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나쁜 연애

문혜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3월 25일 | ISBN 978-89-374-0722-2

패키지 변형판 124x210 · 104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도발적인 야생의 마력을 되살리는 도시 아이들의 주문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언뜻 만화, 영화, 대중음악 등 키치적 요소와 약물에 취한 뒷골목 아이들의 반항과 일탈의 기록인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 시편들을 찬찬히 읽어 보면 잃어버린 순수성과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연민, 그리고 기계적이고 비인간화된 도시 문명을 원초적 생의 에너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화려하고 선정적인 것들로 가득한 도시에 신선하고 생생한 야성을 되살려 냄으로써, 순정하지 못한 지적 포즈보다는 차라리 ‘질 나쁜 연애’가 더 생에 충실한 것일 수 있음을 대단히 명쾌하게 보여 준다.
문혜진의 시에서 몸의 원초적 광기는 대중적 오락과 장난기 어린 몸짓과 뒤섞이면서 상투적인 ‘몸시’의 유행에서 비껴간다. 짓물러 가는 영혼의 순수성에 대한 애처로움과 나쁜 아이들의 몸짓을 뒤섞음으로써 그녀는 이 황량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꿈을 상처 받은 영혼과 육체의 ‘뭉게구름’으로 보여 준다. -신범순(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편집자 리뷰

문혜진의 첫 시집 『질 나쁜 연애』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9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시인이 20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써 온 62편의 시를 모았다. 시인은 ‘도시 아이들’의 놀이 현장을 발랄하고 경쾌한 감각과 과감하고 거침없는 몸짓으로 장난기 가득하게 그려 낸다. 그래서 언뜻 만화, 영화, 대중음악 등 키치적 요소와 약물에 취한 뒷골목 아이들의 반항과 일탈의 기록인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 시편들을 찬찬히 읽어 보면 잃어버린 순수성과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연민, 그리고 기계적이고 비인간화된 도시 문명을 원초적 생의 에너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화려하고 선정적인 것들로 가득한 도시에 신선하고 생생한 야성을 되살려 냄으로써, 순정하지 못한 지적 포즈보다는 차라리 ‘질 나쁜 연애’가 더 생에 충실한 것일 수 있음을 대단히 명쾌하게 보여 준다.
시집 『질 나쁜 연애』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시인이 고민하며 모색해 온 다양한 글쓰기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며 드러나고 있다. 하나의 세계로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은 변화무쌍한 시편들의 가닥을 잡아 보면 대략 4개의 갈래로 묶일 수 있다.
1. 상처 내는 너와 스스로 위로하는 나, 그 미끌거리는 관계

나는 올리브 당신은 뽀빠이 우리는 언제나 언밸런스, 당신은 시금치를 좋아하고 나는 먹지 않는 시금치를 요리하죠 그래서 당신께 시금치 편지를 씁니다 …(중략)… 이것은 자명한 시금치 편지일 뿐이지요 당신은 이 편지를 받고 시금치 스파게티를 먹으며 좋아라 면발 쫙쫙 당기겠지만 나는 동네 공터에서 개똥을 밟아가며 당신을 위해 시금치 씨를 뿌리고 있답니다 시금치가 자라면 댕강댕강 목을 베어버리겠어요! 그때…… 다시 쓰지요. ―「시금치 편지」(부분)
시는 올리브와 뽀빠이라는 만화 속 연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시는 독자의 예측을 끊임없이 깨뜨리며 점점 더 그로테스크한 상황으로 진행되어 마침내는 시금치의 목을 댕강댕강 베어 버리는 ‘복수극’으로 마감된다. 문혜진의 시는 상당수가 이처럼 통속적이고 경박한 소재들로부터 출발하지만 시가 진행됨에 따라 기괴한 육체 파괴의 잔혹극으로 나아가며 그 가운데서도 분해된 몸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심드렁한 태도를 취하는 화자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때 ‘희화화’와 ‘육체화’는 문혜진이 상처 입은 영혼을 다스리며 계속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전략이며, 독자들은 도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친 존재의 고독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또 위로 받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절반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들고양이고 절반은 이미 낮보다 밝은 도시의 밤의 불빛에 익숙해진 존재다. 이 이중적인 존재,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는 자아, 태생에 모호해진 나에게 남은 것은 모두 “쓰레기와 야생의 책”일 뿐이며,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해 버린다. “아무리 지껄여도/ 당신은 당신/ 나는 나!”(「쓰레기와 야생의 책」)
2. 도발적이고 싶은, 그러나 끝끝내 도시적일 수는 없는 야성

문혜진 시는 도시의 정글을 쏘다니는 야생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살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기관(Organ)과도 같은 도시에 던져진 야생의 고양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그저 헤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인이 전적으로 도시적이거나 전적으로 야생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며, 바로 그 때문에 시인에게는 갈등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 속의 이절적인 두 세계가 매끄럽게 섞여 들지 못한 채 자꾸만 버성길 때, 시인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도시 안으로 내던진다. 그러나 그 방식은 진지하거나 엄숙하다기 보단 장난스럽고 경박하다. 그녀는 어째서 이처럼 ‘가볍게 건너뛰기’의 방식을 취하는가? 그것은 도시 문명의 특성과 관계된다. 도시는 콘크리트와 유리질의 견고한 성채이면서 동시에 흡입과 발산이 빠른 대단히 탄력적인 구조다. 그곳에선 진지함은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것이 되며, 무거운 것을 무거운 것으로 이겨 내려는 것은 어리석고 구태의연한 발상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도시에선 심각해지기보단 그저 질 나쁜 연애나 하고 말겠다고 생각한다.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낡은 오토바이의바퀴를 갈아 끼우고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구름의 일요일을 베고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 거야…(중략)…회오리바람 속으로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아가는불량한 남자가 좋아머리 아픈 책을지루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지껄이지도 않지오토바이를 태워줘바다가 펄럭이는바람 부는 길로태풍이 이곳을 버리기 전에검은 구름을 몰고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
―「질 나쁜 연애」부분
그러나 이것은 그저 시인의 몽상일 분이며, 현실에서는 결코 그렇게 쉽게 연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연애는 질이 나쁘거나 좋을 수 없는, 매번 절실하기 때문에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혜진 시에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기계문명과 결합된 육체의 이미지다. 「젖기계를 상상하다」, 「여름에도 눈을 뿌려줘」, 「난 내 폐 반쪽이 날아갈 때까지 소리 지를 거야」, 「문신」 등 일련의 시에는 신체가 기계화된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기계화함으로써 생의 존재론적 무게를 견뎌 내는 한 방식이며, 그리하여 이 도구화된 몸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혜진은 이 비극을 비장한 것으로 몰아가지 않고 희화화함으로써 단숨에 그 무게를 털어 낸다. 이렇게 야생은 도시 속에서 살아나가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3. 가족은 영원히 서글프다

문혜진 시의 야성, 혹은 야생성은 가족-고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의 원초적 형질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인 고향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동물적 존재들이다. 「혀」, 「물개」, 「개」, 「거위」, 「문조」, 「붉은 안개와 말」, 「엉망진창 물고기인간의 모노드라마」 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고향은 대단히 물리적이고 생생하며 살아 있는 육체의 존재로 시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처럼 원형적 이미지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 있는 자연은 그러나 도시적 감수성으로는 이해될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그래서 도시에 던져진 야성은 쓸쓸하다.
4. 황량한 도시의 뒷골목 위로, 가볍게 떠오르기

문혜진 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키치 문화가 나타난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싸구려’를 혐오하지 않고 즐긴다. 즐긴다는 것은 유희한다는 뜻이며, 모든 격식 있는 포즈를 버리고 적나라해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적나라해진 시인의 화자는 거의 아이와도 같은 눈빛을 가진다. 그리고 그 천진한 시선에 비친 도시의 환영과 허상을 거침없이 발설함으로써 독자들은 숨길 수 없는 치부를 들킨 것처럼 뜨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과감하게 ‘말해’ 버려도 여전히 남는 질문은 있다. 과연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도시에서 떠나고 싶은, 그러나 떠나지지 않는, 혹은 떠날 수 없는 무수한 ‘나’들은 떠나지 않고, 다만 살아갈 뿐이다.
‘질 나쁜 연애’라는 도발적인 제목만으로 독자들이 무엇을 기대했든, 이 시집은 그 기대를 시원하게 배반할 것이고 동시에 기대했던 이상의 통쾌함과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감각 있는 젊은 여성 시인의 과감하고 발랄한 행보가 기대된다.

* 문혜진 197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한양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목차

혀공작푸른 완두콩의 오후물개여름비이팝나무 아래서시금치 편지질 나쁜 연애휴양지에서의 여름불타는 사다리혼혈 개뒤통수 조심해라벙어리 가수염소와 달슬픈 열대심리 치료껌요리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도마 위의 사랑여름 구름과부와 고양이젖무덤여름닭저의 눈깔을 독수리 눈깔로 바꿔주세요 제 눈깔을 고양이 눈깔로 바꿔주세요날것에게 몸을 내어주다쓰레기와 야생의 책거위분홍 벽독사를 생식하는 법아이스크림앨리스의 숲개구리알 푸딩개문조체셔 고양이도 눈물을 흘릴까?고장난 방자동기술붉은 안개와 말여름에도 눈을 뿌려줘흡혈과도 같은 키스젖기계를 상상하다수족관 환상뭉게구름여름 저녁난 내 폐 반쪽이 날아갈 때까지 소리 지를 거야데킬라봄밤의 즉흥 연주문신새의 몰락나이브 비전개미요리說야만의 자식들엉망진창 물고기인간의 모노드라마바그다드의 구름들고래탕진혈서어항 속의 날들놀이터 소년마릴린 먼로의 분홍색 피는환생

작가 소개

문혜진

197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질 나쁜 연애』 『검은 표범 여인』이 있다. 『검은 표범 여인』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독자 리뷰(1)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질 나쁜 연애
베스 201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