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원제 The Unconsoled

가즈오 이시구로 | 옮김 김석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1년 12월 1일 | ISBN 978-89-374-9053-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468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끄는 대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첼튼햄 상(1995) 수상작

어딘가 있을지 모를 구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머물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빚어내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의 하모니

편집자 리뷰

부커 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김석희 번역)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53, 54번)으로 출간되었다.
이시구로는 처녀작 『창백한 언덕 풍경』(1982)으로 왕립문학협회상을 받으며 ‘영국 문학의 새로운 사자’로서 출현을 알렸고, 1986년 『떠도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을, 1989년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받으며 오늘날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후 6년 만에 발표된 작품으로, 유명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라이더가 성공을 위해 저버려야 했던 가치들, 즉 사랑, 가족, 부모, 어린 시절의 우정을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나 결국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을 단정한 문체와 섬세한 분위기로 담담히 그려 냈다.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가뭇없는 몽환적인 배경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는 초기작 세 편에서와는 달리 초현실적이고 실험적인 작풍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1995년 첼튼햄 상을 받았으며, 이후 발표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는 부커 상 후보에, 『나를 보내지 마』(2005)는 《타임》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미권 대표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져 가고 있다.

■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 낸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
세계적으로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라이더는 연주 여행차 중부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방문한다. 이름도 없는 이 가공의 도시는 특정 국가의 정서나 풍경 같은 구체성이 모두 배제되어 있는 ‘이상한 나라’다. 시간과 공간도 크게 뒤틀려 있으며, 이런 지리적 설정에 걸맞게 등장인물들도 동서 진영을 넘나든다. 그들의 거침없는 이야기는 장황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황당무계하여 꿈인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 없다.
나는 그녀가 그 방의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인물에게 나를 데려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얼마쯤 지나자 우리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방을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갔던 곳을 또다시 지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략) 이따금 나에게 정중하게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어쨌든 내가 지나가는 것 때문에 대화를 중단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 확실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질문과 찬사에 파묻힐 것을 예상하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부」, 201~202쪽
나는 또다시 내 정체를 밝히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곤혹스럽게도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역시 웅얼거림뿐이었다. 아까보다는 힘찬 소리였지만, 의미를 이루는 소리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제 공포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역시 웅얼거리는 소리만 나왔을 뿐이다. —「2부」, 385쪽
이 비현실적인 도시에서 라이더는 과거 자신이 저버린 관계들과 실수들을 목도한다. 건물, 침실, 복도, 심지어 버려진 자동차까지도 그에게 어린 시절을 상기시킨다. 그가 찾아간 방은 일찍이 자기가 살았던 방과 똑같고, 길가에 버려져 있는 고물 자동차는 아버지가 옛날에 타던 자동차다. 호텔 포터인 구스타프의 부탁을 받고 만나러 간 그의 딸 소피와 외손자 보리스는 어느새 라이더의 아내와 아들이 되어, 라이더에게 그가 너무 자주 집을 떠나 있다며 원망한다. 시내 전차에서 만난 검표원도, 캄캄한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내도 모두 한때 그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생들이다. 라이더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과 꼭 닮은 사람들도 등장한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좌절한 젊은 음악도 슈테판은 라이더의 과거의 모습이며, 다리미판을 지휘봉으로 사용하여 연주회를 한바탕 희비극으로 끝내 버리는 타락한 지휘자 브로즈키 노인은 라이더의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 다시 방을 둘러보니, 그 방을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야릇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방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접경 지방에 있는 고모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2년 동안 살았을 때 내가 침실로 썼던 바로 그 방이 아닌가. (중략)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이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물론 그 방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거나 없어졌는가를 여전히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내 어린 시절의 성역으로 다시금 돌아온 것을 깨닫자 깊은 안도감과 평화가 나를 사로잡았다. —「1부」, 31~32쪽
소피는 그 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몰라서이기도 했지만, 그건 부분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사실은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소피의 얼굴이 점점 낯익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숲 속에 있는 바로 그런 집을 구입하는 문제를 가지고 전에도 소피와 의논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1부」, 62쪽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들은 라이더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전에는 알았지만 잊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사실은 그의 무의식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게 된다. 억압된 기억은 언젠가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프로이트의 언명처럼, 이곳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부모와 가족, 어렸을 때 우정을 함께 나눈 친구들을 돌보지 않은 채 세계를 떠돌며 연주 여행을 다녔던 라이더가 그들에게 지녔던 죄책감이 투영되어 창조해 낸 가상의 도시인 것이다. 독자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한 남자의 인생 전체가 가상의 도시에서 한 시간대에 무차별하게 펼쳐지는 기이한 광경을 보면서,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야 마는 기억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위안뿐이오.”
“상처는 오랜 친구처럼 변함이 없어요. 해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그러다가 마침내 상처가 영원히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은 거기에 싫증이 납니다. 아주 지겨워지죠. (중략) 상처를 고친다고? (중략)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위안뿐이오.” —「3부」, 41쪽
나는 그가 아직도 크루아상을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둘러 전차에서 내릴 기미는 전혀 없었다. 사실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전차는 끊임없이 이어진 순환 궤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와 주고받는 대화가 즐거우면 그는 자기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해도 내리지 않고, 전차가 한 바퀴를 더 돌 때까지 대화를 즐길지 모른다. (중략) 이윽고 전차가 멈춰 서면, 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나서 전차에서 내릴 것이다. 이제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헬싱키로 떠날 수 있겠다고 확신하면서. 나는 커피 잔을 넘치도록 채웠다. 그러고는 커피 잔을 한 손에 조심스럽게 들고, 또 한 손에는 음식이 듬뿍 담긴 접시를 들고, 내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4부」, 377~378쪽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시민들은 모두 음악에서 위안을 찾고 있지만, 그들이 관연 음악을 통해 진정한 위안을 얻었는지는 마지막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겉돌 뿐이다. 도시도 그렇다. 시내는 걸핏하면 교통 체증에 걸릴 만큼 혼잡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텅 빈 공간’뿐이다. 금방 올 거라던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콘서트홀을 가려면 지나갈 구멍 하나 없는 높은 담벼락을 우회해 한없이 걸어가야 한다. 출구 없는 이 도시에서 시민들은 다만 순환을 거듭한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시내를 한 바퀴 도는 순환 전차에 탄 라이더가 빵을 씹으며 다음 행선지를 꿈꾸는 대목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가 이 순환 궤도에서 내려 다른 길로 떠날 수 있을지 독자들은 끝내 알 수 없다. 하지만 라이더의 미래 모습을 예시하는 인물 브로즈키의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위안뿐이오.”라는 말을 통해 작가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구원을 끝내 얻지 못하더라도, 상처가 완전히 나을 수 없다 해도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해 준 사람”에게 ‘위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삶은 충분히 살 만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해 준다. 젊은 날 놓쳐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라이더의 모습 위로,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을 안고 살지만 해결할 바를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쓸쓸하게 겹쳐진다. 초현실적인 배경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라이더와 꼭 같은 당신 마음에 잔잔하고도 깊은 여운을 전해 줄 것이다.

작가 소개

가즈오 이시구로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해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1986년 일본인 화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해 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1995년 현대인의 심리를 몽환적으로 그린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트넘 상을 받았다. 2000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발표해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5년 발표한 복제 인간을 주제로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보내지 마』가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받았다. 2015년 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파묻힌 거인』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황혼에 대한 다섯 단편을 모은 『녹턴』(2009)까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으며,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 『클라라와 태양』을 발표했다.

김석희 옮김

서울대학교 인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며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만티사』, 제임스 헤리엇의 『아름다운 이야기』, 『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홋타 요시에의 『고야』, 『몽테뉴(평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르네상스의 여인들』 등 많은 책을 번역했고, 역자후기 모음집 『에필로그 60』을 펴냈으며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했다.

독자 리뷰(1)

독자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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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해주시겠습니까?
201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