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연구의 권위자 곽준혁 교수와 함께 읽는 『군주』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으로 다시 읽는다

지배와 비지배

마키아벨리의 『군주』 읽기

곽준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10월 5일 | ISBN 978-89-374-8813-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5x215 · 568쪽 | 가격 28,000원

책소개

민음사는 올해 『군주』 탈고 500주년을 맞아 마키아벨리 연구로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공화주의 이론가 곽준혁 교수의 연구를 담은 『지배와 비지배』를 출간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는 올해 마키아벨리 관련 전시와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도 10월 8일 “한국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플라톤아카데미가 주최, 피렌체 군주 500주년 기념회 후원, 최장집·곽준혁·김상근 교수 발표)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리며, 10월 18일에는 한국정치학회에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이 책은 가장 오랫동안 오해와 오역과 논란의 역사에 휩싸였던 『군주』의 수수께끼를 함께 풀 수 있는 지적 모험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 사회는 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공할 것이다.

‘이기적 욕망’과 ‘공공선의 실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마키아벨리 이전에 ‘다수’의 집단적 의사를 ‘공공선’이라고 보거나, ‘다수’를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간주한 정치철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신민을 소유물로 여기고, 정치권력을 군주와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나누어 가지는 것 정도로 여기던 당시 지배 집단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견해였다. ‘다수’가 갖는 소극적인 속성, 즉 ‘지배받지 않으려는 열망’으로부터 ‘공공선’의 근거를 찾아내고, 이러한 열망의 충족이 곧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낸다는 사고는 당시로서는 역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런 역설의 근저에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또는 ‘정체’가 필요하다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공동체적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연대의 기초를 찾았던 것이다. ‘시민적 덕성’만을 놓고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과도 키케로의 것과도 다를 바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 인간’에 주목한다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구상은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강조하는 이른바 근대적 의미의 ‘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본문에서

편집자 리뷰

★ ‘군주론’이 아니고 왜 ‘군주’인가,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으로

저자는 먼저 『군주(De Principatibus)』를 일본식 제목을 따라 ‘군주론’이라고 번역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독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마키아벨리가 붙인 최초의 라틴어 제목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군주정에 대하여(Sui Principati)’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초대 로마 황제가 로마공화정의 후계자임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원로원의 수장(princeps senatus)’이라는 함의를 함께 갖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수장에게 바친 책에 이 명칭을 차용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로마공화정의 부활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군주(nuove principe)’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염원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군주론’이라는 제목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1532년 안토니오 블라도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목부터 내용까지 대대적인 수정을 가한 후, 최초의 라틴어 제목은 지금의 ‘군주(Il Principe)’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식 번역을 따라 ‘론(論)’을 붙였다. 프란체스코 구이치아르디니의 『회상(Ricordi)』(1476)이 『신군주론』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는 기이한 현상에서 보듯, 『군주』를 마치 ‘군주’ 또는 ‘처세’를 배울 수 있는 교재 정도로 편향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사실상 “『군주』의 일차적인 목적은 구직”이었다. 오랫동안 『군주』는 3년 후에 출간된 에라스무스의 『기독교 군주의 교육』과 함께 ‘군주의 교본’으로 언급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입장을 경계한다.

첫째, 두 저작은 군주의 목적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군주』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국가의 유지’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교육』은 ‘정의롭고 자애롭게 신민을 다스리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 둘째, 두 저작에서 군주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가 다르다. 『군주』에서 군주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전쟁이지만, 『교육』에서 궁극적으로 군주가 성취해야 할 것은 평화다. …… 셋째, 두 저작은 기독교 윤리에 대한 사고도 기본적으로 다르다. 마키아벨리는 성경도 고전도 ‘신중하게(sensatamente)’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에서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귀족과 인민이 서로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중재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귀족이 목숨을 걸고 군주를 해치려 하지 않도록, 그리고 인민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하는 충고의 초점은 ‘균형’이 아니라, ‘인민’을 우선시하고 ‘귀족’을 견제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실상 『군주』를 시민의 교본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강의』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논문(trattato)’이라고 부른다. 『강의』 2권 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군주』 3장을 읽어 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논문’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주제에 대해 형식을 갖춰 체계적으로 설명한 글이라면, 그는 『군주』를 단순히 자기의 조언을 원하는 군주에게 충고하는 취지에서만 쓴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본문에서

★ 오독의 역사 500년, 『군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당시 이탈리아 지식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위대한 예언가’(마키아벨리의 친구 카사베키아)였다. “그의 이야기는 동시대인들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주』는 모순어법, 수사적 장치, 역사적 사실의 의도된 조작에 해학까지 가세하여, 오독의 여지가 가장 많은 고전 가운데 하나이며,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수께끼 같은 책으로 남아 있다. 그 한 예로 볼로냐 대학교에서 마키아벨리를 연구한 수재였던 무솔리니는 『군주』에서 오직 ‘이기적인 인간 본성’과 ‘힘에 대한 찬양’만을 읽었다.

이렇듯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심미안은 양날의 칼이다. 특히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 너머에 있는 ‘정치’라는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세’나 ‘경영 전략’이라는 측면에서의 독서는 오히려 덜 위험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은 조심스럽게 학습되어야 한다. 다수의 의사가 곧 힘이 되는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심미안은 소수와 소외된 사람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마키아벨리의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적 탁월함으로 인해 지식인들과 대중 모두에게 여전히 유혹적인 타이틀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마키아벨리는 학계에서는 ‘군주의 교본’으로만 읽히거나 어느 한쪽 측면만 강조되어 왔고, 대중에게는 자기계발로 소화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은 ‘지배’가 아니라 ‘자유’가 정치의 목적이 되는 길에 사용되어야 한다. 키케로의 『의무에 대하여』에 실망하지 않으면서도, 힘에 대한 솔직한 성찰을 원하는 사람들의 참고서가 되어야 한다. 다양성과 갈등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갈등을 치유하고 공공선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교양이 되어야 한다. 이런 독서가 되지 않으면, 마키아벨리의 지혜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을 다시 정치라는 공간으로 불러들일 수 없을 것이다. ―본문에서

『군주』는 마키아벨리의 다른 모든 저작과 비교해서 읽어야 한다. “공화정에 대한 통찰력 없이 『군주』를 읽을 수 없고, 참주와 군주에 대한 이해 없이 『강론』을 읽을 수 없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피렌체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수사와 철학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고, 『전술』은 플라톤의 저작에서나 볼 수 있는 철학적 수사와 정치적 구상이 함께 담겨 있다.” 또한 독자는 『군주』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문들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무엇을 상징하는 인물로 내세우는지 그 콘텍스트를 먼저 이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레를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종종 두 사람은 새로운 군주로서 체사레의 행동들이 묘사될 때 함께 기술된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가 두 사람이 동일한 목적을 가졌다고 생각했거나, 두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속단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엄연히 다른 모델들이다. 알렉산데르 6세도 정복 군주로서 야망을 가졌지만, 마키아벨리가 주목한 새로운 군주의 행동방식은 체사레의 것이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곳곳에 의도적 왜곡 혹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보여서 다양한 해석을 초래하는데, 그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체사레를 ‘새로운 군주’의 전형으로 보는 한편,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선출되도록 허용함으로써 결정적 실수를 범한 ‘실패한 군주’로 말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가 “그가 건강했더라면”이라고 말한 부분, 즉 그의 진짜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마키아벨리는 체사레가 율리우스 2세의 선출만은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체사레의 성공과 몰락에 일관된 요소가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바로 ‘교황’의 후견이다. 체사레는 알렉산데르 6세의 후견으로 일어섰고, 율리우스 2세가 피렌체 공략에 필요한 군자금을 제공하고 로마냐 지방의 지속적인 지배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에 몰락했다. 거물을 다루는 데 능했던 그가 율리우스 2세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 즉 체사레의 질병은 ‘어떤 사람이 어떤 길(una via)을 걸어 항상 번창했을 때’에 굳어진 습성 때문에 자멸했다는 마키아벨리의 숨겨진 판단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체사레의 실패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서술에서 ‘로마교회를 제거하라.’라는 메시지를 읽는가 하면, 어떤 학자들은 레오 10세의 후견을 받는 피렌체 중심의 강력한 제국 건설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체사레의 ‘습성’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숨겨진 비판을 읽어내지 않는다면, 둘 모두 불충분한 해석에 불과하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가 질병으로 죽었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이러한 의도적 왜곡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체사레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체사레 자신이 갖고 있던 어떤 ‘본성’ 또는 ‘습성’ 때문에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마치 운명의 여신의 잔혹함에 희생된 것처럼 기술되었지만,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의 몰락이 ‘운’이 아니라 그의 ‘본성’ 또는 고치지 못한 ‘습성’ 때문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논조를 전달하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사실들을 왜곡하다 보니 사실과 허구가 혼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군주』 14장에 등장하는 키루스 2세는 마사게타이의 여왕 토미리스에게 붙잡혀 처참하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의 키루스 2세는 정복 가능한 모든 땅을 정복한 후에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본받으라는 『군주』 6장의 키루스가 실존한 인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크세노폰에 의해 윤색된 것인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 자신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군주』의 논의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또한 마키아벨리의 인식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1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4권에서 제시한 ‘탁월함’을 ‘미덕’과 ‘악덕’으로 분류하여 열 개의 짝을 제시하는데 그 순서가 엉망이다. 예를 들어, ‘포부가 큰 것’은 ‘인간미가 있는 것’으로 교체되어 ‘오만’과 짝을 이루었고, ‘꾸밈없음’은 ‘솔직함’으로 표현되었지만 ‘허풍(alazoneia)’도 ‘비굴함(eiron)’도 아닌 ‘약삭빠름’과 짝을 이루었다. “결정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 자체로 나쁜 것들, ‘잔인하고’, ‘음탕한 것’이 미덕과 짝이 되어 그 결과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격상되어 있다.” 이렇게 마키아벨리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듯하지만 자신만의 분류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정치 공동체의 존속’이 미덕과 악덕을 구분하는 판단의 기준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인문주의자들과 구별된 인식론적 체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군주』 16장에서 보듯, 뒤죽박죽된 순서도 이렇게 구별된 인식론적 체계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가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본문에서

또한 수사학적으로 마키아벨리는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키케로의 구절과 표현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던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적 기법이 사용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말했던 ‘설득의 방식’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주제를 선택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격에 맞지 않다고 비난하는 악덕과 대비시킨 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바를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납득하도록 하려했던 것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의 텍스트는 수사적 장치, 의도적 왜곡, 상반된 주장들의 공존, 팩트와 허구의 혼재, 다른 저작들과의 비교, 역사적/사회적 콘텍스트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읽어야 하는데, 『군주』는 지금까지 어느 한쪽 시각으로만 읽혔기에 늘 반쪽짜리 해석이었다. 군주의 교본으로, 혹은 공화주의자의 논리로만 해석되었고, 현실정치 가이드로 혹은 권모술수 비법으로만 읽혔기에 ‘악의 교사’라는 오명을 받아 왔다.

반면 마키아벨리의 고대 정치철학으로부터의 단절 또는 인문주의자들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군주』는 ‘군주의 교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수사학적 측면은 과거와의 단절을 숨기는 기술에 불과하고, 정치철학적 측면은 고대 정치철학과의 인식론적 단절을 보여 주는 새로운 형태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입장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도 더 이상 로마공화정의 전통을 반영하는 ‘고전적’ 공화주의가 아니다. ‘정치적 삶’이나 ‘시민적 삶’이 아니라 ‘개인적 야망’이 용인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고, 고대 정치철학이 강조해 왔던 ‘탁월함’이나 ‘좋은 삶’이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학자는 그를 ‘계몽주의의 선구자’라는 입장에서 ‘악의 교사’라고 비난하고, 어떤 학자는 그의 공화주의를 ‘다수를 위한 정치’라고 분류한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 모든 오명을 불식시키고 마키아벨리의 진짜 얼굴을 보여 주기 위해 때로는 한 문장씩, 때로는 한 장씩 ’이탈리아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여 텍스트 중심으로 재조명하였다. 차례 역시 『군주』 원본 차례와 같으며, 각 장에 대한 해설과 함께 핵심 논점들이 질문 형식의 중제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 지금 한국사회는 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가

지금 정치학계는 공화주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여전히 공화주의로부터 단합이나 조화, 연대 같은 공동체적 가치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공화주의는 “갈등을 균열의 요인으로 위험시하기보다, 당연히 존재하는 사회현상으로 잘 조정되면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연대보다는 다양성을, 안정보다는 갈등을 좋은 사회의 징표”로 볼 것을 제안한다. 따라서 공화주의 이론가 곽준혁 교수는 서구 이론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군주』 제대로 읽기’를 통해 그 사상사적 전통, 역사적 맥락, 그리고 이론적 문제의식을 먼저 철저하게 점검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 우리는 뚜렷한 ‘경계’를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 자의든 타의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영의 정체성 속에서 순간순간 자기소외를 경험한다. 이렇게 진영 논리가 편견으로 굳어져 고전이 전하는 숙성된 지혜들마저 외면당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지혜는 경계와 편견을 내려놓기를 요구한다.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고정 불변한 인간 본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찰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겸손한 태도를 요구한다. 비록 소크라테스의 전통에서 동떨어진 신념을 갖고 있었지만, 마키아벨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등이 곧 정치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제도화되지 않은 갈등은 곧 부패와 몰락의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한국 사회는 권력만 잡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편파적인 정치적 현실주의에 치우쳐 있다. 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지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 사회에 건강한 지적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현인들’이라는 한탄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인문주의자들의 ‘무분별한 이상주의’와 ‘희망 없는 현실주의’를 받아들일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누구보다 고전을 사랑했지만 대책도 없는 ‘헛된 상상(falsa immaginazione)’을 인정할 수 없었고, 누구보다 현실을 강조했지만 순응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버린 ‘야심적인 게으름(ambizioso ozio)’을 참을 수도 없었다. ―본문에서

이렇듯 마키아벨리의 모순어법은 ‘망상’과 ‘절망’이라는 두 극단이 빚어낸 난국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철학자의 몸부림을 대변하고 있다. 절망적 미래가 던져 주는 불확실성 속에서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의 단초를 발견하고, 이러한 단초를 엮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역설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정치철학자가 된 것이다.

무수한 오해와 다양한 견해 속에서도 500년 동안 『군주』에 대해 일치하는 평가는 “정치의 본질적 요소인 ‘힘(fortezza)’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힘’은 ‘권력(potenza)’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구분된 권위(autorita)도, ‘지배받지 않으려는 열망(desiderio di non essere commandato)’도, ‘힘’으로 구체화되고 그 역학 속에서 이해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도, 갈등에 대한 심리적 분석도, 모두 ‘힘’의 제도적 설계로 귀결된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이 ‘변화’에 대한 시대적 열망을 대변하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했던 혁명가들도,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도, 그의 책을 통해 변화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마키아벨리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보편적 합리성과 의무론적 도덕도 실현 가능한 이상을 만들고 실현시키려는 마키아벨리의 꿈을 저버릴 수는 없다. 문제는 ‘힘’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힘이 행사되는 공간으로서 정치가 지향하는 방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리사에게 칼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지만, 강도에게 칼은 삶을 앗아가는 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힘에 대한 통찰력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정치는 곧 서로 다른 식재료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기쁨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힘에 대한 통찰력이 타인의 의지를 짓밟으면서까지 자기의 전망을 관철시키려는 목적만 갖고 있다면, 정치는 곧 자의적 지배가 행사되는 지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본문에서

★ 비지배 자유,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정치

마키아벨리는 ‘시민’ 또는 ‘다수’가 지배하려 하기보다 지배받지 않으려 할 때 가장 건강하고, ‘가진 자’와 ‘소수’는 다수 또는 시민이 지배받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 헌신할 때 가장 훌륭하다고 말한다. 즉 마키아벨리는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강자와 약자의 관계보다 지배와 비지배의 역학에서 찾고자 했다.

먼저 마키아벨리는 『군주』 9장에서 사회를 두 가지 집단적 기질(umore)로 나눈다. 하나는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집단의 기질이고, 다른 하나는 ‘명령받거나 지배받지 않기를 원하는’ 집단의 기질이다. 그리고 전자와 같은 ‘지배하고자 하는’ 심리적 경향을 갖는 집단을 ‘유력 집단(i grandi)’이라고 부르고, 후자와 같이 ‘지배받지 않고자하는’ 심리적 경향을 갖는 집단을 ‘인민(il populo)’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는 “자유(liberta)를 공화정과 일치시킨 것”이며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 소위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사회 정의의 초점을 ‘평등’으로부터 ‘지배’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공동체에의 헌신과 불간섭의 자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릴 고전적 공화주의의 부활을 촉발”시켰다.

전술한 바, ‘공화정’의 강함은 외세로부터 지배받지 않으려는 일반 시민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공화정’의 제도는 유력 집단으로부터 지배받지 않으려는 인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로부터 유발되는 ‘갈등(conflitto)’은 지배하려는 욕구가 만들어 내는 ‘소요(tumulto)’보다 건강하기에, 안팎으로 자유를 더욱 진작시켜 갈등이 참혹한 분쟁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아 준다. ―본문에서

16세기 초의 피렌체는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배제된 ‘작은 정부’가 지배적 담론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작은 정부’가 지배적 담론이 된 현실은 ‘소수’의 정치적 야심이 ‘다수’의 생각을 왜곡시킨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우선 안정적이지만 답답한 베네치아가 아니라, 소란하지만 강력했던 로마로 돌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해서 자기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소수’가 아니라,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기질’을 가진 ‘다수’에 주목한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체적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에 주목했고, 바로 그런 이기적인 다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연대’를 고민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인민을 무장시킴으로써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우기 위해 군주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난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특히 그가 군주에게 가장 설득하기 쉬운 세력으로 “군주정 초기에는 적이었지만 그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지적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눈에는 군주가 기댈 곳을 찾는 사람으로 보이고, 군주에게는 다수가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가 말하는 인민의 무장은 곧 인민과 군주의 실질적인 정치적 연대인 것이다. ―본문에서

작가 소개

곽준혁

정치철학자이자 공화주의 이론가.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마키아벨리 연구 「Managing Political Transformation: On ‘Revolution’ in Machiavelli’s Discourses on Livy」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 경북대 정외과 교수,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 방문교수, 숭실대학교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국 중산(中山)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루틀리지(Routledge) 출판사에서 “Political Theories in East Asian Context” 시리즈의 책임편집자를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소크라테스에서 마키아벨리에 이르는 정치사상과 공화주의, 민족주의, 민주적 리더십 등 고전의 현대적 적용에 초점을 둔 정치이론이다. 저서로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아직도 민족주의인가』 등이 있고, 영문 저서로는 『Inherited Responsibility and Historical Reconciliation in East Asia』, 『Republicanism in the Northeast Asian Context』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필립 페팃의 『신공화주의: 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 정부』,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Niccolo Machiavelli and ‘Republican Patriotism’」, 「Nationalism and Democracy Revisited」, 「키케로의 공화주의」, 「정치적 수사와 민주적 리더십: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재구성」,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헌정체제의 두 가지 원칙」, 「Nondomination and Contestability: Machiavelli contra Neo-Roman Republicanism」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캐스트에 ‘정치철학 다시 보기’를 연재하고 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11일

ISBN 978-89-374-8814-6 | 가격 11,200원

마키아벨리의 『군주』 출간 500주년
마키아벨리 연구의 권위자 곽준혁 교수와 함께 읽는 『군주』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으로 다시 만나다

마키아벨리 이전에 ‘다수’의 집단적 의사를 ‘공공선’이라고 보거나, ‘다수’를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간주한 정치철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신민을 소유물로 여기고, 정치권력을 군주와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나누어 가지는 것 정도로 여기던 당시 지배 집단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견해였다. ‘다수’가 갖는 소극적인 속성, 즉 ‘지배받지 않으려는 열망’으로부터 ‘공공선’의 근거를 찾아내고, 이러한 열망의 충족이 곧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낸다는 사고는 당시로서는 역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런 역설의 근저에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또는 ‘정체’가 필요하다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공동체적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연대의 기초를 찾았던 것이다. ‘시민적 덕성’만을 놓고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과도 키케로의 것과도 다를 바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 인간’에 주목한다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구상은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강조하는 이른바 근대적 의미의 ‘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본문 「에필로그」에서『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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