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자였으나, 침을 흘리는 말더듬이에다 실수투성이의 절름발이였던 탓에 황실의 천덕꾸러기였다. 하지만 꼭두각시 황제 티베리우스와 미치광이 황제 칼리굴라의 횡포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황실의 핏줄은 바보 클라우디우스였다. 50년간 어릿광대 노릇을 하며 천대의 세월을 견딘 클라우디우스는 권력투쟁의 틈바구니에서 혼자 살아남아 황제가 된 것이다. 일단 권력을 움켜쥔 클라우디우스는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 초기 제정 시대를 그린 흥미진진한 소설. 로마의 황금기를 이끈 아우구스투스, 권력을 위해 전남편을 독살하고 아우구스투스의 친딸을 몰아낸 리비아, 그런 리비아의 꼭두각시 노릇에 지쳐 인생을 망친 티베리우스 황제, 그리고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한 미치광이 황제 칼리굴라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연관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클라우디우스가 자신이 목격하고 들은 바를 기록하는 형식의 장편이다. 역사 속의 악명 높은 인물들과 기인(奇人)들을 흥미진진하게 복원한 그레이브스의 작품은 영화로, BBC의 인기 있는 드라마로 재구성될 만큼 재치와 유머가 넘친다.
어릿광대 클라우디우스, 로마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을 보인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말더듬이, 절름발이, 간질 환자였다. 황실의 핵심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음모로 얼룩진 정치판에서 어느 누구도 그런 클라우디우스를 주목하지 않았다. 바보로 통했기 때문이다. 리비아가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들(공화주의자였던 클라우디우스의 아버지)마저 독살하고, 티베리우스와 칼리굴라 황제가 아우구스투스의 친손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정적을 제거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황실의 핏줄은 바로 이런 클라우디우스였다. (우리나라의 흥선 대원군과 유사하다.) 하지만 클라우디우스는 20세기 초에 와서 로마 역사상 제정 초기의 유능한 황제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었던 클라우디우스가 권위 있는 황제로 변모하는 과정과 대비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는 현대인의 문제를 깊이 파고든 역작 왜 클라우디우스인가? 그레이브스는 20세기 사회 문제를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한 지식인이었다. 그가 내놓은 저술들은 모두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는 문제작이었다. 그레이브스의 역사소설들 역시 형식은 소설이지만, 실은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에서도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클라우디우스 시대의 도덕적 해이, 심리적, 정치적 문제는 사실 현대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의 도덕적 타락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로마의 기품 있는 전통을 고수하려고 분투하는 클라우디우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고뇌와 다르지 않다. 건전한 가치관이 시대착오전인 것으로 변질된 반면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도덕이 바로 세워지지 못한 타락한 로마 사회에 짓눌린 클라우디우스의 조용한 저항은 사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클라우디우스를 통해 현대인이 당면한 정신적인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다. ⑴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평범한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⑵ 혼란과 폭력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개인이 어떻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⑶ 과연 혼탁한 현대 사회가 과거의 악몽을 잊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레이브스가 위대한 역사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처럼배경은 로마이지만 사실 현대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출간 직후 지금까지 70여 년간 변함없는 베스트셀러 역사소설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 역사가 타키투스와 디오 카시우스 등은 클라우디우스를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로 그리고 있는 반면, 리비우스는 클라우디우스에게서 훌륭한 역사가의 자질을 발견했다. 또 클라우디우스가 남긴 공공문서나 서신을 보면 상당히 현학적이면서 논리적이고도 단호하다. 반면 사법 분야 등에서 선진적인 개혁을 단행했으나, 원로원 의원을 즉석에서 처형 명령을 내리는 등 독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실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 우리는 클라우디우스를 일관되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 점이 바로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가 다소 일관되지 못한 이유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위대한 점은,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통해 우리는 이런 클라우디우스의 상반된 면모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소설가의 상상력과 구성력 덕분에, 독자는 인간 클라우디우스의 유약함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이유, 그리고 공화주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로서의 클라우디우스와 독재자이자 유능한 황제 클라우디우스 두 가지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내적인 갈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클라우디우스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1934년 처음으로 출간된 이래 74년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이유다.
나, 클라우디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