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사라져 가는 세상, 거장 쿤데라가 만난 천재 예술가들 이야기

만남

원제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 | 옮김 한용택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3월 23일 | ISBN 978-89-374-8414-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25 · 240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예술이 사라져 가는 세상,
거장 쿤데라가 만난 천재 예술가들 이야기
 
“자신의 지성에 대한 도전이자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을 주는 작품”—《뉴욕 타임스》

편집자 리뷰

“나는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교류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며, 동맹조차도 아니다.
만남, 다시 말해 스파크고 섬광이고 우연이다.”
— 작품 속에서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1986), 『배반의 약속』(1993), 『커튼』(2005)에 이어 네 번째 에세이를 펴냈다. 바로 『만남』이다. 전작들이 쿤데라 소설의 정체성, 중부 유럽 소설의 현재 위치, 나아가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의 의미를 말하고자 했다면 『만남』은 쿤데라 인생에 잊지 못할 방점을 찍어 준 예술가, 혹은 예술 작품들과의 “스파크고 섬광이고 우연”인 만남들, 작품 발문을 인용하자면 그의 “성찰과의, 추억과의, 오랜 주제와의, 오랜 사랑과의 만남”들을 소개한다.
 
쿤데라가 경탄한 작가 베케트, 브로흐, 이오네스코, 말라파르트, 쿤데라와 교류했던 동시대를 움직였던 작가 르네 데페스트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루이 아라공, 뿐만 아니라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작곡가 야나체크 등, 쿤데라와 여러 거장들과의 만남은 21세기의 독자이자 청중인 우리들에게 또한 강렬하고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천재들을 내친 유럽, 예술-이후의 시대, 예술이 사라진 세상
 
1999년 파리의 한 주간지가 ‘세기의 천재들’이라는 자료를 발간했다. 열여덟 명이 수상자 명부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설가도 없고 시인도 없고 극작가도 없다. 철학자도 없다. 건축가는 단 한 명 있다. 화가는 단 한 명이지만 디자이너는 두 명 있다. 작곡가는 없지만 성악가는 한 명 있다. 영화인은 단 한 명 있다. 이 명부는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유럽과 문학, 철학, 예술의 새로운 관계다. -작품 속에서
 
‘세기의 천재들’ 자료에 따르면 이 천재들이란 코코 샤넬, 마리아 칼라스, 프로이트, 마리 퀴리, 빌 게이츠, 피카소, 이브 생로랑, 록펠러, 큐브릭, 토머스 에디슨 등이다. 쿤데라는 이 명부가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문화의 천재들을 조금의 후회도 없이 멀리 내친 것이다. “세기병과 도착증, 그리고 그 죄악과 함께 모두 명성이 더러워진 문화적 우두머리들”보다 “코코 샤넬과 그녀 드레스의 순수함”을 사람들이 선호한 것에서 쿤데라는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쿤데라에 따르면 유럽은 검찰관들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사랑받지 않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쿤데라는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기술을 꼽는다.『만남』에서 쿤데라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다고 단언한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요성은 기술로서의 영화의 중요성보다도 훨씬 더 제한적이고, 그 역사가 모든 예술 역사 중에서 가장 짧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사진”의 발견이 없었다면, 지금 세상은 현재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선, (스폿 광고,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저질 문학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보 만들기의 주요한 동인이 되었으며, 두 번째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적을 비밀리에 촬영하고, 테러 행위가 일어난 후 들것에 누워 있는, 옷이 반쯤 벗겨진 여자의 고통을 불멸화하는 카메라처럼) 전 지구적인 무례함의 동인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화려한 3D 기술로서의 영화가 주목받고, 작고 간편한 휴대용 기기가 책, 편지, 오디오의 기능을 독점해 가는 현 시대, 사람들은 점점 더 순수 문학으로서의 소설과 시를 읽지 않고 있다. 쿤데라가 “예술-이후의 시대에 있다는 느낌, 예술의 필요성, 감수성,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술이 사라진 세상에 있다.”라고 말한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이렇게 예술이 사라져 가는 세상, 예술-이후의 시대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뒤흔들고, 자신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예술계의 거장, 혹은 그들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예술, 그 속에 숨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 소설가이자 극작가, 에세이스트이자 망명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쿤데라의 영혼을 뒤흔든 세기의 만남들 
 
쿤데라는 자신의 첫사랑이 작곡가 야나체크라고 고백한다. 야나체크는 그의 첫사랑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고국을 그의 “미학적 유전자에 영속적으로 각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야나체크는 일생을 체코 브르노에서 보냈다.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쿤데라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야나체크의 초기 연구자들과 지지자들과 어울렸다.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에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매일 아버지나 아버지의 제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야나체크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1971년, 침울했던 점령 시절,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쿤데라는 일체의 담화를 금지했다고 한다. 단지 음악가 넷이 화장터에서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곡을 연주하기만 한 것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야나체크는 인간(삶)의 노쇠, 추함, 우스꽝스러운 면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환원한 작곡가다.
 
『만남』에서 쿤데라가 주목한 화가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쿤데라는 미셸 아르솅보의 제안으로 한 잡지에 베이컨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베이컨은 이를 읽고 “스스로를 발견한 드문 글 가운데 하나”라고 전해 왔다고 한다. 『만남』에는 바로 그때의 에세이와, 훗날 덧붙인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뮤즈였던 여인 헨리에터 모레스의 초상 삼부작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초상화가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화가의 시선은 난폭한 손처럼 얼굴에 놓여 있었고, 얼굴의 정수를,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진 그 다이아몬드를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내면 깊은 곳이 정말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난폭한 몸짓, 타인의 내면과 배후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타인의 얼굴을 마구 구기는 이런 손의 움직임이 있다.
(중략)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한 개인은 여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사랑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까? 소중한 얼굴이 질병 때문에, 광기 때문에, 증오 때문에, 죽음 때문에 멀어질 때, 얼마나 오랫동안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아’가 더 이상 ‘자아’이기를 멈추는 경계는 어디인가? -작품 속에서
 
『만남』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강하게, 문학에 대한 쿤데라의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통해 우스운 일이 전혀 없는데도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역설적인 희극적 상황, 즉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유머 없는 웃음의 세계”를 포착해 낸다. 셀린을 통해서는 고문과 전쟁과 죽음을 겪어야 했던 세대의 운명을, 필립 로스의 작품에서는 “정체가 드러나고 환상이 깨져 버린 우리 자신의 벗은 몸”, 그 욕망과 마주한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기이한 고독”과 만난다. 한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두고는 “소설 예술의 극치인 동시에 소설의 시대에 보내는 작별 인사”라고 평한다.
 
뿐만 아니다. 『백조의 날개』를 쓴 아이슬란드 소설가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스페인 작가 후안 고이티솔로, 루마니아 출생 그리스 작곡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등 어쩌면 국내 독자들에게 약간은 낯설지도 모를 예술계 거장들이 쿤데라의 눈과 귀와 손을 거쳐 우리를 매혹한다.
 
 
 
▷ 발췌로 만나는 짧지만 강렬한 『만남』 속 ‘만남’들
 
 
흐라발
 
흐라발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카프카
 
카프카와 더불어 우리는 소설사의 또 다른 시대로 들어간다.  
 
 
야나체크
 
무엇을 통해 내 고국이 내 미학적 유전자에 영속적으로 각인되었는지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야나체크의 음악을 통해서라고. 
 
 
라블레
 
왜 라블레일까? 왜냐하면 그는 소설 예술에서 진지하지 않은 것의 개척자이고 설립자이며 화신이기 때문이야. 이 두 가지 준거에 의해 루슈디는 진지하지 않은 것의 원칙 자체를 강조해. 그리고 진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역사 내내 무시되어 왔던 소설 예술의 가능성들 중 하나야.
 
 
필립 로스
 
필립 로스는 미국적 에로티시즘에 관한 위대한 역사가다. 아울러 그는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 기이한 고독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하다.
 
 

밀라시우스
 
밀라시우스 시의 체코어 번역판은 내게 아주 깊은 흔적을, 어쩌면 당시 내가 탐독하던 아폴리네르나 랭보 또는 네르발이나 데스노스의 시보다도 더 깊은 흔적을 내게 남겼다.
 
 
「바르샤바의 생존자」
 
아널드 쇤베르크의 오라토리오인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음악이 홀로코스트에 바친 가장 위대한 기념물이다.
 
 
「훌륭한 솔라보」
 
샤무아조의 「훌륭한 솔라보」는 문화사에서 가장 큰 사건들 가운데 하나를 다룬다. 끝나 가는 구술 문학과 태어나는 기술 문학의 만남이다.
 
 
「오줌 누는 여인」과 「게르니카」
 
흥분, 공포, 혐오, 충격 같은 미학 너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예술은 늘 경계해야 한다. 나체로 오줌 누는 여자의 사진은 발기하게 만들 수 있지만, 피카소의 「오줌 누는 여인」에서 동일한 효과를 끄집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이 그림이 훌륭하게 에로틱한데도 말이다. 영화에서 대학살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시선을 돌리지만 똑같은 공포를 보여 주는 「게르니카」 앞에서는 시선이 즐거워한다.
 
 
 
■ 쿤데라와 마그리트, 두 거장의 만남—쿤데라 전집만의 아주 특별한 품격
 
쿤데라 전집의 모든 작품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작품이 쓰인다. 마그리트 재단은 도서 등에 대한 마그리트 작품의 2차 가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쿤데라 전집에 대한 사용을 특별히 허가해 주었다. 또한 쿤데라 역시 마그리트 작품이 사용된 자신의 전집 표지 시안을 보고 “이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답다.(they are great, they have ever been. We saw everything and everything is more that wonderful.)”라고 격찬했다.
 
마그리트 작품의 신비한 분위기,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그 속에 숨은 유머와 은유가 쿤데라의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제껏 한국 문학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답고 품격 있는 문학 전집이 탄생되었다. 이로써 독자들은 쿤데라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얻어 새롭게 태어나는 마그리트의 작품까지 함께 소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쿤데라 전집 14 『만남』의 표지 이미지로는 마그리트의 「아르곤의 전투」(The Battle of Argonne)가 쓰였다. 
 
 
■ 리뷰
 
▶ “넘치는 지성과 신랄한 유머로 만나 보는 ‘창작’ 저 너머의 세상.” ——《르 포앵》
 
▶ “이미 널리 읽히고 평가 내려진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분석.” ——《리르》
 
▶ “짧지만 깊이 있는 이 에세이 속에는 경탄과 경의 어린 목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날카로운 비판과 우려 섞인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르 마가진 리테레르》
 
▶ “마치 주술을 거는 듯한 독창적인 에세이.”——《가디언》
 
▶ “눈을 뗄 수 없이 강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진짜’ 생각과 감정을 환기시키는 예기치 못한 만남.”——《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이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지성에 대한 도전이자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다.”——《뉴욕 타임스》

목차

■ 차례
 
 
1부 화가의 난폭한 몸짓_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서………………………….9
 
 
2부 소설, 실존 측정기들…………………………………………………………………35
희극성의 희극적 부재(도스토옙스키, 『백치』)
죽음과 호화로움(루이페르디낭 셀린, 『성(城)에서 성(城)으로』)
가속되는 역사 속의 사랑(필립 로스, 『욕망의 교수』)
인생의 나이에 대한 비밀(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백조의 날개』)
순정적인 사랑, 공포의 자식(마레크 비엔치크, 『트보르키』)
추억의 와해(후안 고이티솔로, 『그리고 막이 내릴 때』)
소설과 생식(生殖)(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3부 블랙리스트들, 혹은 아나톨 프랑스에게 바치는 디베르티멘토……….65
 
4부 완전한 상속의 꿈…………………………………………………………………..101
라블레와 미조뮈즈들에 대한 대화
베토벤에게 있어서 완전한 상속의 꿈
원(原)-소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생일에 부치는 공개 편지
유산의 전적인 거부 혹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5부 복합적인 만남처럼 아름다운………………………………………………………..127
 
6부 다른 곳에서………………………………………………………………………………151
베라 린하르토바가 말하는 해방 망명
한 이방인의 건드릴 수 없는 고독
내밀함과 우정
꿈을 뒤지는 초현실주의자들과 라블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위대한 두 봄에 대해서 그리고 슈크보레츠키 부부에 대해서
그대는 아래에서부터 장미 향을 맡을 것이다
 
7부 나의 첫사랑………………………………………………………………………………….177
외다리의 위대한 달리기
향수에 젖게 하는 최고의 오페라
 
8부 쇤베르크를 잊음………………………………………………………………………………..199
이것은 내 축제가 아니다
베르톨트, 그대에게서 무엇이 남을 것인가?
쇤베르크를 잊음
 
9부 『가죽』, 원(原)-소설…………………………………………………………………………211

작가 소개

밀란 쿤데라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 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한바 있다. 2차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1980년에 파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60년대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지금은 멀어져버린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신화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나라,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본질이 더 잘 보이는 듯한 그 나라.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의 원인은 체코에 있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밀란 쿤데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지혜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생은 다른 곳에』『불멸』『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별』『느림』『정체성』『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78년에 출간된 『이별』은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문학상 프레미오 레테라리오 몬델로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별』은 현대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우리의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근 작품으로는 『향수』와 오늘날 현대 소설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의를 쿤데라만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 『커튼』등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다른 책들

한용택 옮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앙드레 말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대우교수, 건국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 단국대학교 스토리텔링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경기대학교, 건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동화, 콘텐츠를 만나다』(공저), 『동화 속의 문화, 문화 속의 동화』(공저), 『다문화교육의 이해』(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광인?』, 『하나님의 이력서』, 『머리카락』, 『살아 있어 미안하다』, 『로맨틱 에고이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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