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학의 선구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언어 신동, 세계 최초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풀어내다

문자를 향한 열정

세계 최초로 로제타석을 해독한 샹폴리옹 이야기

원제 THE KEYS OF EGYPT (The Race to Read the Hieroglyphs)

레슬리 & 로이 앳킨스 | 옮김 배철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2월 17일 | ISBN 978-89-374-8430-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54x222 · 400쪽 | 가격 25,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내가 발견했어!” 1822년 이집트 성각 문자 판독 체계를 알아낸 샹폴리옹은 전속력으로 형에게 달려가 이 한마디를 외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전 유럽이 ‘이집트 열풍’에 휩싸였으나, 누구도 고대 이집트 문헌을 해독하지는 못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바로 고대 이집트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다. 열여섯 살 때 그리스어, 라틴어 등 12개 언어를 마스터할 만큼 언어 신동이었던 그는 이집트 성각 문자와 고대 이집트 문명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전의 학자들이 ‘성각 문자=표의 문자’라는 고정 관념에 갇혀 수많은 오역들을 쏟아 낸 반면, 샹폴리옹은 로제타석과 이집트 오벨리스크 등의 원문을 집요하게 탐구한 끝에 ‘성각 문자=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가 혼합된 체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 샹폴리옹은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관의 큐레이터로 임명되어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 직접 이집트에 가서 아부심벨, 왕가의 계곡 등에 있는 유물과 유적을 조사하고 분석해, 고대 이집트학 연구의 기틀을 세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중한 연구에 건강이 악화되어 끝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고대 이집트학 연구가 한층 더 진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고학자인 앳킨스 부부가 생생하게 되살려 낸 샹폴리옹의 삶을 통해 격동의 19세기 유럽 한가운데에서 치열하게 고대 이집트 연구에 매진했던 한 남자의 뜨거운 열정,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한 고고학과 고대 이집트학의 발전 과정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리뷰

■ 베일에 싸여 있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세계 최초로 벗겨 낸 어학 천재
 
1790년 12월 23일 프랑스 시골 마을 피자크에서 태어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타고난 언어 신동이었다. 어렸을 때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읽기와 쓰기를 터득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쓰기’를 베껴 그린다는 의미로 이해했고, 한 편의 글을 그림들의 집합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나중에 샹폴리옹이 성각 문자를 해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미 열여섯 살에 그리스어, 라틴어 등 12개 언어를 마스터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대 언어와 이집트 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이집트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나폴레옹 원정대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유물과 문서, 각종 자료들이 전 유럽에 넘쳐 났고, 많은 학자들이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앞다투어 나섰다. 우연히 이집트에 다녀온 학자 조제프 푸리에를 만난 어린 샹폴리옹은 돌과 파피루스 조각에 새겨진 성각 문자들을 보고 자신이 반드시 그것을 해독해 내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젊은 치기였는지, 자신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샹폴리옹은 그 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고 결국 세계 최초로 이집트 성각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학자들에게 성각 문자 해독의 단초를 제공한 유물은, 단연 로제타석 비문이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로제타석에는 똑같은 내용이 그리스어, 성각 문자, 민중 문자로 각각 쓰여 있다. 학자들은 읽을 수 있는 그리스어를 중심으로 미지의 언어인 성각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애썼지만 오랫동안 연구는 답보 상태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자들이 ‘성각 문자=표의 문자’라는 전제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그 틀을 깨고 ‘성각 문자=표음 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샹폴리옹이다. 샹폴리옹은 로제타석의 그리스어 텍스트와 성각 문자 텍스트를 비교한 끝에, 성각 문자 텍스트에는 가변성이 있고 그것은 표음 문자와 표의 문자가 혼합된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성각 문자를 해독해 냄으로써 수많은 고대 이집트 유적과 유물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미궁에 빠져 있던 고대 이집트학 연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프랑스와 영국의 명예를 건 세기의 대결에서 집념과 끈기로 승리하다
 
샹폴리옹이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기까지 많은 난관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격동기를 살았던 그는 끊임없이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 각지에서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어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의 도움으로 매번 그 위기를 가까스로 넘어갈 수 있었다. 또 나폴레옹을 둘러싸고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 정국이 요동치면서 연구소와 대학 등에까지 그 영향이 미침에 따라, 샹폴리옹의 입지는 항상 불안했다. 그는 언제나 가난과 불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고, 원래 몸이 약했던 그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려 중간에 쫓기고 유배를 당하고 반역죄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외부 요인도 성각 문자와 고대 이집트 연구에 대한 샹폴리옹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이 먼저 성각 문자를 해독할까 걱정했다. 르누아르, 오셰르블라드, 카트르메르 등이 속속 연구 업적을 발표하면서 샹폴리옹은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잘못된 것이었고, 샹폴리옹은 자신이 이 경쟁의 승리자가 되리라는 확신을 품고 꿋꿋이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그런 그에게도 숙명의 라이벌은 있었다. 샹폴리옹의 최대 경쟁자는 영국 학자 토머스 영이었다. 샹폴리옹과 달리 영은 어릴 때부터 각종 교육 혜택을 충분히 누렸고 의사라는 안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당한 유산도 상속받았다. 오리엔트 언어에 관심이 있었던 영은 로제타석 비문 해독에 나섰고, 심지어 한때는 샹폴리옹을 앞서 나가기까지 했다. 샹폴리옹은 자신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경쟁자에게 위기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영이 로제타석 비문 해독에 대한 중요한 연구 성과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재하여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에 초조해했다. 더구나 이집트 열풍이 전 유럽을 휩쓴 가운데 샹폴리옹과 영의 학문적 경쟁이 프랑스와 영국의 명예를 건 세기의 대결로까지 비쳐졌기에 두 사람의 경쟁은 더욱 과열되었고 그만큼 부담감도 커졌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영의 한계였다. 성각 문자 외에도 의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던 영은 결국 성각 문자를 완벽하게 해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와 달리 샹폴리옹은 성각 문자와 고대 이집트학이라는 한 우물에만 평생 집중했고, 로제타석 비문을 중심으로 성각 문자 텍스트를 다각도로 연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샹폴리옹은 토머스 영을 누르고 ‘세계 최초의 성각 문자 해독가’라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 그리스도교와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고대 이집트학의 창시자
 
샹폴리옹은 고대 이집트 유물을 분류하고 조사하는 작업에도 헌신했다. 1826년에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으로 생긴 이집트관의 큐레이터를 맡게 되었다. 그것은 이집트에 관심 있는 학자라면 누구나 맡고 싶어 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오랫동안 학계 변방에 있었던 샹폴리옹이 이로써 대외적으로 당당히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그는 관람객들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대 이집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고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샹폴리옹은 이집트 유물에 적힌 글들을 해독하여 그것들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원칙에 따라 배치했다. 당시에 전시품들을 예술적 가치에 따라 배치하던 관행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1828년 샹폴리옹은 프랑스의 샤를 10세와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트 2세의 원조를 받아 직접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 샹폴리옹을 중심으로 한 학자 일행은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 클레오파트라의 비문 등을 직접 보고, 나일 강을 따라가며 고대 유적들을 탐사했다. 그들은 테베, 아스완, 아부심벨 등 다양한 지역을 돌며 신전과 무덤에 있는 수많은 벽화와 글 들을 모사했다. 고단한 일정에 샹폴리옹은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지만, 그래도 그는 이집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고 느꼈고 몹시 행복해했다. 현재 이집트 유적들 중 상당수가 훼손되었기 때문에 샹폴리옹 원정대의 기록들은 매우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이 탐사를 통해 샹폴리옹은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고대 이집트 문명이 존재했음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뿌리째 뒤흔드는 것이어서, 당대 지식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1830년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샹폴리옹은 자신의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책으로 출간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건강 상태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병을 앓으면서도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끝내 1832년 3월 4일 운명하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형 자크조제프가 그의 미완성 원고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고, 이는 고대 이집트학 연구의 기틀이 되었다. 『이집트어 문법』과 『이집트어 사전』은 이후 성각 문자 연구에 큰 자극제가 되었고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전 유럽에서 등장했다. 샹폴리옹 덕분에 성각 문자 기록들을 읽을 수 있게 된 학자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 나갈 수 있었다. 샹폴리옹은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고, 그가 살았던 지역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물과 거리 등이 남아 있다. 고고학자인 레슬리 앳킨스와 로이 앳킨스가 쓴 이 책을 통해 고대 이집트학의 선구자 샹폴리옹의 크나큰 열정과 끈기를 생생하게 느끼고, 고대 이집트 문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삽화 목록
시간의 기원1장 이집트 땅2장 학생3장 도시4장 선생5장 의사6장 클레오파트라7장 왕과의 만남8장 비밀의 전문가9장 번역가10장 말과 글을 주신 분
감사의 말옮긴이의 말더 읽을거리

작가 소개

레슬리 & 로이 앳킨스

레슬리 앳킨스와 로이 앳킨스는 고고학자이자 런던 고미술 협회 전문 위원이다. 레슬리 앳킨스는 영국 브리스틀 대학에서 고고학, 고대사, 라틴어를 전공했고, 로이 앳킨스는 카디프에 있는 단과 대학에서 고고학 학위를 받았다. 『영국 고고학 안내서(The Handbook of British Archaelogy)』, 『로마인 입문(Introduction to the Romans)』, 『버려진 장소들(Abandoned Places)』, 『고고학 입문(An Introduction to Archaelogy)』, 『고고학 화보(Archaeological Illustration)』, 『고대 로마 생활 안내서(Handbook to Life in Ancient Rome)』, 『고대 그리스 생활 안내서(Handbook to Life in Ancient Greece)』, 『로마 종교 사전(Dictionary of Roman Religion)』 등을 썼다. 현재 영국 데번에서 살고 있다.

배철현 옮김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하버드 문과대학원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 어와 인도-이란 어 고전문헌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다리우스 대왕의 비시툰 비문에 관한 연구』와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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