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에 대하여

알랭 바디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8월 16일 | ISBN 978-89-374-5450-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280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혁신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절망의 작가 베케트에게서

희망과 사랑의 행복의 흔적을 드러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 읽기’는, 지금까지의 베케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작가의 글쓰기가 지닌 혹독한 작업의 의미와 그 저변을 이루는 용기에 대한 성찰이다. 바디우는 베케트 문학에서 부조리와 절망과 허무의 징후들만을 읽어 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존재와 언어 사이의 극도의 긴장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을 다시 견뎌 내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베케트의 텍스트 안에 흩어진 말들과 ‘산문에 내재된 시’가 만들어 내는 예외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다. 베케트의 난해한 텍스트들에 대한 바디우의 치밀한 분석과 성찰을 담은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부정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인식되는 베케트가 실제로 지향한 미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마치 암호나 주문과도 같은 베케트의 언어들만큼이나 힘겨운 작업이지만, 작가와 비평가의 탐색이 만나는 이 ‘예외적인 순간들’은 예술이 견지해야 할 준엄한 가치와 용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아마도 고도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할 것이지만, 그가 무언가가 도착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집착에 대한 표징인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포조가 ‘당신들은 누구요?’라고 물을 때, 아리스토파네스와 플라우투스, 몰리에르와 골도니, 그리고 채플린의 계보를 이어, 블라디미르가 이렇게 대답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린 인간이오.”

편집자 리뷰

■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하는 베케트

 

베케트는 흔히 절망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저 절망적인 기다림만 있을 뿐, 존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 그 자체를 회의하는 작가. 바디우는 이러한 베케트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베케트의 작품에서 보이는 외관상의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 그만』에 등장하는 “불모의 땅, 그러나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이라는 구절 또는 “행복을 알아 갈 시간.”으로 끝나는 『잘못 보이고 잘못 말해진』의 긍정성 등이 그러하다. 우리 존재의 터는 “불모의 것”이지만,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떤 희망이 솟아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단언이다. 긍정적인 베케트가 바디우의 손에서 하나하나 드러난다. 그 절망 속에서도, 절망을 이겨 내고 계속 나아가는 힘. 그것이 베케트에게서 바디우가 끌어내는 예술적 사유의 힘이다. 바디우는 베케트의 사유가 “긍정의 지점들을 따로 떼어 내어 고양시키는 사유”라고 평가하며, “베케트의 모든 재능은 거의 과격할 정도로 긍정을 지향하고 있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그는 언제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유한한 인간 동물로 머무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사건과 진리를 만나 주체가 되었을 때, 자신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사유를 베케트에게서, 어쩌면 가장 멀리 떨어진 것 같은 이 절망의 작가에게서 구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절망만은 아니며, 대지는 그렇게 항상적인 불모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바디우의 사유 속에서 베케트는 진리의 희망과 사랑의 행복을 드러내는 작가가 된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나를 흔들어 놓는 격언과도 같은 한 문장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말하는 자는, 눈물을 가득 머금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이렇게 선언한다.

 

오직 나만이 인간이며 나머지 모두는 신성하다.”

 

■ 오로지 ‘잘못 말하기’와 ‘잘못 보기’만이 ‘법칙’을 깨고 새로운 창안을 가능하게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한 가지는 바로 바디우가 베케트에서 발견하는 ‘사건의 사유’이다. 『와트』에서 “엄격한 동일성의 원칙이 지배하는 장소”인 노트 씨의 집은 법칙성이 지배하는 상황을 표시한다. 이 장소는 구조적 법칙성이 지배하는 장소이지만 그 상황에 추가되는 여러 ‘에피소드’들, “형식적으로 빛나고, 그 내용은 가늠할 수 없는” 일종의 보충물을 피해 갈 수 없다. 이 에피소드들은 일종의 사건적 돌발이다. 이러한 사건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사건에 이름을 부여하는 명명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사건의 명명은 『잘못 보이고 잘못 말해진』의 주제가 된다. 바디우에 따르면 “잘 말하기란 확립된 의미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잘 보는 것과 잘 말하는 것은 법칙 안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잘못 말하기’ 또는 ‘잘못 보기’는 바로 이러한 법칙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오로지 잘못 말하기와 잘못 보기만이 이러한 법칙을 깨고 새로운 창안을 가능하게 한다. 법칙성을 파괴하는 사건을 기존의 법칙에 비추어 잘못 말하는 것이 바로 사건의 명명이다. 그 명명은 항상 ‘잘못 말해진 것’의 질서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의 창안이 이루어진다. 사건 없이 새로움은 도래하지 않으며, 모든 새로운 것은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는 단순히 재생산될 뿐이며, 그 구조를 가로지르는 돌발적인 출현은 불가능하다. 법칙성의 균열에 따라 다른 방식의 보기와 말하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베케트에게 그러한 사건은 타자와의 만남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어떻게』와 『박탈자』 그리고『이제 그만』은 바로 만남을 통하여 수립되는 유적 인류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박탈자』에서 인간은 자신을 박탈해 줄 타자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마침내 타자를 만나 익명성에서 벗어난 독특한 존재가 된다. 『그것이 어떻게』에서 필멸의 인간들은 통조림이 든 가방을 끌어안고 진창을 기어 다니다가 타자를 만나 이야기를 강탈당하거나 강탈한다. (수동적 입장의) 희생자는 집행자를 저버리고 여행할 것이고, (능동적 입장의) 집행자는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만남의 결과로 주어지는 유적 인류의 형상이다. 고독한 주체인 코기토의 주체, 어쩔 수 없이 말해야만 하는 유아론적 주체는 이제 만남을 통해 심각하게 변형된다. 그렇게 베케트는 주체의 형상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성(性)의 둘로 통합해 낸다. 그 둘이 만들어 내는 온갖 우여곡절은 모든 절망을 넘어 행복으로 향한다. 그렇게 베케트는 예술 안에서 삶의 불행에서 행복으로의 이행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의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부조리 연극’의 대표 작가라는 타이틀이 중점적으로 부각되지만, 그것만으로 베케트 문학의 진면모를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그의 글쓰기는 더 폭넓은 영역에서, 더 깊이 있게 이루어져 왔다.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은, 이 책의 저자 바디우가 역설하듯 “절도와 엄밀함과 용기의 교훈”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베케트가 꾸며낸 픽션 혹은 스펙터클의 조각들은 (칸트적 의미의) 비판적 질문들을 아름다움의 시험대에 올리고자 한다. 칸트의 그 유명한 질문들, 즉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삼중창으로 화답한다. ‘내가 갈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일 것인가? 내게 목소리가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1960년 이후, 거기에 이 질문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타자가 존재한다면 나는 누구일 것인가? 베케트의 작품은 이 네 가지 질문들을 언어의 속살을 통해 다룬 것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규정할 수 없는 실존의 조각들을 아름다움을 통해 탐색하는, 그리고 시를 통해 반쯤은 성취된, 성찰적인 사유를 기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케트가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질문에 빠져 있다고, 그리고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 중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믿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니다, 그의 산문 작업은 분명, 사유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지점들을 따로 떼어 내어 고양시키는 쪽으로 나아간다. 요컨대, 베케트의 모든 재능은 거의 과격할 정도의 긍정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언의 형식은 그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으며, 그것은 항상 열정과 앞으로 나가려는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수많은 잠언들 중 하나, 그리고 결론. “불모의 땅, 그러나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 아! 실로 이 땅의 불모함을 말해야 할 것이었으나! 결국엔 오직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이 산문 속에서 반짝거릴 뿐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 글이 ‘맑게 울리고’ 우리에게 용기를 남겨 주게 될 것임을 안다.”

 

 

■ 「역자 후기」 중에서

 

베케트는 집요하다. 그는 어떤 곤경에 주목하여 그것을 끝까지 몰고 간다.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비참하고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가운데, 모든 가능한 사유의 실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거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바디우는 그 미세한 희망을 주저하지 않고 진리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베케트에게 누구도 발견하려 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를 희망의 예술가, 진리의 예술가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바디우 자신의 진리에 대한 신념이 진하게 묻어 있다. 그는 베케트를 통해 말한다. “예술의 임무는, 모든 진리가 기원하는 이 예외적인 지점들을, 우리의 인내가 재구성해 낸 조직물 안에 간직하고 붙들어, 별처럼 빛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목차

1장 유적인 것에 대한 글쓰기: 사뮈엘 베케트

명령과 명령의 운명/ 존재의 장소로서 회색 암흑/ 고문으로서의 유아론적 주체에 대해/ 1960년 이후 베케트 작품들의 변동/ 사건, 의미, 명명/ 주체의 형상들과 성을 구분하는 방식들/ 사랑과 그 수적 성격: 하나, 둘, 무한

 

2장 베케트: 지칠 줄 모르는 욕망

어떤 ‘젊은 멍청이’/ 아름다움/ 방법적 고행/ 존재와 언어/ 고독한 주체/ 사건과 그 이름/ 타자들/ 사랑/ 향수/ 연극/ 다시 아름다움……

 

3장 도래하는 것

도래하는 것

 

4장 존재, 실존, 사유: 산문과 개념

언어들 사이와 존재의 속기록/ 말하기, 존재, 사유/ 필수적인 사유-셋/ 질문, 혹은 질문의 조건들/ 존재와 실존/ 말하기의 공리/ 유혹/ 악화시키기의 법칙들/ 악화시키기의 실행들/ 방향을 유지하기/ 더 나빠질 수 없는 공백/ 나타나기와 사라지기. 움직임/ 사랑/ 나타나기와 사라지기. 변화. 두개골/ 두개골로서의 주체. 의지, 고통, 기쁨/ 주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사건

 

텍스트 선독

역자 후기

작가 소개

알랭 바디우

1937년 모로코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1968년 혁명을 계기로 마오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며 『모순의 이론』,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등의 정치 저작을 집필했다. 문화대혁명의 실패와 마르크스주의의 쇠락 이후 해방을 위한 또 다른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이론』을 출간했고, 1988년 『존재와 사건』에서 진리와 주체 개념을 전통 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범주로 세웠다. 그 후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윤리학』, 『비미학』, 『메타정치론』 등을 썼고 2006년에는 『존재와 사건』의 후속작인 『세계의 논리』에서 세계에 나타나는 진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뤘다. 현재 『존재와 사건』 시리즈의 제3권인 『진리들의 내재성』을 집필하고 있는데, 진리의 관점에서 존재와 나타남의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책 『행복의 형이상학』은 『진리들의 내재성』으로 향하는 바디우의 철학 여정에서 ‘행복’이 핵심 개념으로 떠오르는 계기를 보여 주는 동시에, 삶의 문제를 직면하는 바디우 철학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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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민음사에서 역자 강의가 있었죠?
etoile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