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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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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고진하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5년 12월 16일

ISBN: 978-89-374-0738-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2쪽

가격: 7,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30

분야 민음의 시 130


책소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우수문학도서 선정고진하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온 우주를 감싸고 있으면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그것을 시인은 <고요의 어미>라고 말한다. 모순과 대립과 불화가 있어 보이지만 세계는 고요의 한 가족이다. 홀로 텅 빈 채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넉넉한 한 어미, 고요는 보이지 않지만 사물들과 나의 근저이다. 자신이 고요의 자식이라는 믿음 속에서 그는 비움의 길을 간다. 그 비움의 끝에 이르러 온 우주를 품고 있는 고요와 하나인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스러운 세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나 아니었던 것들이 마치 나처럼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다. 그 새로운 마주침의 순간들을 그는 덤덤한 어조, 어슬렁거리는 문체로 기록한다. -최승호(시인)


목차

- 노래하는 가시덤불 – 가방 속 하루살이 – 호랑나비돛배 – 조율 – 붉은 비명 – 계명성 – 저녁의 비 – 문주란 – 구름과 놀다 – 모기 – 소용돌이 춤 – 복사꽃, 벙어리 – 얼음수도원 3 – 그 남자가 오르던 키 큰 나무 – 몸 바뀐 줄 모르는 흰 이빨들이 – 어린 신성 – 소 – 시바 히말라야 – 명궁 – 공일 – 통통 불은 젖 – 흑염소의 만트라 – 일억 년의 고독 – 언제 철들래? – 구름패랭이 – 직박구리 – 인연 – 악양 시편 1 – 악양 시편 2 – 악양 시편 3 – 어떤 보초를 세워야 하나 – 몸을 얻지 못한 말들이 날뛸 때 – 느티, 검은 구멍 – 무늬 – 달과 검 – 우인도 – 춤추는 달팽이 – 하늘 문 – 말뚝 – 합장 – 쇠방울 소리 – 호수 – 빈 마당에 꿈 일기를 적다 – 유목 – 나무 – 지나치고 싶은 풍경 – 옻나무 – 소파 위의 민들레 – 봉숭아 씨앗 – 꽃다운 첩 들여? – 파장 – 어떤 인터뷰 – 가수는 새를 먹어야 노래를 잘 부르나? – 수도원의 딱따구리 – 슬픔이 지축을 기울여 – 은밀한 기쁨 – 뒤로 걸어보렴


편집자 리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997년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시인 고진하가 『얼음수도원』(민음사, 2001) 이후 4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고진하는 목사이자 시인으로서 “신이 부재한 시대의 ‘신성’을 발견”하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이며 “종교적 사유와 생태적 사유의 결합”(유성호)을 추구해 왔다. 이번 시집 『수탉』에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생으로 충만한 소우주에 깃든 신성(들)을 고요함 가운데 드러냄으로써 생(生)의 긍정을 노래하고 일상의 성화(聖化)를 구체화하는 새로운 신학을 추구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시인이 “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 즉, 우주목(宇宙木)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생(生)의 긍정― ‘고요의 어미’의 아들, 생(生)음악을 연주하다너의 바탕도 / 노래, 고요의 어미의 아들이라고 / 너와 나는 한통속이라고 속삭이는 가시덤불 / 은밀한 자아 쓱쓱 지워버리고 / 생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가시덤불 ― 「노래하는 가시덤불」최승호의 말처럼, ‘고요의 자식’인 시인은 고요 속에서 출발한다. 이는 침묵하기 위함이 아니라 강한 울림의 노래를 부르기 위함, 즉 “생(生)음악을 연주”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치 “태양의 축제”와도 같은 극채색의 ‘생’, 그 부딪침을 노래한다. 지상의 마지막 태양의 축제라 부르고 싶은, / 극채색의 / 짜릿한 영상 같은 /닭싸움을 지켜보면서 나는 / 늦은 봄날의 권태와 나른함을 휘휘 날려 보냈네. ― 「계명성」고요함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노래에는 활력이 깃들어 있다. 그럼에도, 톡톡 튀어 가볍지도, 인위적이지도 않다. 물 흐르듯 담백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생으로 충만할 따름이다. 자연에서 찾아낸 노래, 보잘것없지만 사랑스러운 생명의 다양한 모습에서 발견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담벼락 아래 핀 앉은뱅이 민들레에게서 “한해살이 생의 심연(深淵)”(「민들레」)을 발견하고, 우듬지 끝이 휘어진 나무에게서 모진 “생의 욕망”(「파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의 욕망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살구나무 꽃가지의 직박구리를 위하여 “꿀이 흐르는 꽃가지에 앉은 生이 / 꿀을 빨아 먹지 않고 무얼 먹으란 말입니까.”(「직박구리」)라고 항변한다. 이렇듯 생의 욕망을 긍정하는 작은 노래들은 “고요의 어미의 아들”인 시인이 바라보는 “이쁜 연민이 샘솟는 / 아내의 가슴”(「조율」)에서도, “퉁퉁 불은 젖을 / (…) / 흙냄새 물씬한 / 갓 태어난 어린 지구에 덥석 물리고”(「퉁퉁 불은 젖」) 있는 어미 개의 모습에서도 고요히 우러나온다. ‘어미’는 생명을 품는 존재, “생명의 산실”(「가방 속 하루살이」)이 아닌가. 허나 속삭이는 듯한, 낮고 작은 자연은 생명과 함께 죽음을 품고 있다. ‘물의 소용돌이, 불의 소용돌이.’ 죽음과 생이 평행선이 아닌, 소용돌이의 무늬를 그리며 겹쳐 있다. “내 생의 소용돌이도 겹쳐지네. (…) 홀연 죽음의 무희가 손 내미는 순간에도 / 그 손 맞잡고 춤출 수 있으려나.”(「소용돌이 춤」) 생을 긍정하는 만큼 죽음도 긍정해야 한다. 삶-죽음의 우주적 순환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생의 긍정이 완성되며, 죽음을 겪어낸 후 새로운 생명을 얻는 자연에게서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리라. “그래, 적멸궁이 바로 여기로구나.”(「붉은 비명」) ■일상의 성화(聖化)― 편재하는 신성(들), 서로를 가로지르다유성호는 고진하의 시 세계를 “세상에 편재해 있는 모든 신성(神聖)한 존재들을 발견하고 만나며,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화해하려는 일련의 ‘화목제(和睦祭)’의 과정”(「신이 부재한 시대의 ‘신성’ 발견」, 《유심》, 2001 겨울)이라 표현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시집 『수탉』에서도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확장된다. 시인은 역시 세상에 두루 존재하는 낮고 작은 생명들에게서 신성을 발견해 내고 있다. 그는 흑염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지가 무슨 구루(Guru)라도 되는 양 만트라 하나 획 던져준다”(「흑염소의 만트라」)는 깨달음을 얻는 귀를, 황달에 걸려 누운 어린아이에게서 “금빛 찬란한 와불(臥佛)”(「어느 설야(雪夜)」)을 보는 눈을 지녔다. “눈 조각을 하며 묵상에 잠기는”(「얼음수도원 3」)을 손과 마음을 지닌 시인에게 이렇게 편재하는 신성들은 서로를 가로지르며 동시에 하나가 되어간다. 한 몸뚱이에 붓다와 예수가 동거하는 저 상(像)에서 (…) 합장한 두 손이 춤 멈춘 꽃잎처럼 이뻤어요.―「합장」‘합장’이란 의미심장한 시어가 가리키듯이 고진하의 시에서는 부처와 예수가, 신성을 가리키는 여러 존재들이 “한 몸뚱이”에 새겨져 있으며 합일을 이루려 한다. 목사-시인의 존재론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들에서 해월 최시형의 피체를 기념해 세운 비(碑)나 친구 스님의 날선 계도의 서늘함, 걸레 스님 앞에서의 “詩도 숨 죽여야것다!”(「복사꽃, 벙어리」)는 외침, 성산 시바 히말라야 등을 발견하고 경외심을 갖는다 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결국, 시인은 “어떤 형상과 문법과 경계도 고집하지 않는 구름 신학”의 운을 띄운다. 어떤 형상과 문법과 경계도 고집하지 않는 구름 속을 드나들었다 이젠 구름 신학이다! ― 「구름과 놀다」시인에게 구름 신학은 어떤 경계도 세우지 않는 자연의 신학, 편재하는 신성(들)의 생(生)을 위한 신학이며, 따라서, 일상의 성화(聖化)를 실천하는 신학이다. 고진하의 시는 이러한 실천 신학의 결과이다.■ 생(生)을 짊어진 시인―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목, 우뚝 서다평생 내 삶을 괴어온 / 내 안에 살아 계신 이가 불쑥 나서며 / 이렇게 날 변호하는 것이었다. //“비쩍 마른 말뚝임엔 틀림없으나 / 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이라네!”― 「말뚝」신성한 목소리를 통해 천명된 “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으로서 시인의 역할. 이러한 역할을 자임하게 된 것은, 짊어지게 된 생이 꽃피우는 것을 목도하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달팽이를 나르는 / 생명의 수레.”(「춤추는 달팽이」), “그렇게 짊어지고 다니는 동안 / 한 생(生)을 다아 꽃피우다니……”(「가방 속 하루살이」). 하나의 생이 싹을 틔우고 꽃피우고 다음 생을 기다리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짊어지고 나르며 꽃피움을 책임지는 것, 또한 그 신비를 체험하고서 이를 언어로써 다시 한 번 짊어지고 나르며 꽃피움을 보여주는 것, 그 총체적인 과정을 시인은 몸으로, 그리고 언어로 체현하고 있는 것.이를 위하여 시인은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나무가 되고자 한다. 비록 “비쩍 마른 말뚝”의 형상이지만 그 나무에는 생의 신비가 아로새겨져 있다. “오늘 네 상처에서 불멸의 빛을 읽다니. / 나 아닌 나가 되는 신비(神秘)를 읽다니.”(「옻나무」) 그리하여, 그 나무는 표지를 읽는 자에게 일상 속에 내재하는 신성(들)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여준다. “나무는 길을 잃은 적이 없다 / 허공으로 뻗어가는 / 잎사귀마다 빛나는 길눈을 보라”(「나무」) 이제 시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목(宇宙木)―“기독교의 신 개념을 넘어 타종교의 신앙 대상까지 포함하여 우리 민족의 핏줄에 은은하게 담겨오는 토속적인 신앙까지 아우를 수 있는 우주목 같은 존재”(서안나, 《현대시학》, 2003년 7월호)로서 우뚝 서 있다. 단단히 뿌리박은 신성한 뿔 같은 나무로. 어슬렁 / 어슬렁 / 어슬렁거리는 흰 소만 우뚝했네 / 성자 비베카난다보다 우뚝했네 /성산 히말라야보다 우뚝했네 / 무뚝뚝한 흰 소의 / 뿔, 우뚝했네! ― 「소」시집 『수탉』을 손에 쥔 독자들은 이제 우뚝 선 시인의 몸과 언어로부터 표지를 읽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봄이 어떨지.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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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