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김경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6월 11일 | ISBN 978-89-374-0803-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56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처음 보는 여자가 천천히 내게 스며들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세계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 사이의 실 놀이
사라지는 시간 안에서 다수성을 지니게 된 모든 이름들의 무한한 진동

2001년 《문예중앙》에 「영화는 오후 5시와 6시 사이에 상영된다」 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한 김경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김경인 시인은 ‘감자’,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김동인의 손녀로서, 대를 이어 문학의 길을 걷는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2007년 첫 번째 시집 『한밤의 퀼트』를 펴낸 지 5년 만으로 신작 시집 『모든 이름을 사랑해』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57편의 시를 담았다. 첫 시집을 통해 김경인은 ‘거울을 깨뜨리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며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아 왔다. 나를 감시하는 거울의 시선은 기실 타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는 첫 시집에서 과감하게 ‘거울’을 모두 깨뜨려 버리고 말했다. “더 이상 깨질 것 없구나. 거울을 버린 자는 중얼거린다.” 두 번째 시집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는 첫 시집이 이룬 중요한 성과, 바로 ‘거울의 폐허’ 위에서 시작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황금을 녹인 물에서 실을 뽑아내듯 베틀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아름답고 자유로운 발화를 통해 타자의 시선이라 할 수 있는 거울을 산산조각 깨뜨리며, 동시에 그 거울의 폐허 위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혼돈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무한히 반복 운동하는 고정되지 않은 이름들을 도발적이고 예리한 시선으로 발견해 낸다.

편집자 리뷰

■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 바꾸기 놀이”를 통한 소멸과 생성의 무한 반복 세계

김경인의 시 세계에서 ‘나’로 대체 가능한 세계의 모든 ‘이름’의 완전한 소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써의 사라지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이는 “밤의 실패를 풀어내던 소녀가” 어둠 속에서 “색실처럼 스르르” 풀어지다가 또 다른 “한 소녀 속으로 감겨들어 가”기 때문이며(「아라베스크」), “흩어졌다 서서히 모이는 구름처럼”(「라르고」) ‘나’는 끊임없이 “돋아나”고 다른 개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도르르 풀려 버렸다가도 “돌아”와 어느새 다른 이름 속에 “스며들”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소녀가 빙글 돌고
두 눈부터 알록달록한 색실처럼 스르르 풀어질 때

한 소녀가 또 한 소녀 속으로 감겨들어 가
감쪽같아질 때
― 「아라베스크」 부분

즉 김경인에게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개체는 사라지는 대신 다른 이름으로 몇 번이고 “거듭”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이 감지하고 포착한 세계의 모습이 생성과 소멸 사이를 무한히 반복 운동하며 변화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고정된 이름도 없고 고정된 얼굴도 없다. 고정된 ‘나’가 없으니, ‘나의 죽음’도 없다. 즉 딱딱하고 고정된 것이 없는 세계, 실체적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한없이 부드러운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이름들과 얼굴들의 변화만이 있으며, 나 역시 “언니”로 “엄마”로 “처음 보는 여자”로 변화할 뿐이며 그래서 처음의 나는 죽지 않고 내가 변한 그들과 사이좋게 남아 있을 수 있게 된다. 이름이 바뀔 뿐인 변화하는 세계, 그래서 시인은 그 모든 이름을 사랑해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이제 언니는 가고 엄마가 돌아올 차례. 처음 보는 여자가 천천히 내게 스며들었다. 나는 여전히 남아 사이좋게.
―「재개발구역」 부분

연필이 나를 반쯤 그리는 동안 나는 서서히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그대로군.
(중략)
오늘 나는 구겨지다 만 종이였다가 오후 다섯 시의 바람이었다가 지금은 거의 안개의 목소리입니다. 내일은 사람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나는 아직 배울 게 많고 내일은 해가 질 때까지 그림자를 밟으며 꼬리잡기 놀이를 하겠어요.
―「수업 시간」 부분

■ 불안과 두려움, 절망스러운 고독을 낳는 불명료한 혼돈의 세계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다시 불러 세우는 “검은 계단”

시인은 자서에서 “모든 불명료한 것들을/ 이해해// 밤이 왔다”라고 천명한다. 김경인에게 “빛과 어둠이 섞이는 은회색의 혼돈”에 뒤덮여 있는 것들과 출구가 정해져 있지 않은 미로와도 같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너인지 나인지 모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무질서하게 튀어나오고 뒤섞이다 사라지는 ‘말’들이 불명료한 것들이라면, “밤”을 오게 해 주는 매개체는 “계단”과 “바닥”이다. 또한 불명료한 것들은 고정되지 않은 것들이기에 불안정한 속성을 내포한 주체이자 한없이 부드러운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주체이다.
이러한 주체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시인에게 끊임없는 당혹과 섬뜩한 불안, 절망스러운 고독과 두려움을 낳는다. 이는 미끄러지고 거꾸로 자라며 곧 무너지고야 말 어질러진 “검은 계단”이라는 표현에 맞닿아 있다. 시인에게 있어 계단은 어떤 안전한 지반이 아니며, 의지할 수 없고 디디기 어려운 “진초록 이끼, 미끄러지는 돌계단”이다. 그런데 이 계단은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깨어진 거울” 앞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동시에 산산조각 난 혼돈의 바닥 속으로 침잠해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다시 불러내어 주는 양면성을 지닌다. 계단 역시 고정되지 않은 세계의 고정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존재물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어둠의 살가죽을 벗겨 내 어둠을 꿈틀꿈틀 죽어 가게 하는 것은
단단한 허공에 밧줄을 매고 밤이 혀를 길게 늘어뜨릴 때
희미하게 깜박이는 나를 끌고 가는 들끓는 호수는
무엇인가, 호수 바닥에 묻힌 두 발은
쓰기 위해 서툴게 돋아나는 손은
그때 흰 등성이를 넘어 달려오는 검은 물결은 무엇인가
― 「서랍을 닫으며―전봉건 풍으로」 부분

편지를 줄게, 계단 아래서
계단 아래 묻힌 그 애 아래서,
손가락이 다 자라면.

편지를 줄게, 어제의 태양에게
태양을 따라 돌아오고야 만 그제의 그림자에게

계단이 나를 엄마라고 불렀어
그다음에 얼굴이 돌아왔지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저녁」 부분

■ 죽음을 징검다리 삼아 “그리운 언니”와 함께하는 실 놀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저녁」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계단 아래에는 놀랍게도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문학평론가 서동욱은 작품 해설에서 “계단이 숨기고 있는 죽음이 우리를 익명적인 혼돈의 바닥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고 다시 불러”내는 것이라고 평한다. 김경인 시인에게 죽음은 삶의 종착점이나 ‘하나의’ 인생이 불안 속에 늘 끌고 다니는 삶의 조건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이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죽음은 바로 다수의 개체들과 그것들의 반복된 삶의 배후에 내재해 있는 원리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무도 모르는 것.
컴컴한 방 바퀴벌레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
베레모와 독일제 파이프로 한껏 치장한 죽음이
오렌지 맛 새콤달콤 고통과 함께 문을 두드리고
매초마다 탄생하는 문제와 화제의 신생아들이
거듭 진화하는 몇백 개의 계절을 낳는 동안
―「테이블」 부분

이처럼 삶이 끝나야 도래하는 것이 아닌, 마치 삶의 지하실에 이미 도사리고 있던 삶의 내재적인 원리로서의 ‘죽음’은 감겼다 풀리는 ‘실 놀이’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감겨 있는 실꾸리로서 형체가 존재하다가 실타래가 풀리면 죽음이 현실화하고, 다시 되감기면서 형태를 탄생시키는 방식이다. 꿈속의 소녀가 “밤의 실패를 풀어내”거나 “방 안에 스며든 어둠은 나를 가닥가닥 풀어 놓는데”(「노을 한 뭉치」)와 같이 굴러가는 실패와 함께 풀려 나가는 실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다시 실이 감겨 들어가 실패가 형체를 되찾음으로써 한 개체가 죽음으로부터 되돌아와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순간이 반복되는 모습을 노래한다.

실 놀이를 좋아해? 실실 풀리는 이야기가 있고, 한순간에 엉켜 버리는 이야기가 있어.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실꾸리를 던지고 감아. 이야기가 다 끝나면 나는 무언가 될 것도 같아.

좀 더 많은 색실을 가지고 싶었는데 언니는 도르르 풀리는군. 언니가 언니 아닌 것이 되고 점점 작아져 나와 꼭 닮은 얼굴이 될 때까지 한 꺼풀 두 꺼풀 눈꺼풀은 감기고

언니가 사라지는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해? 그때 나는 태어났지.
—「그리운 언니에게」 부분

김경인에게 세계는 “아무것도 아닌 공터”, “궤적을 그리며 굴러가 마침내 사라지는 표정들”, “서서히 낯빛을 잃어 가는 숲길”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리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쓸쓸함이 가득한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절대 고독의 상황에서 목도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그가 더 이상 홀로 외롭게 소멸하지만은 않으리라고 본다. 시인과 나와 너 그리고 우리와 너희가, 흘러가는 시간 속 모든 이름 안에 사이좋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작품 해설에서

이것은 한없이 부드러운 세계이다. 황금을 녹인 물에서 실을 뽑아내듯 말들이 이어지며 베틀 위를 미끄러지고 아름다운 치맛자락으로 펼쳐진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주체들은 김경인이 일찌감치 깨뜨려 버린 ‘거울’과 같은 의식의 반성적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각자의 개별적 내면을 지닌 주체, 내면화한 문화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감시하며 감시받는 고립된 단독자로서 수립된 주체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한 번은 언니일 수 있고 다음 한 번은 동생일 수도 있는 다수성으로서의 자매, 한 소녀일 수도 있고 그다음엔 또 다른 소녀일 수도 있는 다수성이 이루는 공동체, 이시스일 수도 있고 네프티스일 수도 있는 세계다. 이 공동체는 언니가 그의 움직일 수 없는 내면적 정체성 때문에 동생의 자리로 가지 못하고, 한 소녀가 같은 이유로 다른 소녀가 되지 못하는 고립된 섬과 같은 주체의 자리가 아니다. 왜 이런 다수성을 이루는 주체가 중요한가? 세상의 폭력 앞에 설 수 있는 주체는 자기라는 내면의 고립성 속에서 홀로 탄생하고 홀로 거기에 머무는 코기토가 아니라 바로 이런 다수성, 집단적 힘을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개별자가 아닐까? ― 서동욱(시인, 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사소하게 사라지는 일을 오래 연습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종이처럼 구겨졌고 물감처럼 물에 풀려 나갔다. 먼지처럼 노래처럼 공중을 떠돌다 흩어졌다. 그녀는 창백한 절망의 순간에도 신의 이름을 크게 외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잘게 흩어지는 물방울들이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처럼 사라지는 모든 이들과 모든 사물들을 영원히 그리워한다. 이름을 지어 주지 못했고 얼굴도 알 수 없는 모든 아이들을 그녀는 영원히 낳는다. 낳아서 언어의 놀이터로 데려간다. 시간마저 멈춘 그곳에서 그녀는 사라진 존재들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무지개색으로 웃는다. 아무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았던 쓸쓸한 날들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며. 흘러가는 그녀를 나는 슬퍼서 끌어안는다. ― 허윤진(문학평론가)

목차

자서

1부

미술 시간
수업 시간
자화상을 그리는 시간
꽃을
단 하나의 노래
고백하는 물병
무반주 조곡 No.0
그 집 앞
라르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저녁
그리운 언니에게
아름다운 인생

겨울式
물감을 짜는 동안
물 위에서 노래함

2부

이웃
이사
재개발구역
테이블
먼지의 노래
영혼의 사생활
채록자들
터널 생활자
심해행 완행열차―승객들
우리는 물처럼
심해발 완행열차―재회
아무도 피 흘리지 않는 저녁
눈-remix
서랍을 닫으며―전봉건 풍으로

3부

마흔
밤의 공터
한밤의 산책
자정, 파사칼리아―盛淵에게
시월
루벤스, 루벤스
사월, 노트
고요한 시간
노을 한 뭉치
물속의 편지
평일의 독서
기념일
일요일
종이 상자
프라이데이 클럽
생일

4부

수중 극장
인형 탄생기
아라베스크
오늘 소원
K에게
골목의 아이
문 앞의 사람
별이 빛나는 밤에
당신의 호수
독서 클럽
가방

작품 해설/서동욱
삶과 죽음 사이의 실 놀이

작가 소개

김경인

197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가톨릭대학교 국문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하고, 2001년 계간 《문예중앙》에 〈영화는 오후 5시와 6시 사이에 상영된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한밤의 퀼트』(랜덤하우스, 2007)와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민음사, 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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