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배치

신해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5년 7월 28일 | ISBN 978-89-374-0735-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2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1998년 「세계일보」 로 등단한 신해욱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등단 후 7년 동안 써운 시들 가운데 60여 편의 작품을 선별해 수록했다. 관계와 소통,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성찰을 단단한 구조로 쌓아 올린 시편들에서, 세련된 기교와 신중한 균형 감각이 엿보인다.시집은 총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각 장들은 서로 시간적, 공간적, 정서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시인이 그려 내는 세계는 섬세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지도 위의 마을처럼 단정하게 정비된 관념과 목소리가 지배한다. 언어는 단정하고 묘사는 담백하다.

편집자 리뷰

■ 단정한 언어, 침묵의 조각술로 축조해 낸 견고한 미니멀리즘의 세계신해욱의 언어는 단정(端整)하고 묘사는 담백하다. 화려한 수사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중언도 부언도 없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목소리들이 휘발되어 버린 희귀한 공간이다. 화자의 목소리도 타자의 목소리도, 이 공간에서는 가청 영역 바깥의 소리처럼 기이하게 울릴 뿐이다. 그 이미지들 또한 목소리들처럼, 현실의 이미지들로부터 몇 도쯤 어긋나 있다. 그러나 이 어긋남은 시인이 시적 환상으로써 세계를 변형하고 조작한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이미지들이 증류되어 저 스스로 하나의 결정(結晶)을 이룬 결과이다. 그것들은 한 점으로 모여들어서, ‘영혼의 미니멀리즘’이라 할 만한 최소 공간을 이룩한다. 그곳은 결핍으로 충만하다. 그러니까 이는 극대(極大)가 아닌 극소(極小)에 가 닿고자 하는 세계이다.그러나 신해욱은 미니멀리스트인 동시에 구조주의자이다. 『간결한 배치』는 전체 일곱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각 장들은 서로 시간적․공간적․정서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느 ‘오래된 휴일’, 시인은 긴 산책을 떠난다. 벌판 위에 외따로이 자리한 ‘모텔 첼로’에 들렀다가 ‘환한 마을’로 향한 여정은, ‘즐거운 번화가’와 ‘흑백의 마을’, ‘사각 지대’를 차례로 지나 ‘그때에도’라며 끝을 맺는다. 여기서 시인이 그려 내고 있는 세계는 섬세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지도 위의 마을처럼 단정하게 정비된 관념과 목소리의 세계이다. 낭비가 아닌 결핍, 팽창이 아닌 축소가 이곳을 통치하는 원리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치’이다.
무언가 비슷했지만 자꾸 부딪혔다.규칙적인 그림자가 담벼락에 비스듬히 드리웠고그림자와 담벼락의 사이를그는 유유하게 나를 두고 거닐었다.그렇다고 대칭은 아니었다.입속에는 침이 가득 고였다.―「미행」(원제:「간결한 배치」) 부분
이 시집의 ‘간결한 배치’는 인간과 세계, 그리고 관계의 내면을 이루는 것들을 ‘침묵의 조각술’이라고 할 만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건조하리만큼 선명한 언어로써 기록되어 있지만, 말이라기보다는 말과 말 사이의 무엇인가가 이 조각의 재료이다. 하지만 이 말과 말 사이의 말들이 그저 흔적 없이 흩날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말의 바깥에서 말의 내부로, 정교하게 모여든다. 이 고전적 조각술이 이룬 최소 공간은, 천연색보다는 흑과 백의 단순 명암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가깝다. 이는 검은 빛과 흰 빛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종의 암실(暗室)이며, 그것이 바로 시인이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일상의 시선으로 포착한 미시적인 두려움과 환멸의 순간들 시인 박상순의 말처럼 신해욱이 그려 내는 세계는, 이 암실은 “너무나 조용하다.” 그러나 이 암실이 그저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이곳은 정지해 있되 끊임없이 이동하고, 소리가 없되 가청주파수 너머의 소음들로 가득하다. 이 암실에서는 검은 빛과 흰 빛이 싸우고 있지만, 사라져버린 천연의 색채들은 그 흑백의 간결한 싸움의 틈새를 뚫고 귀환하는 중이다. 결국 이곳은 “모든 모래가 같은 거리를 유지”(「某某」)하는 팽팽하게 긴장된 사막이면서, 동시에 “벽지의 어떤 무늬가 내 목덜미로 얼룩져”(「변신」)오는 그로테스크한 천연색의 공포로 충만하다.
무수한 눈이 벽을 기어 다닌다.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무정형의 무늬를 뜨고 있다.어떤 눈이 나를 흘기면나는 사선으로 벗겨진다.―「눈들의 시간」 부분시인이 느끼는 긴장과 공포의 기원은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 죽음이 비추는 삶의 이미지, 혹은 당신과 그들의 흔적, 혹은 유령이 된 사물들과 사물이 된 인간들. 그래서 이상한 삶의 감각들은 건조한 피부를 뚫고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혹은, 내 바깥의 이질적인 무엇인가가 갑자기 살갗을 비집고 들어온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마저도 이물질이 되어버리는 기이한 감각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손가락들이 머릿속으로/천천히 들어오고”(「벽」), 모텔 첼로에서 내가 “열두 번” 죽어가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세계.(「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인은 비슷비슷한 이곳의 풍경에 염증을 느낀다. 그가 거닐며 바라보는 이 마을은 어쩐지 기시감을 일으키는 세상이다. 돌아서도 돌아서도 비슷비슷한 골목들. “몇 개의 선분만이/당신을 구획하”는 이곳, “빈 얼굴로 가득 웃”는 마른 영혼들 사이에서(「초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란 빈약하기 그지없다.
약간만 다른언뜻 보면 똑같은웃음. 그리고 웃음소리.―「한 사람 2」 부분
내가 거기에 없는데내 눈이 거기에 있다는 건잘 참을 수 없는 일이다.―「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부분
■ 다시, 문제는 ‘이름[名]’이다― 틈새를 통해 바라본, 관계에 대한 탈현대적 소묘

여긴 몹시 이름이 부족하군. 네가 내 귀에 속삭인 말이 내 입술로 빠져나가고 있어. 나는 너무 생경하고늘어진 그림자처럼 차가워어떤 이름도 내 몸 안에쌓이지 못하지.―「外界人」 부분『간결한 배치』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틈새’를 말한다. 그는 “오 분 전”과 “오 분 뒤”, 그리고 “오 분 속”(「某某」) 사이를 배회하고, 물을 들이킬 때조차 자신이 “반 모금과 다른 반 모금의 사이 어디쯤에”(「가장 마른 사람」) 있다고 느낀다. 그는 “불기 전의 바람과/어쩌면 이미 지나간 바람”(「초상」)의 차이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한곳에 머물면서도 자신이 그곳에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틈새의 인간이다. 낯익은 얼굴과 낯익은 정물들 사이에서 숨 막혀 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듯 다녀보아도, 마음 놓고 머무를 곳 하나 찾지 못하는 것 또한 그런 까닭에서이다.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와 불안의 여러 까닭 중에서도, 이 시집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이름의 부재’이다. 흑백의 명암만이 존재하고 소리가 부재하는 이 공간에, 천연색의 함성을 일으킬 수 있을 대상으로 시인이 지목한 것은 이름이다. “이름이 부족한” 이곳에서, “네가 내 귀에 속삭인 말이/내 입술로 빠져나가고 있”는 이곳에서 “네가 내 입술에 다시 이름을 가득 불어넣어 준다면야.”(「공터」)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쓴다. 오직 “희박하거나 과도할” 뿐인 이 암실(暗室)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의 귀에 이름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 “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틈새의 인간으로서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고요하고 위협적인 세계에 맞서는 수단으로서 시를 쓴다.
두 눈을 크게 감고이제는 核心만을 보는 거야.너무 검은 저기. ―「보는 사람」 부분
이제, 바깥이 보일 것이다. ―自序 중에서.
● 지은이 신해욱
1974년 춘천 출생.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 한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목차

오래된 휴일정지103번 국도某某모르는 노래가장 마른 사람오래된 익사체전복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모텔 첼로이방인안내인밀실눈들의 시간변신카프카이중의 방마지막 잎새암실해괴한 윤곽벽환한 마을동구 밖초입外界人한 사람 1한 사람 2데자뷰세입자현기증너무 늦게 온 아이낡은 복도너무 오래 남은 아이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한없이 낮은 옥상느린 여름즐거운 번화가섀도복싱외롭고 웃긴 가게납작한 이야기빨간 모자분홍신가부키흑백의 마을오래된 구도검객검은 고양이잠식하얀 사람제 3병동두 사람이다모퉁이의 판잣집통로보는 사람사각 지대있었던 일초상누드근시안 1근시안 2빛나는 얼룩미행복원반향그때에도그때에도

작가 소개

신해욱

1974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세계일보> 로 등단했다. 한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2005년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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