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음으로 가다

원제 Im Krebsgang

귄터 그라스 | 옮김 장희창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2년 5월 25일 | ISBN 89-374-0393-5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9x215 · 276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출간 전부터 예약 판매를 통해 독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화제작21개 국에서 동시에 번역 출간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의 최신 장편소설

편집자 리뷰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의 신작『게걸음으로 가다(im Krebsgang)』가 전 세계적으로 번역 출간이 준비되는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다. 올 2월에 출간되기 전부터 독일의 언론과 문단, 정치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여타 언론 매체에 공론의 장을 마련해 준 이번 신작은 발간되기 전부터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현재까지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독일 슈피겔 지의 위탁을 받아 양장본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사하고 있는 ≪부흐리포트(Buchreport)≫ 참조). 또 신작 번역을 위해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뤼벡에서 개최된 번역자 세미나에서는 20여 개국의 번역자들이 모여들어 이 작품의 세계의 반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세미나엔 이 작품의 한국어 판 번역자인 장희창 선생이 참가하였다. 이렇듯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데에는 대가의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이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재적인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45년 이후로 독일 연방 공화국에서 금기시되어온 소재, 즉 언론뿐만 아니라 구동독과 서독의 문단을 통틀어 결코 다룰 수조차 없었던 역사적 참사인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을 ‘문학적으로 위대할 정도로 정교하게’(슈피겔) 다루었기 때문이다.

8000여 명이 수장된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 : 구스틀로프 호는 나치 시대의 대(大)독일 제국이란 오만한 꿈의 상징이었고 ‘히틀러의 타이타닉 호’였다. 나치 당원으로 스위스에서 유대인에게 암살된 빌헬름 구스트로프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배의 이름이다. 이 선박은 원래 ‘카데에프(kraft durch Freude; 기쁨을 통한 힘)’라는 모토 아래 바이에른 알프스 지역과 에르츠게비르게로의 값싼 여행, 발트해 해변과 바텐메어 해변에서의 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거리와 장거리 바다 여행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1936년도에 히틀러의 명령으로 건조된 배이다. ‘카데에프’단 여행은 노동 계급까지 포괄해 버린, 저 나치당의 선언, 즉, “독일 민족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히틀러의 교시)라는 모토 하에 값싼 비용에 풍부한 휴식 여행을 제공하였는데, 경비는 40제국마르크의 비용만 들었으며, 함부르크 항구까지의 철도여행을 위한 특별 차표는 10마르크였다. 또한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선전문구대로 갑판이나 객실의 실내도 등급 구분 없이 설비되어 있었다. 노동자 당원이나 농민 계층의 사람들을 선발하여 우선적으로 승선시킴으로써 당시 독일 국민의 각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구스틀로프 호는 처음에는 카데에프 여객선이었지만 전쟁과 더불어 이어서 병원선, 병영용 폐함으로, 마지막으로 독일의 패전 선언 직전에는 피난민 수송선으로 이용되었다.
대참사 : 1945년 1월 나치의 동부전선 와해 후 소련의 적기 함대가 독일을 향해 빠른 속도로 육박해 오면서 동프로이센의 중심지 쾨니히스베르크나 단치히의 점령도 시간 문제였다. 독일군이 소련 점령지역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군 역시 독일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만 독일 민간인은 서쪽을 향해 피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겨울 영하 20℃가 넘는 혹한 속에서 공중폭격과 소련군의 총칼에 의해 피난민들은 길거리에서, 얼음 구덩이에서 참혹하게 죽어갔다. 동프로이센과 포머른(현재 폴란드 영토) 전역이 소련군에 포위돼 육로가 차단되자 피난민들은 해로를 찾아 발트해의 항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고텐항은 연합군의 폭격함대가 도달하기 어려운 독일군의 전략적 주요 거점이었고, 피난민들에게는 마지막 등불과 같은 곳이었다. 고텐항에는 전함뿐 아니라 수천 명을 수송할 수 있는 선박들, 특히 구스틀로프 호가 정박하고 있었다. 고텐항은 이미 배를 타기 위해 몰려든 피난민들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1월21일 소련군의 점령이 눈앞에 다가오자 나치는 바다를 통한 사상 최대의 철수작전인 한니발 작전을 개시했다. 군수물자와 교육중인 사관생도 그리고 피난민을 서쪽의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구스틀로프 호도 수송에 참가하라는 상부 명령에 따라 사관생도와 함께 여성과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태웠다. 당시 승선자 명단을 작성한 배의 출납책임계 임용지원자 하인츠 쇤의 증언에 따르면 7956명을 기록하고 나서는 장부가 바닥났고, 그 후 기록 없이 태운 사람도 2000명 이상이나 됐다고 한다.1월30일 정오 피난민을 가득 태운 구스틀로프 호는 어뢰정 뢰베 호의 보호를 받으며 출항했다. 전날 밤 동부잠수함대 사령탑으로부터 소련군 잠수함 세 척이 수면으로 떠올라 소련을 향하고 있으므로 항로가 안전하다는 전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망에 잡히지 않았던 잠수함 한 대가 여전히 물 밑을 배회하며 공격 목표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구스틀로프 호가 출항 5∼6시간 후 발트해 한가운데를 항해하고 있을 때 선장은 독일 소해정 한 척이 구스틀로프 호의 항로로 진행중이란 무전 연락을 받았다. 그 무전의 출처는 끝내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구스틀로프 호는 소해정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평화시처럼 위치를 알리는 항해등을 켜고 기다렸다. 그러나 소해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시간 물 위로 떠오른 소련 잠수함 S13호는 이미 2∼3시간에 걸친 공격준비 끝에 공격 목표인 구스틀로프 호를 향해 세 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이후 일어난 아비규환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겐 평생을 따라다닌 악몽이 됐다. 확인 가능한 수치만으로도 8천여 명 가운데 1천여 명을 제외한 독일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그중에서 4천여 명이 여성과 어린애였다는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은 분명 존재한 사건이었다.

귄터 그라스가 이 소재를 채택한 이유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매 시대마다 발생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번 소재는 이미 독일 언론에서 공론화되었다시피 우익편향적 정치권이나 단체, 지식인에게 자신의 이념을 정당화할 구실을 제공하고 나아가 신나치주의의 등장을 가속화하고 그 범위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는 건이었다. 왜냐하면 전독일에서 이 참사를 암묵적으로 금기시한 것은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만행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시국가로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인류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데 대한 응당한 대가로 치부되었던 것이다.귄터 그라스 또한 그런 입장의 대변자였다. 1958년 『양철북』을 발표한 이래 1990년 독일 통일 당시까지도 전범의 무한 책임을 느낌과 동시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던 게 정치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띤 그라스의 작가로서의 윤리 의식이었다. 그런 입장의 그라스가 자칫 극우주의자들의 선전적 입장과 동일시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것은 이들 죽음이 단순히 자료로만 활용되었을 경우(특히 인터넷 활용 세대인 현재, 미래의 세대) 그들이 겪은 고통이 왜곡되고 은폐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바에 제대로 알고 역사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하자, 라는 의도이다.이런 의도는 작품에 보다 상세히 기술된다. 작품에서 귄터 그라스는 ‘그 노인’, ‘고용주’, ‘그’ 등으로 지칭되며 ‘나’라는 화자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고 주문을 하는 동시에 ‘나’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이런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그라스가 이 소재를 다룸에 있어 그 자신의 정치적 시각에 의존하기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물 ‘나’를 상정해 놓고 그로부터 이 사건의 정치적 함의나 해석을 제거한 채, 사건 자체만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인(귄터 그라스를 가리킨다:인용자)은 그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동프로이센 피난민들의 참상을 기록하는 것이 원래 자기세대의 과제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엄동설한중의 서쪽으로의 행렬, 눈보라 속에서의 죽음, 노변에서의 비참한 죽음, 얼어붙은 석호가 폭탄 투하와 마차의 무게 때문에 깨어지기 시작했을 때 얼음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된 개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일리겐바일 쪽으로부터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의 복수에 대한 공포심으로 끝없는 설원 위를 지나갔다…… 도주…… 백색의 죽음…… 자신의 죄(나치의 만행:인용자)가 너무도 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참회를 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문제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처럼 많은 고통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되며, 또한 그 기피 주제를 우파인사들에게 내맡겨서도 안 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 본문 중에서
실제로 그라스는 이 참사에 대해 “얼마나 늦게, 주저하면서 전쟁 동안 독일인들에게 부가되었던 고통에 대해 떠올렸는지” 고백한 바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까닭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고 서술에서의 도덕적인 어려움을 누차 강조한다. 이런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라스는 게걸음 치는 식의 서술 기법을 고안하였다.
게걸음 치는 식의 서술 기법 : 단선적인 사고가 불러일으킬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고-“통계 놀음 뒤에서 죽음은 숫자 뒤로 사려져버렸다”(귄터 그라스)에 대한 경고
이 작품에서 귄터 그라스는 그의 다른 소설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서술 태도를 내세워 그것을 견지한다. 이번에는 바로 ‘게걸음’과 같은 방식으로, 우왕좌왕 옆으로 걸으면서 느릿느릿하며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모든 측면을 되살펴보고 결과적으로는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서술 방식을 표제로까지 직접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라스는 57년 동안 금기시되어 온(극우파를 제외하곤) 터부를 깨고서 그것을 역사의 전면에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자면 자신이 그 동안 견지해 온 좌파적 성향과는 다른 방식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mode를 제시해야 했다는 게 일반적인 추리이다. 둘째, 게걸음이 갖는 함의는 다음 세대, 즉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주도할 세대의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사고를 교정함과 동시에 그런 사고가 불러일으킬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데 있다. 귄터 그라스 이후의 세대는 작중 인물인 ‘나’의 아들 콘라트로 대변된다. 콘라트는 ‘순교자 사이트http://www.blutezeuge.de’를 운영하며 직접적이며 선동적인 문구와 수치, 그림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저 참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그렇지만, 작중 화자이자 작가 귄터 그라스의 주문을 받기도 하는 ‘나’는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않던 간에 신나치주의로 흐르는 아들의 견해에 수긍할 수 없다. 특히나 아들이 그 시대를 살아온 ‘나’와는 달리, 왜 자료적 가치만 적극 활용하여 일면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었나를 생각해 볼 때도 ‘나’의 진술 태도는 퍽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더듬이를 세워 역사의 전방위적인 진행 국면과 그 속에서의 개인적 삶이라는 미시적 차원을 교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뒷걸음질 쳐 역사의 시간을 전개하거나 또 현재의 시간으로 복귀하는 등 다각적인 시선을 견지하여 역사의 퇴행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의 피를 증언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것을, 다음에는 다른 것을,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인생의 경로를 차례대로 풀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간을 비스듬하게 가로 지르면서, 마치 뒷걸음질하며 옆으로 비켜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의 방식과도 유사하게 서술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사실만은 분명하다. 자연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발트 해는 앞으로 여기서 보고하게 될 그 모든 일을 이미 50년 이전부터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요약하면 선동적인 문구가 갖고 있는 위험성, 수치가 은폐하는 죽음의 표정들, 그림과 삽화가 환기하는 감정적인 반응들에 대한 경계 그리고 역사의 전방위적인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한 면만을 부각시켜 의견을 개진할 경우 엄청난 역사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이 서술 방식을 채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역사 해석에서 단선적인 시각을 지양하기 위해 역사의 거시적 차원과 역사의 속알맹이를 이루는 개인들의 삶으로 되돌아가, 역사 속의 개인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게걸음’이 뜻하는 또 하나의 의미이다.

귄터 그라스
1927년 10월 16일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대전 중에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했고 1944-1946년 공군보조병, 전차병 등으로 참전했다가 미군에 의해 전쟁 포로로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뒤셀도르프 예술대에서 수학하였고 1954년 서정시 대회에서 입상하여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적 집단인 ‘47그룹’에 가입했다. 같은 해 무용수 안나 슈바르츠와 결혼하였고 1958년 처녀작인『양철북』초고를 \’47그룹\’ 모임에서 낭독하여 그해 47그룹 문학상, 이듬해 뷔히너 상, 폰타네,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0년에는 독일 사민당에 입당하여 빌리 브란트를 위해 선거 운동을 벌이는 등 정치 활동을 하였고 1961년에는『고양이와 쥐』, 1963년에는『개들의 시절』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양철북』의 맥을 잇는 \’단치히 3부작\’을 완성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작품 낭독을 해왔고 1976년에는 하버드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장편 『넙치』(1977), 『텔그테에서의 만남』(1979), 『암쥐』(1986), 『무당개구리 울음』(1992) 등과 같은 대작을 발표하여 독일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조명을 받았다. 1995년에는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아득한 평원』을 출간하여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1999년에는 그의 전 생애를 갈무리하는 장편 『나의 세기』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스웨덴 한림원은 1970년대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듭 지목되었던 그라스를 20세기의 마지막 수상 작가로 선정하였다. 이번 작품은 지난 57년간 금기되어온 독일인의 참사를 처음으로 현실 세계에 소환한 것으로, 2차 대전 이 끝날 무렵 독일의 점령지로부터 추방당해 본토로 돌아가던 독일인 8천여 명의 죽음을 역사의 장에 새겨 넣는 문제작이다.

옮긴이 장희창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와 동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의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주요 역서로는 『양철북』, 『나의 세기』, 『현대시의 구조』, 『책그림책』 등이 있다.

작가 소개

귄터 그라스

1927년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열일곱의 나이로 히틀러의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되어 복무했고,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농장 노동자, 석공, 재즈 음악가, 댄서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과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이후 글쓰기에 눈을 돌려 1954년 서정시 경연 대회에 입상하면서 등단했다. 1958년 첫 소설 『양철북』 초고를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 집단인 47그룹 모임에서 낭독해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부터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에 『고양이와 생쥐』(1961), 『개들의 세월』(1963)을 발표해 『양철북』의 뒤를 잇는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76년 하인리히 뵐과 함께 문학잡지 《L’76》을 창간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넙치』(1977), 『텔크테에서의 만남』(1979), 『암쥐』(1986), 『무당개구리 울음』(1992), 『나의 세기』(1999) 등을 발표했고, 1995년에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 『또 하나의 다른 주제』를 내놓았다. 1999년에 독일 소설가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에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었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 『게걸음으로』를, 2003년에 시화집 『라스트 댄스』를 발표했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무장 친위대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에는 그 후속편으로 여겨지는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4월 1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장희창 옮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독서 평론집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귄터 그라스의 『양파 껍질을 벗기며』(공역), 『암실 이야기』, 『양철북』, 『게걸음으로』, 『나의 세기』(공역), 레마르크의 『개선문』,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괴테의 『색채론』, 『파우스트』,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안나 제거스의 『약자들의 힘』, 베르너 융의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 카타리나 하커의 『빈털터리들』, 부흐홀츠의 『책그림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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