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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갑자 복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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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정끝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5년 4월 15일

ISBN: 978-89-374-0732-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08쪽

가격: 8,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26

분야 민음의 시 126


책소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5 우수문학도서 선정
▶ ‘이것이다’ 하고 보면 시간은 어느새 저것으로 바꾸어버린다.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끝별의 시만 해도, 그의 시들은 축구공처럼 통, 통, 통, 소리를 울리고 튀어 오르면서 지평선으로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근작들을 보니 통통 소리는 들리지 않고 시어들이 질서로워, 집중력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전진해 간다. 「검은 타이어가 굴러 간다」에서와 같이 통통 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들은 소리가 시 뒤로 숨는다. 정끝별의 웃는 얼굴도 시 뒤로 살짝 숨는다. 그럼에도 나는 시어들 사이에서 그 얼굴을 본다. 그는 아직 귀신은 아니다. ― 최하림(시인)▶ 제 몸을 굴뚝 삼아 속꽃을 태운 그의 시편들은 연리지 첫 움이며 공든 탑 한 그루다. 時, 視, 詩로 새긴 그의 시사(詩史)에는 시를 쓰다 야윈 시수(詩叟)가 있고 사랑 때문에 허리가 남아도는 춘수(春瘦)가 있다. 그 때문일까. 허기가 둥근 것이라니! 이 한마디로도 그는 이제 영혼을 울리는 시 소리를 가졌다. 그 소리는 누구를 위하여서도 울어라.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목메인 밥을 쓰는 자여.― 천양희(시인)


목차

1 춘수 어떤 자리 주름을 엿보다 늦도록 꽃 가지에 가지가 걸릴 때 …   2 또 하나의 나무 가지에 걸린 공 사과 껍질을 보며 물을 뜨는 손 대추나무 한 그루 눈물의 힘 …   3 겨울바람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바람을 피우다 천생연분 한 속꽃 …   4 연리지 춘풍낙엽 서귀포 돌담 봄 꿈 봄 늦바람 봄 속 몸 …


편집자 리뷰

미끄러지는 차연(次緣)의 슬픔이번 시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사랑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나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기에 아름다웠던 만큼 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시집의 첫 문을 여는 시 역시 봄에 관한 시다. 만물이 소생하는, 색색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는 봄. 그러나 시인에게 봄은 사랑의 계절이 아니다. 바깥세상이 아름다울수록 나의 아픔 또한 더욱 커지는 것만 같고, “잠결에 잠시 돌아눕”기만 해도 꽃이 다 져버릴 것만 같고, 지는 꽃잎은 또 “제 그늘만큼 봄빛을 떼어 가”버리리라는 생각에 더욱 슬퍼지는, 그런 계절인 것이다.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잠시 모과 이파리를 본 것도 같고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모과 꽃이 피어나는 동안그리고 모과 열매가 익어가는 내내나는 모과만을 보았다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어느 날 순식간에 모과가 사라졌다내 눈맞춤이 모과 꼭지를 숨막히게 했을까내 눈독(毒)이 모과 살을 멍들게 했을까(중략)모과가 익어가던 자리에 주먹만한 허공이 피었다모과가 익어가던 자리를 보고 있다보면 볼수록 모과는 여전히 나의 것이건만모과 즙에 닿은 눈시울이 아리다― 「어떤 자리」 중에서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은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마음에선 “종일 공테이프가 돌아가고” 허리띠가 남아돌 정도로 봄이(몸이, 마음이) 말라간다. 시인은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서로가 덫인 채/ 서로에게 걸려 있으리라”라고 말하며 미련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다시 사랑이란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 같은 것, “어떤 간절한 손바닥도/ 지나고 나면 다 새어 나가는 것”이라며 집착을 버리고 초연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줄기를 타고 오르는/ 눈물의 힘을 믿겠다”며 소극적이긴 하지만 슬픔을 딛고 다시 한번 일어서려는 의지를 살며시 보여준다.
목메인 밥이 쓰다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제목과 같은 「자작나무 내 인생」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에는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두 번째 시집의 주제였던 ‘농(膿)’이라는 주제가 이 시집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농’이란 것은 일상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고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밥이 쓰다」라는 시에서 극대화된다.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고, “변해 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기 때문이다. 이 ‘쓰다’라는 단어는 ‘쓰다(bitter)’와 ‘쓰다(use)’와 ‘쓰다(write)’라는 세 가지 의미로 변주되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정끝별 특유의 숨 한번 안 쉬고 내달리는 듯한 시어들은 같은 어구의 반복을 통해 마치 노래의 후렴구와도 같은 일정한 운율을 만들어낸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그러나 시인은 끝까지, 끈질기게, 검은 타이어처럼 굴러 갈 것이다. “길바닥에/ 제 속의 바람을 굴리면서/ 제 몸 깊이/ 길의 상처를 받아내며 굴러” 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둥근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불 속이 온통 둥그렇다정끝별의 시에서 가족은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다. 가족은 애틋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옛집과 함께 사진처럼 박혀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동백 한 그루」), 나이를 먹고 자식을 둔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모님이기도 하고(「헝큰머리엄마」), 어느새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이기도 하다(「눈이 감길 때마다」). 하지만 마냥 따듯하기만 할 것 같은 이 가족이라는 단어는 한낮의 악몽과도 같은 수천의 개미 떼에 의해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개미와 앨범」), 빈 낮 내내 엄마를 부둥켜안고 싶어 하던 딸애처럼 내 칫솔을 부둥켜안고 있는 딸애의 칫솔에 의해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공포로 탈바꿈되기도 한다(「밤의 소독」). 한밤중에 칫솔을 끓는 물에 팔팔 삶는 소독은 일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소독된 두 마음은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가족이란 여성에게 굴레와 속박인 동시에 사랑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 저자 정끝별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과 『흰 책』, 시론 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산문집으로 『행복』, 『여운』, 『시가 말을 걸어요』 등이 있다.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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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과 『흰 책』, 시론 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산문집으로 『행복』, 『여운』, 『시가 말을 걸어요』 등이 있다.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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