 가는 기차

소문

비핀나티피덤필로덴드론의 고백

 

 

2부

 

Rule

미끄럼틀

플래니모의 답장

젤리

앙코르와트

피아노

도플갱어

셋업

그루밍

굿

폰(Pawn)

죽은 말은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게임이 끝나는 시간

 

 

3부

 

방문자들

달은 떨어질 자격이 있다

컵의 회화 2

몇 온스의 숲

모두 지나갔다

Les Cenci

공중그네

달콤한 문

누가 있다

방문자들

왕의 서신

짐을 싸는 방법

물개위성

물개위성 2

누구도 열 수 없는 병 속에서

치통

고래불 해수욕장

 

작품 해설/권혁웅

사랑의 경로와 마이너스 우주

작가 소개

손미

198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양파 공동체』로 제3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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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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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과학책처럼 읽어야 하나요
바라이로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