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문정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5월 10일 | ISBN 978-89-374-0723-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2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그래도 너는 그냥 알몸을 살아라

시인에게 몸은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몸은 과학과 이성의 허구를 비판하는 도구를 넘어선 무엇이다.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벗겨 내는 칼날이며 원시적 본능이자 태초의 아름다움이며 모든 허식으로부터 벗어난 순수로의 회귀이다. 그래서 시인은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책상보다 침대에서 사는 알몸을 칭송한다.

편집자 리뷰

언어로의 귀환
예의 당당함과 경쾌함에 무게와 깊이를 더한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시인의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정희의 시는 어렵지 않다. 마치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온화하고 차분하지만 그 속에 독자를 순간 일깨우는 칼날이 숨어 있다. 그 칼날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지도 않고 위협하는 것처럼 표면에 드러나 있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잘못된 자세를 곧추세우게 하는 채찍이 되어 시 속에서 살아 있다. 그 칼날의 언어들은 섬뜩한 느낌을 주거나 강렬한 어감의 단어들이 아니다. 물, 흙, 꽃, 나무, 산, 길, 문, 집, 손, 몸, 딸, 아내, 남편, 결혼, 가족사진 등 아름답고 일상적인 것이다. 오늘은 맑은 날, 아무 의미 없어 거울 같은 날종이에다 시 대신 노란 달을 그린다시에게 정직을 안겨주지 못하고과장과 미화, 아니면 허풍만 떠는 시가 지겨워밤낮 꽃이나 새나 산만 노래하는 시가 지루해서희 노 애 락조차 귀찮아서오늘은 종이에다 달을 그려서가위로 오려서 대문에 내건다홍등이 아니라 황등이다당신이 나를 문(Moon)이라 불러주므로달은 나의 문패,나는 문(文)이요, 문(moon)이 되어그리움으로 둥실 떠오른다가등이 되어 세상의 슬픔들을 속속들이 비추고차라리 홍등이 되어도 좋지사랑 찾아 거리를 서성이는 외롭고 가난한 그대들이무상으로 그 문(門-)을 열어도 좋지오늘은 맑은 날, 아무 의미 없어거울 같은 날― 「문」 전문시인은 뿔뿔이 흩어져 모두가 타인이 되어 버린 ‘그대’들을,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어도 맑을 수 있는 차가운 세상을 따뜻한 달이 되어 홍등이 되어 껴안는다. 사랑을 찾지 못해 홍등가를 서성이는 현실의 서글픔을 꾸짖고 비꼬기보다는 껴안음으로써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보다 더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결코 무겁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가볍고 발랄하다.시인은 비로소 언어로 귀환했고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은 배설의 기능만 강화되고, 거칠고 혼란한 말의 거품만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일견 촌스럽고 진부해 보이는 자연, 고향, 꿈, 사랑의 말들이 비로소 진정한 언어의 광맥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도시적이고 세련되고 튀어야 사는 세상에서, 회색빛 획일화의 일상에서 문정희는 초록빛 건강함과 푸른 물의 힘을, 일회적인 쾌락의 즐거움을 위한 몸이 아닌 존재의 시원으로서의 몸, 그 근원적 생명의 힘을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들려준다.
그래도 너는 그냥 알몸을 살아라

문정희 시의 일상적 자연스러움은 근본적으로 시인이 자신의 원초적 본능,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과 시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정신과 이성의 논리에 의해 한없이 비천한 것으로 소외되어 왔던 여성의 몸은 자연의 섭리 안에서 회복되고, 나아가 가장 성스러운 영역으로 비상한다. ― 서진영, 2003년《조선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 「문정희론」
시인에게 몸은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몸은 과학과 이성의 허구를 비판하는 도구를 넘어선 무엇이다.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벗겨 내는 칼날이며 원시적 본능이자 태초의 아름다움이며 모든 허식으로부터 벗어난 순수로의 회귀이다. 그래서 시인은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책상보다 침대에서 사는 알몸을 칭송한다.그러니 알몸이여, 너는 하루에 세 살씩 젊어져라너만큼 자주 나를 배반한 것은 없었지만네 멋대로 뚱뚱해지고네 멋대로 주름이 생겼지만나의 시가 침묵과 경쟁을 하는 사이네 멋대로 사내를 만났지만그래도 그냥 너는 알몸을 살아라책상보다 침대에서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싱싱하게나의 방앗간, 나의 예배당이여-「다시 알몸에게」 中문정희의 시는 그 자체로 몸이며 생명이다. 여성의 몸이, 사람의 몸이, 자연의 몸이 물질문명과 인간의 이성에 억눌리지 않고, 그리고 그 결과물인 도시와 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되살아나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남편에게 결혼 안식년을 가지겠다고 말하는(「공항에서 쓸 편지」) 당당한 중년 여성인 시인은 인생의 황혼에서 오는 고독을 그린다. 그러나 그 고독은 혼자인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중년의 안정에서 오는 결핍이다. 그리고 홀로 울며 그 고독을 반기고 고독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방법은 자유에서 찾는다. 그만 부자가 되고 만 시인은 시를 파산 신고하고 행복 벤처를 시작할까 고민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돈도 비싼 옷도 집도 아닌,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함으로써 얻어진다.(「성공 시대」) 결국 한평생 자유를 갈구하며 살았던 시인은 남편과 결혼으로부터, 언어와 시로부터, 나아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시인은 중년의 아줌마가 느끼는 외로움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욕구를 쉬이 공감이 가도록 그려 낸다. 홀로 태어나 끊임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그 고독한 숙명을 찬란하게 하는 방법은 자유라는 거창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아름답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은 이 아줌마의 일상을 시인이 언어로 빚어 냈을 때 그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은 이미 우리에게 한 편의 시이며, 깨달음이며, 현실과 꿈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가 된다. 겨울 안개 길고 긴 터널모든 것이 무사해서 미친 중년의 오후전조등 하나 없는 회색 속을 걸어간다-「우울증」 中새로 이사 와 집수리를 하며부엌 옆 작은 방 하나를홀로 우는 방으로 정했다그 방에서 홀로 울 일로나의 미래는 벌써빛나는 시인-「홀로 우는 방」中 이처럼 문정희의 시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처럼 실험적이지도 환상적이지도 않다. 시인은 서정적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누구나 느낄 법한 일상의 재미와 슬픔을 표현한다. 일상어와 특별하지 않은 소재는 문정희의 입술과 손이 닿는 순간 시가 된다.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던을 지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가진 진정한 힘과 잃어버린 꿈을 그녀만의 색채와 언어로 노래하는 이번 시집은 다시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나는 획일화의 자손이 아니었다. 일찍부터 평범을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시는 당대적인 환호에 자유롭기를 바랐다. 혼자 쓰고, 혼자 시인이고 싶었다. 나는 생래적인 아나키였다. 때로는 시보다 허명이 앞질러 갔고, 때로는 몸이 앞질러 갈 때도 있었다. 나는 많이 떠돌았다. 정신도 떠돌았고 육체도 떠돌았다. 세계의 끝까지 끝의 끝까지 떠돌고 싶었다. 오직 자유와 고독을 갖고 싶었다. 내 안에 진실로 ‘홀로 우는 방’을 하나 갖고 싶었다. 나의 ‘홀로 우는 방’이 당신의 ‘홀로 우는 방’을 두드리고 싶었다. ― 문정희
* 문정희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새떼』,『찔레』,『남자를 위하여』,『오라, 거짓 사랑아』등 10여 권과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 『어린 사랑에게』등 시선집 외에 시극 「구운몽」,「도미」와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1995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 창작 프로그램 참가를 비롯하여 2003년에는 뉴욕 주에 있는 창작촌 ‘아트 오마이(Art Omi)’에 초대되기도 했다. 영역 시집 『Windflower』(New York: Hawks Publishing, 2004)가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스페인어, 일어, 중국어, 히브리어, 루마니아어, 마케도니아어 등 8개 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레바논에 본부를 둔 나지 나만 문학상(Naji Naaman‘s Literary Prizes) 2004년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목차

[ 1 ] 사람의 가을 / 머플러 / 새우와의 만남 / 율포의 기억 / 문 / 흙 / 딸의 소식 / 맹인 잔치 / 시계와 시계 사이 / 나무 학교 / 사랑 신고 / 불의 사랑 / 물을 만드는 여자 / 돌아가는 길 / 다시 알몸에게 / 한밤중에
[ 2 ] 테라스의 여자 / 시가 나무에게 / 공항에서 쓸 편지 / 성공 시대 / 남편 / 눈 오는 날의 가족사진 / 홀로 우는 방 / 밤에 나타난 쾌속정 / 꼬리를 흔들며 / 찬밥 / 그리운 도깨비 / 거짓말 / 기억 / 손의 고백 / 파 뿌리 /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술 마시는 사람 / 조등이 있는 풍경
[ 3 ] 석류 먹는 밤 / 딸아 미안한다 / 결혼 기차 / 산에는 산만 있을까 / 솔개를 기다리며 / 우울증 / 목을 위한 광시곡 / 동백 / 머리 자르기 / 벌레를 꿈꾸며 / 초록 나무 속에 사는 여자 / 연인에게 / 가면 / 허공 무덤 / 나의 소피아 / 나의 장미 / 시인을 위하여
[ 4 ] 그의 마지막 침대 / 카메라와 함께 / 나의 집은 어디에 / 커피 가는 시간 / 미친 새가 있는 풍경 / 아파트 동굴 / 나 하늘을 사랑하지만 / 수련 앞에서 / 풍선 노래 / 서울에서 온 전화 / 세상의 모래들에게 / 너는 대체 누구냐 / 스캔들 고양이 / 땅에서 나온 사랑 /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 / 생일 파티 /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 먼 길

작가 소개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등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영역 시집  『Wind flower』, 『Woman on the terrace』가 출판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했다. 

독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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