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여태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1월 11일 | ISBN 978-89-374-0811-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40 · 152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스윙』을 거쳐

점차 증강되는 ‘침묵’의 감각-최현식(문학평론가)

 

침묵과 기다림은 충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운동

그 유령의 문장으로 건져 올린 말들의 풍경이 삶의 진실을 관통한다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여태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스윙』(2008)을 펴낸 지 5년 만에 출간되는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60편의 시를 담았다. 1부와 3부에서 선보이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연작과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독서」 연작은 집중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공감대 높은 일상의 진실을 서정적으로 전달한다. 2부와 4부에는 연작시와 연속적인 선상에 있으면서도 산뜻하고 발랄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시들을 배치했다. 여태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말들의 풍경과 그에 연계된 존재의 심연, 그리고 한계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초극하는 말들의 새로운 욕망을 비근한 일상 속에서 담담히 발견하고 채취해 낸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침묵을 때로는 비애를 보여 주며 특유의 여백 안에서 묵묵한 열정과 열망으로 기원을 더듬는 그의 시 세계는 무섭게 다정하고 다정하게 무섭다. 낮게 스며들며 또 다른 파격을 보여 주는 여태천의 시는 정념으로 무장한 서사시이자 귀환 없이 끝이 난 서정시다.

편집자 리뷰

일상의 현상에서 발견하고 채취한 삶의 흔적들을 담담히 그리는 시 세계

여태천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현상들을 묵묵히 통찰하여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의 ‘흔적’들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을 그려 내고 내면을 노래한다. 삶이 낳은 흔적들에서 시인이 발견하고 채취해 낸 세계의 모습은 어떤 낯선 여행지가 아니다. 그곳은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아주 잘 아는” 풍경이다. 시인에게 있어 “슬픔은 어떤 물에도 녹지 않는 오래된 환약(丸藥) 같은 것”(「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3」)이고, “모든 잊힌 사람은/ 뒷모습으로 사라”(「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지며, “말은 언제나 먼저 흘러 다”(「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7」)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설거지를 하는 중에/ 커피를 마시다가/ 보름달을 기다리며”(「잡념」) 자라는 존재로 나의 “감정은 가장 바깥으로부터 감염”되는 것인데 “반숙의 생각”으로 인해 몸을 망치기도 하면서(「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독서」) “후렴 같은 하루”(「이사」)를 살아가기도 한다는 경험적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모든 잊힌 사람은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헤어지기 전에 들리는

새소리는 고독하고

이유가 조금씩 자랄 때

우리의 자세는 침묵이다.

 

괜찮을 거야, 라는 한마디처럼

저녁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풍경

 

(중략)

 

우리는 아주 잠시 동안

없어도 좋은

사라진 페이지

                                                  ―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뭉툭한 연필심이 글자를 적어 나가고/ 조각난 편지가 기억을 만드는 것처럼”(「스타일」) 시인이 노래하는 ‘흔적’들은 우리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인은 “얼굴”과 “얼룩”의 경우처럼 각각의 독자성과 고유성, 그리고 공통성을 발견해 낸다.

 

그대의 속옷에 묻은 땀

뜨겁고 진실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어제의 얼굴이

오늘의 얼굴에 굴복할 때

얼룩은 번지고

번져서 진화한다.

 

얼굴은 오래된 가짜

얼룩은 오래된 진짜

 

날이 저물면 저녁을 지어 먹고

기적과도 같이 다시 자라는

얼룩의 힘

                                                                        ― 「얼룩」

 

■ 말들의 풍경 속 너와 나,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말들의 새로운 욕망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세계를 이루는 ‘말들의 풍경’이며 절대어의 상태인 과거로 귀한하려는 말의 욕망에 따라 그것들이 낳는 말의 흔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에게 세계는 “문자가 태어났다 사라졌다 반복”(「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7」)하며 “낡은 문자들”(「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여섯 번째 독서」)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곳으로, 나는 어제의 문자를 잃다가 혀가 굳어 버리는가 하면 “아이의 말을 몰라서/ 문장의 길은 아득하기만”(「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하고, “새로 태어나는 단어 앞에서/ 자꾸만 흔들”(「대화」)리는 너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결국 “마침표처럼/ 혼자였”(「보이저 1호가 힐리어포즈를 넘어가는 저녁」)음을 절감하며 비애에 잠겨 버리고 때로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낱말과 낱말을 건너/ 비문처럼 자유”(「번역」)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당신과 달라.

나는 당신을 몰라.

인격이 없는

투명한 두 문장을 가슴에 끌어안고

나는 울었다네.

한때 나는

완벽하게 마음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향해

부서지는 모든 기표에 전념했지.

무엇이 그리 짧았던가.

가늘게 떨어지는 소리의 발자국이여.

나는 이제

한 문장에서 한 문장으로 건너가는 죽음처럼

오래 슬프구나.

낱말과 낱말을 건너

비문처럼 자유로웠다면

나는 당신과 다르고

나는 당신을 몰랐을 텐데.

                                                                        ― 「번역」

시인이 보기에 말의 흔적을 사는 우리는 비애의 존재이며 끝내는 침묵의 존재로 되돌려지는 행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때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침묵과 흔적은 말의 부재나 사실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오히려 피카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말 속에 있는 삶을 넘어, 말의 피안에 있는 삶으로 인간을 향하게 하며, 그렇게 자신을 넘어 저 밖으로 인간을 향하게” 해 주는 환한 삶의 원리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끊임없는 설교를 들으며/ 고도의 정치적 침묵을 배”(「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독서」)울 수도 있듯이 오히려 침묵하는 기다림의 체현 안에서 주어진 부재와 결여를 보충하고 충만한 상태로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명랑한 운동인 셈이다. 왜냐하면 해가 바뀌려면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 뒤섞”여 있는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무턱대고 잡”고 “은밀하게 내통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접속사들」)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백 년”(「유성(流星)」)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다리는 거기에서

나의 기억이 만들어 낸 바로 거기까지

당신이 있다.

있다가 없다.

백 년의 이별

그렇게 사라지는 이 모든 착란은

기다림 때문이다.

그러니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멀리 가 본 자들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안다는데,

생의 바깥에서만 안쪽이 필요한 법

계산이 안 나오는 것들이여.

눈을 감아도 보이는 어둠이여.

 

(중략)

 

백 년쯤 멀리 있는 눈이 반짝 빛난다.

백 년쯤 후에야

나는 당신과 이별을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백 년이 필요하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 「유성(流星)」에서

 

 

■ “유령의 문장”이 출몰하는 세계에서 노래하는 과거로의 도약과 미래로의 귀환

 

이러한 시인의 세계 인식은 시간 및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 즉 “언젠가 잊힐 이름들이 지금 막 태어나고 있다.”(「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독서」)라는 한계적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과 수긍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시인은 미완의 미래에 대해 맹목적으로 기대하기보다 우리 삶과 역사에 스미고 짜인 흔적과 침묵에서 “후대의 아주 먼 생각”(「어쩌면 오늘이」)을 건져 올려 지금을 노래함으로써 과거(기원)로의 도약과 미래로의 귀환을 동시에 예비하고 완성해 나가는 초석을 마련한다. 여기서 “후대의 아주 먼 생각”은 완미한 과거로부터 밀려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나’ 혹은 ‘나의 흔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연연”해하며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당신의 사라진 목소리”가 들리지만 “다시 당신을 잃어버려야 하”는 숙명의 체현자이며, “낯선 기쁨은 살갗의 서늘함과 함께 그렇게 온다는 것”을 이미 감득하며 유한, 이성, 세속에서 무한, 감성, 신성을 파지(把持)하는 낭만적 아이러니스트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이 말한 것들보다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연연하지. 잃어버린 우산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오늘 밤 나는 내리는 저 빗방울의 전 지구적 가능성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기로 했어. 잃어버린 초원에 대해서, 초원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 우산의 기원에 대해서, 당신이 다시 깨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야.

 

점점 침착해지는 빗방울을, 투명해지는 빗방울을, 어제의 우산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것은 사실에 불과하지만, 잃어버리는 일은 끝나지 않을 거야. 당신의 사라진 목소리가 들리네. 다시 당신을 잃어버려야 하다니. 그것은 견딜 만한 불편함이 아니라는 걸, 어제의 비가 내리고 있는데

                                                           ― 「잃어버린 우산」에서

 

이런 ‘나’이기에 여태천은 어느 순간 “그냥 뿌리 없이 살고 싶어요./ 가비얍게 날아다니며/ 아무 데나 앉고” 싶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국외자 4」)

그러나 결국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단어”들로 가득한 곳이고 그것들은 본원적 형태인 ‘절대어’를 향해 ‘절대과거=신의 세계’로 귀환하는 가운데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삶의 흔적들을 남기며 소멸의 순간인 미래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욕망의 세계는 불안하”고 “당신의 세계엔 결말이 없어/ 유령의 문장만이 출몰”하더라도(「비문(非文)」) “언어에 대해/ 뼈에 대해/ 뼈의 문장에 대해”(「단단한 문장」) 근육이 생길 정도로 묵묵히 생각을 거듭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침묵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컴컴한 목소리들

시간은 시간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괜찮은 거다.

모두가 괜찮은 거다.

                                                           ― 「마지막 목소리」에서

 

 

 

 

추천의 말

부끄러움은 기원에 대한 열망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삶 내부에서는 알 수 없는 목적과 기원임에도 미만과 부정합에 대한 내감만이 외려 생생해지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원을 더듬는 이의 심중에 가득한 것은 천분의 삶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바깥이다. 이 시집에서 바깥의 자리가 그토록 언어의 유곡에 깊이 파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해 질 녘에 서성대는 마음이 바깥과 삶의 영점에서 개시하는 오디세이아가 이 시집의 본령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념으로 무장한 서사시이며 귀환 없이 끝이 난 서정시이다. 실로 재고에 값하는 파격은 대개 이렇게 낮게 스민다. 무섭게 다정하고 다정하게 무섭다.― 조강석(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아마 ‘문병’ 온 ‘당신’과 ‘당신’을 기다린 ‘나’의 대화가 이러했을 겁니다. ‘간절함’끼리의 접속은 위로와 연민을, 그에 대한 감사와 악수를 은밀한 “농담”으로 유쾌화합니다. 시인은 이것을 자연의 풍경으로 간접화함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더욱 절실한 내면 풍경으로 밀어 올리는 중입니다. 이 풍경을 두고 우리는 피카르트의 “자연의 침묵은 인간에게로 몰려온다. 인간의 정신은 그러한 침묵의 드넓은 평원 위에 걸린 하늘과도 같다.”라는 말을 다시 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의 ‘하늘’은 “신의 침묵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침묵인”바, 그것은 ‘흔적’이며 ‘성체(成體/聖體)’인 까닭에 숭고와 경배의 대상인 동시에 인간의 침묵이 본받아야 할 규준적 모범입니다. 요컨대 “새로 태어나는 단어”들의 본원적 고향은 겉으로 궁핍해서 안으로 더 풍요로운 ‘흔적’과 ‘침묵’이란 말이지요. 미래로의 귀환과 과거로의 도약이 문득 현현된 장면이란 해석도 가능한 순간입니다.

― 최현식(문학평론가), 작품 해설에서

목차

자서

 

 

1부

여자의 바깥

비문(非文)

단단한 문장

철학하는 여자

접속사들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1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2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3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5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6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7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8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9

 

 

2부

 

대화

잡념

변심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북극의 이름

얼음사탕

우리들의 아침

유성(流星)

실종에 관한 보고서

계단

이사

얼룩

비밀

어쩌면 오늘이

 

 

3부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네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다섯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여섯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일곱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여덟 번째 독서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아홉 번째 독서

국외자 4

무관한 일

출구

속기

우리로부터 우리에게

보이저 1호가 힐리어포즈를 넘어가는 저녁

 

 

4부

 

변명

인격의 탄생

우리의 저녁

스타일

커피의 진실

브레이크 포인트

밤에 대한 사소한 의문

일식

반성

이십 년

당신의 집

너무 늦게 끝난

풍선의 기적

잃어버린 우산

마지막 목소리

 

 

작품 해설 / 최현식

유령의 문장, 문장의 유령

작가 소개

여태천

197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국외자들』이 있다. 2008년 제2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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