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오래 미워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아픔으로 통찰하는 인간 미학
제 생애 가장 혹독한 밤을 보내고 있을 당신에게 건네는 지독한 사랑 고백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통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아 온 작가 이응준의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은 다시 철저히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이 마치 퍼즐이나 모자이크처럼 서로 겹쳐지거나 충돌하며,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며,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의 특장인 시적인 문체와 정교한 구성, 거침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기독교의 신학적 해석 안에서 인간의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어둡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즉 어둠의 심연을 겪고 있다. 그는 이 세계가 어둡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둠 그 자체를 보여 주며, 어둠을 잘 이해하기 위해 어둠에 잠긴다. 『밤의 첼로』는 어두운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인간을 둘러싼 혼돈과 좌절을 어둠 그 자체를 그린, 여흑(餘黑)의 소설이다. 그는 결코 이 어두운 세상을 초월하거나, 벗어나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경계와 한계를 인정하면서,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간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첼로 소리다. 『밤의 첼로』는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 입은 이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가 꽃혀 영혼을 밝히는 상처”가 되어 줄 것이다.
■ 단 하나의 문장으로 오늘의 문학을 넘어서고, 단 한 편의 소설로 기성 세계의 틀을 깨부수다
이응준은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눈물이 맺히는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이 어떤 거대한 진리보다 강하다고 믿는” 지극한 낭만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이다. “무리를 스스로 저버린 늑대가 어둠 속에서 홀로 죽음에 도전하듯” 이응준 작가는 자신과 문학과 세상과 싸워 오며 아름다운 것, 오직 예술만을 추구해 왔다. 소설가 김원일은 이 소설을 두고 “단 하나의 화두에 몰입해 도(道)에 이르듯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여 신과 겨뤄 보겠다는 패기”가 돋보이며, “단 하나의 문장으로 오늘의 문학을 넘어서겠다는 야심, 단 한 편의 소설로 기성 세계의 틀을 깨부수겠다는 지적 승부욕, 작가의 그러한 의지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라고 평했다. 이렇듯 『밤의 첼로』는 현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을 던지며, 이 시대의 작가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보여 준다.
대한민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흡수통일 이후 5년, 그 ‘어두운 신세계’를 그려 낸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은 우리 시대 통일 문학을 새로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국가의 사생활』이 통일 이후 상황을 그린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했고, 그 희소성에 놀라움을 표한 바 있다. 또한 정치색이 완전히 다른 두 남녀 국회의원의 운명적 사랑을 유쾌하게 그려 낸, ‘국회판 로미오와 줄리엣’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지난 4월 신하균, 이민정 주연의 SBS 수목드라마로 방영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이응준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작가다.
이번에 출간된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는 다시 철저히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여섯 편의 소설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며,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노래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인지,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 각본가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응준은 그동안 그의 작품들을 통해 시적 언어와 소설적 구성, 영화적 감각으로 한국 문학에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그의 특장인 시적인 문체와 정교한 구성, 거침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기독교의 신학적 해석 안에서 인간의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인 권진규는 “문득 그는 천국처럼 머나먼 곳의 상처 입는 어떤 이들과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아프게 연결돼 있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버드나무군락지」를 중심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고통으로 인한 상처다.
「물고기 그림자」에 등장하는 무명 여배우 은희와 맹인 수학 교사 목남은 「버드나무군락지」에서 고재만이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옛 애인과 그녀의 새 애인이다. 「유서를 쓰는 즐거움」에서 수한의 조카 보영이 병원에서 알게 된 Y라는 화가는 「버드나무군락지」에 다시 등장하며, 「낯선 감정의 연습」에서는 자화상만 그리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Y가 보영에게 이야기해 주는 군대 있을 때의 이단(異端) 신병이 바로 「버드나무군락지」의 안중각이다. 「낯선 감정의 연습」에서 ‘나’(이예훈)와 사귀었던 욱경의 사막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는 「버드나무군락지」에서 그대로 반복되며, 「밤의 첼로」에서 병운이 그레고르 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홀연히 사라진 곳이 바로 ‘버드나무군락지’이다.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에 등장하는 지리산 펜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버드나무군락지」에서는 신문 기사로 소개되기도 하고, 여주인공 한나가 그 펜션에서 만났던 인도 혼혈 소녀가 바로 「유서를 쓰는 즐거움」의 보영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마치 퍼즐이나 모자이크처럼 서로 겹쳐지거나 충돌한다.
이응준 작가는 결코 이 어두운 세상을 초월하거나, 벗어나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정성을 단순히 긍정성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정성을 부정성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숭고함’을 보여 준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독한 슬픔에 숨을 못 쉬는 당신을 차마 버려두고 갈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게 그는 어떤 경계와 한계를 인정하면서,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간다.
■ 어두운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어둠 그 자체를 그린 여흑(餘黑)의 소설
『밤의 첼로』에 실린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어둡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즉 어둠의 심연을 겪고 있다. 그가 그려 내는 ‘어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아니라, 그야말로 ‘어둠’ 그 자체가 ‘보인다.’ “이 세계가 어둡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어둠 말고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어둠에 잠기는 것보다 어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 그는 이 세계가 어둡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둠을 보여 주며, 어둠을 잘 이해하기 위해 어둠에 잠긴다. 『밤의 첼로』는 어두운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인간을 둘러싼 혼돈과 좌절을 어둠 그 자체로 그려 낸, 여흑(餘黑)의 소설이다.
여섯 편의 소설에는 ‘진짜 어둠’을 본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눈을 감으면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던 어둠의 적막” 속에서 “당장 저 어둠의 지평선 너머 이 세계의 끝 자신의 죽음까지 걸어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어둠은 절망적이지 않다. 어둠 그 자체인 이 세상은, “극단적으로 황폐하여 아무것도 욕망할 수가 없”고 “아무것도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가 없”는, “그래서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걸어가는 길은 “막막한 어둠의 지도 어딘가를 가로지르고 있을 흰 늑대의 궤적”과도 같다. 그것은 외롭고 처연하지만, “별들의 바다 그 얼어 버릴 것 같은 은빛 출렁임을 따라” 울려 퍼지는 “흰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첼로 소리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의 말처럼 이응준은 “세계에 냉담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신을 모독하고, 인간을 경멸한다.” 이질성과 차이, 분열과 파열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들과 ‘불화’한다. 하지만 그는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것들을 눈이 멀 정도로 환멸하면서도 인간의 곁을 아주 떠나 버리지는 못”한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처럼, 이 연작소설 『밤의 첼로』는 이응준이 오랫동안 세상을 사랑해 왔다는, 지독한 고백이다.
『밤의 첼로』는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 입은 이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가 꽃혀 영혼을 밝히는 상처”가 되어 줄 것이다.
■ 추천사
이응준의 이 연작소설집은 단 하나의 화두에 몰입해 도(道)에 이르듯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여 신과 겨뤄 보겠다는 식의 자세가 무모해 보이지만 그 패기가 가상하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오늘의 문학을 넘어서겠다는 야심, 단 한 편의 소설로 기성 세계의 틀을 깨부수겠다는 지적 승부욕, 작가의 그러한 의지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이 책은 시적인 문체와 모더니즘으로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기독교의 신학적 해석 안에서 인간의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무리를 스스로 저버린 늑대가 어둠 속에서 홀로 죽음에 도전하듯 단독자의 결단을 통해 이 시대의 작가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보여 준다. ― 김원일(소설가)
■ 작품 해설에서
이응준의 『밤의 첼로』에 실려 있는 소설들이 이질적인 어둠의 언어들로 채워진 방주와 같은 소설들이라면, 그들을 이어 주는 다리와 같은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소통을 빙자한 충돌이나 침입이 가능할 뿐이다. 해결 불가능한 갈등을 숨기지 않으면서, 혹은 불통만이 가능한 소통을 노골화시키면서, 이응준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증인이 되려고 한다. 세계와 사랑, 신과 인간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분쟁들을 활성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응준은 세계에 냉담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신을 모독하고, 인간을 경멸한다. 그들이 형성하는 관계의 이질성과 차이, 분열과 파열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종합이나 화해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이응준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들과 ‘불화’한다. ― 김미현(문학평론가·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작가의 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다가 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불모와 모순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만큼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법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이제껏 내가 이승이라는 사막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깨어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것들을 눈이 멀 정도로 환멸하면서도 인간의 곁을 아주 떠나 버리지는 못하는 얄궂고 답답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칼날에 상처 입듯 쾌락에도 상처받는다. 나는 인간에게 상처받았듯이 문학에 의해 상처 입었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다.
나는 후회로 가득 찬 한 인간으로서 변명이 부질없는 청춘과 멀어지며 언뜻 지루해 보이는 질문들을 차마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은 무엇이었던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신기루에 불과한 악몽이거나 악몽에 가까운 신기루일 뿐이었을까. 사랑의 아픔으로 통찰하는 인간 미학과 닫힌 마음으로는 감각할 수 없는 인연의 구조를 화두로 삼은 이 연작소설집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주장하고 있다.
하여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 입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위로를 받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위로를 갈망하는 인간에 대해 숙고해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이 한 몸이 돼 화살처럼 날아가 꽂혀 영혼을 밝히는 상처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생과 인생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뒤돌아서면 일제히 한 줌 재일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해서 그토록 미워했던 일들도 다 어리석은 과거일 뿐이다. 다만 내 문학의 목표는 오늘보다 내일 단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해 있는 것이다. 유서 깊은 탐미주의자답게 이기고 지는 것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겠다. 오로지 어떤 거대한 진리보다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을 얻기 위해 슬픔을 귀하게 여길지언정 한심한 눈물보다는 무조건 강해질 것이다. 죽는 그날 그 순간까지, 나는 죽음이 인간을 대하듯 싸우고 싶다.
■ 본문 중에서
……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신은 기쁨이 아니다. 신은 슬픔도 아니다. 그저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르는 조용한 노래일 뿐.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저 첼로 소리를. ―「밤의 첼로」, 19~20쪽
원래 인간은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았다. 훗날 땅 위로 올라온 인간은 바다에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대신 인간의 내면에는 물고기 모양의 그림자가 남았는데, 이 물고기 그림자는 자기의 주인이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되면 견디다 못해 멀리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언제든 그 극심한 고통이 자기 주인을 다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되돌아온다. 그런데 그때 만약 그 사람의 육신이 어떤 식으로든 환란을 이겨 내지 못하고 죽거나 그래서 사라져 버렸으면 물고기 그림자는 온 세상을 바다 삼아 정처 없이 헤엄치며 돌아다닌다. ―「물고기 그림자」, 48쪽
어둠 속에서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얼마나 끔찍한 흉터로 뒤덮여 있는지 앞이 보이는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라고 목남은 생각했다. 은희가 목남의 어깨에 금 간 얼굴을 기대어 왔다. 창밖에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바다가 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목남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독한 슬픔에 숨을 못 쉬는 당신을 차마 버려두고 갈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순간. 목남은 은희의 가냘픈 몸 안에서 물고기 그림자 하나가 쑤욱 빠져나와 어둠의 바다로 천천히 헤엄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없이 불안해져서, 저 물고기 그림자가 언제든 되돌아왔을 때 이 상처받은 여인의 몸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녀의 진짜 얼굴을 살며시 더듬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물고기 그림자」, 49쪽
사막 밑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어요. 녀석을 낚으려면 모래를 깊이깊이 파 내려가야 해요. 사막에도 백 년에 몇 번은 폭우가 있거든. 그때 빗물을 타고 지하 수맥으로 빠져 들어가 번식하게 된 거예요. 사막 아래 물이 출렁인다고 하면 안 믿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홀연히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거거든요. ―「낯선 감정의 연습」, 72쪽
밤의 첼로
물고기 그림자
낯선 감정의 연습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
유서를 쓰는 즐거움
버드나무군락지
작가의 말
작품 해설_ 토성(土星)의 문학_ 김미현
“영원한 탐미주의자 이응준의 소설 미학이 빚어낸 여섯 편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저 첼로 소리를.”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통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아 온 작가 이응준의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은 다시 철저히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이 마치 퍼즐이나 모자이크처럼 서로 겹쳐지거나 충돌하며,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며,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의 특장인 시적인 문체와 정교한 구성, 거침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기독교의 신학적 해석 안에서 인간의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
사랑과 죽음 속에 이야기는 이어진다.
|
황정수 | 2015.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