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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첨부파일


서지 정보

박판식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3년 6월 30일

ISBN: 978-89-374-0815-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4쪽

가격: 9,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95

분야 민음의 시 195, 한국 문학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3년 7월 26일 | 최종 업데이트 2013년 7월 26일 | ISBN 978-89-374-5791-3 | 가격 5,600원


책소개

나의 말과 너의 말이 뒤섞인 거울의 말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그려 낸 비참하게 아름다운 모자이크화

자기 언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해 온 박판식 시인은 그 누구보다 세계에 대해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에 실린 50편의 시들은 깨진 거울 조각처럼 예리한 감각을 보여 주면서도,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든 아름다운 모자이크화처럼 색색으로 반짝인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거울’이다. 박판식의 시에서 거울은 단순한 이미지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서를 지배하고 시의 구조를 떠받치고, 시의 발화되는 방식까지 침범한다. 시집 곳곳에는 ‘깨진 거울’이 등장한다. 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거울로 흉터 난 얼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나 “깨진 거울로 조각난 표정을 맞추는 놀이”에 가깝다. 마치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연결시키면서 한 편의 모자이크화 같은 시적 풍경을 만들어 가는 방식. 그것이 박판식 시의 발화 방식이며 문법이다. 「성(聖)서울」, 「아이리스」, 「전락」이라는 시는 같은 제목의 시가 나란히 두 편씩 실려 있다. 마치 거울을 마주한 듯 꼭 같은 제목의 시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세계의 균열을 인식하고 체험한 자의 목소리로, 거울을 바라보며,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당신과 어울리는가?

■ 슬프고 비참한 풍경 속에서 온갖 진통을 겪으며 피우는 아름다운 꽃

‘물’에 관한 기억은 그동안 박판식의 시에서 중요한 풍경을 이루어 왔다. 그가 그리는 물의 이미지는 흐르는 물이 아닌, 우물물, 정화수, 웅덩이처럼 어딘가에 고여 있거나 담겨 있는 이미지다. 그 물들은 그 안의 사물을 품고 껴안는다. 그러나 그의 물은 아늑하고 따뜻한 물이 아닌 차가운 물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원(始原)에 대한 뜨거운 갈구가 차가운 물에 둘러싸여 나오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두 번째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에서 ‘물’은 ‘거울’로 대체되었다. 첫 시집에서 ‘손거울’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 번 등장했던 ‘거울’이 두 번째 시집에서는 거의 ‘물’에 맞먹을 만큼 빈번하게 등장한다.

마름모꼴의 거울 앞에 서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 그건 바로 너였고
루비가 박힌 눈 그건 바로 나였다
거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비춰 주었다
서랍장도 유리도 그 유리에 앉은 먼지도 없었다
가장 빠른 말조차 아직 달려 나가지 않은 깨끗한 거울
네가 빠져나간다, 그 거울 속에서
나는 뒷걸음질 쳐 축제의 마술 거울로 세 조각 난 내 몸을 보았고
삐걱거리는 마루의 틈을 벌려 힘없이 무너져 가는 지하실의 얼룩을 보았다
-「거울, 굴절 없는 물」 부분

「거울, 굴절 없는 물」이라는 제목에서 박판식 시에 등장하는 ‘거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굴절시켜서 보여 준다. 물 밖의 세계로 대변되는 현실의 논리는 물속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상상의 논리로 포섭된다. 차가운 물의 세계를 더 차갑고 단단한 세계로 이어받는 곳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거울이다.
‘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세계’의 자화상일 수도 있는 그 상을 담아내는 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거울의 역할이다. 그 거울에 비친 것은 맑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들이 아니다. 이 세계는 “어둡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허밍버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박판식의 시가 보여 주는 거울이다.
박판식 시에서 거울은 단순한 이미지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서를 지배하고 시의 구조를 떠받치고, 시의 발화되는 방식까지 침범한다. 시집 곳곳에는 ‘깨진 거울’이 등장한다. 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거울로 흉터 난 얼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거울을 든 사람」)이나 “깨진 거울로 조각난 표정을 맞추는 놀이”(「토르소」)에 가깝다. 마치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연결시키면서 한 편의 모자이크화 같은 시적 풍경을 만들어 가는 방식. 그것이 박판식 시의 발화 방식이며 문법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 잘 드러난다.

블루라는 술집 테이블 위에 안경을 두고 나왔다
10년 전의 일이다, 나는 불붙은 잎사귀들을 흘려보내지 못해
잎사귀와 같이 타 버린 가로수다
불 속에선 모든 것이 장애물, 발작
다리가 부러진 인형 베티도 불에 달라붙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어디로 가는가, 최후의 러시아 황제를 태운 기차여
자신의 운명과 가장 먼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누구든 인생을 체념하면 별것 아닌 존재가 된다
열풍에 타 죽은 나가사키 아이들에게 호감이 간다
시체나 기형의 신체를 보여 주고 나면
영악한 아이들은 더 다루기 어려워진다
이왕이면 현장 인솔자의 유니폼을 입고 죽고 싶다
나는 생활에 반론을 갖고 있다, 죽음의 근사한 파견 노동자여
세계는 왜 나에게 즐겁게 봉사하지 않는가
운명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게 낫다
너에게 줄 따뜻한 물 한 잔을 위하여 오늘은
굳이 셔츠를 입고 수염을 깎는다
-「결별의 불」 전문

여러 장면들이 교묘하게 어긋나는 이 시의 초점은 한곳으로 쉽게 모아지지 않는다. 은유가 아닌 환유에 기댄 이러한 시선은 박판식 시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도끼 자국처럼 흉이 지고 금이 간 ‘내 얼굴’의 자화상이기도 한 깨진 거울의 세계는 나에 대해서도 너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갈라지고 조각난 목소리를 들려준다. 위 시처럼 언뜻 하나의 초점으로 모으기 힘든 목소리들이 병치되어서 한 편의 모자이크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돌아갈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세계의 불완전함을 불완전한 목소리로 극대화해서 들려주는 박판식의 모자이크화는 갈래갈래 다른 색깔로 분할되지만, 그럼에도 그 이면에 거느린 정서만큼은 일정한 톤으로 유지된다.
세계의 균열을 인식하고 체험한 자의 목소리로, 거울을 바라보며,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당신과 어울리는가?

모자와 박쥐우산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물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완용 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명이 있다면
더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딸이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태어나지 않은 딸과 늘 동행하고 있다
웅덩이가 모자처럼 떨어져 있다 인생은
그 위를 지나가는 멀리서 온 구름이다
옷을 입은 개가 맨발일 때
이 경이로운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얼굴이 세 개나 네 개로 늘어날 때
모자 대신 접시를 머리에 얹고 걸어도 이상할 게 없다

개업식 경품 행사로 1등 자전거에 당첨된 일이 있다
빵집 주인이 내 이름을 세 번 연속 불렀는데
끝내 나가지 않았다, 빵집은 반년 만에 폐업했고
이 시장 골목에선 흔한 일이다, 처녀시절 아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다

개는 죽기 직전 젖은 걸레 위로 올라갔고
자신의 똥 위로 올라갔고 이부자리 위로 올라갔고 나의 배 위로
올라갔다, 죽은 개는 나와 어울린다, 개가 죽고 문득
아들이 태어났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


목차

가족사진

공(球)

거울을 든 사람

거울, 굴절 없는 물

결별의 불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아가라

너를 두고 천사들이 다투었다

빗사발

당신의 이름이 태어난 자리

망(茫)

모르는 척

물벌레들의 하루

발가숭이들의 거짓말

번쩍거리다

서광

성(聖)서울

성(聖)서울

언제나

슬픔의 기원

아담의 시

아이리스

아이리스

오후 4시 51분 15초

안락의자, 작별 인사

옮기다

옷장 속 거울

완전히, 죽다

우아하게

음(音)

전락

전락

지나간다

찾지 못하는

찬드라의 손

카나리아

토르소

카프리올

칼라하리, 서북쪽 350km

쿰이라는 나라의 오해

파트너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두 번째 여행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첫 번째 여행

허밍버드

헛소리

해후

A에서 A까지의 귀머거리

 

작품 해설/김언

비참하게, 아름다운, 모자이크화


편집자 리뷰

■ 작품 해설에서

그가 들여다보는 세계의 흉터는 거울처럼 자신의 흉이자 불행으로 반사되며, 조각조각 갈라지며 반사되는 부산물은 여전히 그의 말이자 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까닭 없이 우산살이 부러지는 작은 파국만으로도/ 내 손바닥엔 흉이 생기고/ 떠돌이 개가 그 흉을 물고 늘어지고/ 입 안에 침과 눈물이 고이고/ 문득 구(口)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깨지고 조각난 것이든 어둡고 더러운 것이든 거울이 존재하는 한 “이 세계는 혼자서 겪는 환상이 아니”며, 따라서 거울의 말은 나의 말도 너의 말도 아닌 세계 자체의 말이다. 그것이 비록 슬프고 비참한 풍경일지라도 온갖 진통과 산통을 겪으며 피우는 꽃은 다른 곳이 아니라 슬프고 비참한 바로 그곳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도약이 곧 전락이라면 역으로 전락 또한 도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며, 무엇보다 “운명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낫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하며 탄생한 시집 한 권을 마저 읽는다. ‘비참하게 아름다운’ 한 폭의 모자이크화에 나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매혹될 거라는 확신과 함께. – 김언(시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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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식

1973년 함양에서 태어났다.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밤의 피치카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