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마녀야

오현종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5년 8월 19일 | ISBN 978-89-374-8072-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2x220 · 193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199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작가 오현종의 첫 장편소설. ‘관계’라는 무거운 주제를 일상적 차원에서 경쾌하게 형상화한 연애소설이다. 삼십 대에 들어선 주인공 ‘김율미’는 대학원에 다니는 한편 소설을 쓴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확신은 약해져 가기만 하고 3년째 사귀어 온 애인은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소설은 주인공 김율미가 문학과 연인에 대한 애정의 실체를 확인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여타의 등장인물들과 주변적인 사건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 구성방식과, 묘사보다는 대화 위주로 된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글에 긴장과 속도감을 더한다.

편집자 리뷰

소설가 율미 씨의 일일(一日) 이 소설의 주인공 ‘나’, 김율미는 삼십 대의 문턱에 들어선 소설가다. 집에선 소설 쓰느라 시집 안 간다고 구박받는 처지지만 정작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은 어디서도 들어오질 않는다. 싸우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3년째 사귀어 온 애인 이철수는 다른 남자들도 만나 보라며 등 떠밀질 않나 도대체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고, 위안이 되는 거라곤 이구아나 한 마리뿐. “이게 정말 아니라면 누가 그만 하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세속적인 걸 다 포기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내가 날 속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라고 말해 주면 글 쓰는 걸 그만두겠어요? 널 사랑하지 않아, 라고 말하면 그래 안녕, 하고 물러나겠어요?” 질문은 간단하나 대답하기는 어렵다. 선을 넘은 지는 이미 오래. 기왕에 그렇다면 바닥을 쳐 볼 수밖에. “그래도 글 쓰는 게 제일 재밌”으니까 말이다. 『너는 마녀야』는 김율미와 이철수의 끝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연애담이면서 동시에, 주인공 김율미가 어떻게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는가에 관한 이야기이자 어떻게 ‘마녀로서의 나’, ‘소설가로서의 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냥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또한 이 소설은 김율미의 이름을 빈 작가 오현종 자신의 소설에 대한 내밀한 애정 고백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많은 것을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건 나를 이해해 줄 단 한 명의 사람, 그리고 늙은 장인이 생(生)의 끝에 얻은 날렵한 단검처럼 견고한 한 권의 책이라는 걸. 나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본문 175쪽) 비웃어도 좋고, 의심해도 좋은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믿기에 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기에 쓰는 것이니까. 오현종이 보기에 작가는 조각가이다. 이집트어로 조각가는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자’를 뜻한다. 그는 그처럼 “글로써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내 몸이, 내 생명이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도록.”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연애 또한 만만찮게 미친 짓이다. 김율미와 이철수의 연애는 평범하다. 수많은 다른 연애들이 그렇듯 이 연애에도 몇 번을 죽여도 죽지 않을 것만 같은 끈끈하고 지긋지긋한 집착이 있다. 스물일곱까지 섹스를 안 해 본 김율미는 네 번째 데이트 만에 이철수와 여관에 간다. 첫 만남은 이후 이들의 관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매사에 현실적인 이철수는 “오빠, 나 데리고 살면 안 돼? 절대 안 돼?”라며 매달리는 나를 “그만 해. 결혼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일 뿐이야.”라며 냉정하게 뿌리친다. 그에게는 유학을 떠날 계획이 있고, 결혼할 마음은 없다. 그는 결혼한 후에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며, 그러니 우선 조건 좋은 남자랑 결혼을 하라고 부추긴다. 율미는 그것이 못마땅하지만 그의 마음을 바꿀 수도, 그렇다고 그를 떠날 수도 없다. “내가 안고 있는 이철수의 몸은 따뜻했지만 그의 체온이 닿지 않는 내 벗은 등은 추웠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늘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철수는 몇 번씩이나 율미에게 “내 앞에 영영 나타나지 마!”라며 등을 돌리지만, 조심조심 다가서는 그녀를 모르는 척 해주는 것도, 술에 취한 척 먼저 전화를 거는 것도 그이다. “왜 내가 좋아. 너를 힘들게 하는데. 난 이기적인데.” 이철수는 율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늘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든다.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고, 구미호라고 부르고, 물뱀이라고 부른다. 번번이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자신이면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날카로운 통찰을 들려준다. 『너는 마녀야』는 담백하고 직설적이다. 이것은 연애소설이되 ‘살’이 아닌 ‘뼈’를 지향하는 연애소설이다. 진짜 연애가 그렇듯이 이 소설 속의 연애에는 가식이나 자존심이 없다. 연애 관계에서는 더 사랑하는 노예와 덜 사랑하는 주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에 의해 그 관계가 역전된다는 사실이다. 노예임을 상관 않는 노예는 강하고, 자신이 주인임을 확인받아야 하는 주인은 약하다. 이처럼 주인을 괴롭히는 노예는 마녀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서 마녀는 맹목적으로 사랑을 요구하는 어린 아이나 단 한 권의 견고한 책을 가지고 싶은 소설가, 영원한 죽음을 순간의 지속으로 극복하려는 한계인으로 변주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면서도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마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마녀의 진정성과 도발성 앞에서 페미니즘의 기존 논리나 연애의 전통적 규칙, 성장의 문법은 그저 관념이나 구호에 불과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이 무섭다. 세이렌이 오디세우스의 유혹을 받았다고 뒤집어 말하기 때문이다. 마녀도 사냥당하거나 피를 빨리는 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희생양인 척했던 우리는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 것인가. ―김미현(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현실은 그러나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이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형상화된 데에 기인한다. 남과 여, 이철수와 김율미는 당신이나 나처럼 살내 나고 피 흐르는 인물들이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어려운 대사를 뱉지도 않고 젠체하는 일도 없다. 여타의 등장인물들과 주변적인 사건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 구성 방식과, 묘사보다는 대화 위주로 된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글에 긴장과 속도감을 더한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훔쳐 듣는 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구어체의 사용은 또래 작가들 중에서도 발군이다. 그럴싸한 아포리즘 한두 개를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할 것이나 행간 사이사이 넘치는 솔직하고 악의 없는 위트가 보상하고도 남으리라. 남에게는 가벼워도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무겁기만 한 것이 연애다. 오현종은 연애소설을 쓰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을 깨치고 있었던 셈이다. 소설도 사랑도 다 떠나 버린 다음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마녀. 죽어 버려.” 나는 너무 숨이 찬 나머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는 대신 그의 오른쪽 어깨를 앞니로 콱 깨물었다. 그래. 좋아. 나는 마녀야. 너의 피를 쪽쪽 다 빨아먹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어. (본문 99쪽) 위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부터 말하고 넘어가자. 답은 “그럴 일은 없다.”이다. 오현종은 몰라도 적어도 김율미는 소설도 사랑도 떠나보낼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가벼운 것을 바라지만 나는 그런 거라면 원하지 않는다.”라는 그녀는 “집착이 없는 것은 도저히 사랑일 수 없다.”라고도 생각한다. 그토록 이철수에게 치이고 다치던 어느 날 그녀는 깨닫는다. 문득, 지금의 그를 가장 지치게 하고 괴롭히는 게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에 빨판을 붙이고 피를 쪽쪽 다 빨아먹는 마녀. (본문 116쪽) 연애는 학습이다. 수많은 다른 관계가 그렇듯 연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고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절차는 여느 인간관계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하다. 율미가 그토록 나를 울리고 웃기던 이철수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소리 내 말하는 순간, 그렇게 말해 보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음에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그녀는 다시금 가슴속에 새기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를 다 읽지 못했다. 내가 그를 다 읽어 글자 하나하나가 희미하게 닳을 때까지 책장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만 있을 뿐 끝은 없다. 나는 반복해서 읽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것. 연애는 독서와도 같다. 아마도 오현종에게는 글 쓰는 것 또한 연애인 모양이다. 평생을 걸 만큼 길고긴.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작가 소개

오현종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과 장편소설 『너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거룩한 속물들』, 『달고 차가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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