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경쟁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는 유토피아 경제학은 끝났다 미래의 경제는 독식이 아닌 다양성을, 경쟁이 아닌 공존을 말한다

시장의 배반

존 캐서디, 우석훈 | 옮김 이경남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1년 12월 15일 | ISBN 978-89-374-8382-0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96쪽 | 가격 25,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인간의 경제적 삶을 다루는 학문에 인간이 빠져서야 어찌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극도로 앙상해졌던 경제학에 다시 살이 붙어 통통해지는 과정이 앞으로 진행될 경제학의 변화가 될 것이다. 좀 멋지게 얘기하면, 하나의 학파가 지배하던 시절에서 학문적 혹은 이론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기가 온다고 할 수 있다. 주류 안에 있던 경제학자인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흐름의 선두주자다. 캐서디가 우리에게 펼쳐 보여 주는 세상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30년’의 밑그림과도 같다. 공포와 초조함으로 다가올 미래 경제에 대해 한 가지 안도해도 좋은 것은, 『시장의 배반』이 보여 주는 새로운 경제가 악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올 시대가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독식 경쟁의 정글이 아니라는 사실은 새롭게 경제학을 공부할 동기를 제공한다.
―우석훈(경제학자)
 

“유토피아 경제학이 어떻게 금융 위기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설” ―《블룸버그닷컴》
“자본주의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가장 심도 깊고 설득력 있는 설명” ―《데일리 텔레그래프》
“자유시장의 핵심 근간, 즉 시장에서는 개인의 이기심 추구가 가장 효율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전제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뿌리까지 파헤친 야심 찬 기획” ―《이코노미스트》
“시장은 규제하면 안 된다는 불간섭주의가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지 보여 주는 생생 드라마” ―《비즈니스위크》

편집자 리뷰

★ 애덤 스미스에서 벤 버냉키까지 300년 경제사상의 흐름을 한눈에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은 케인즈의 경제학을 자유 시장 모델의 특수한 경우로 치부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장 성공 경제학에만 관심을 두었지, 시장 실패 경제학에는 눈을 감았다. 20여 년 전 폰지 금융을 예고한 하이먼 민스키와 자본 시장은 카지노가 될 것이라고 고발했던 폴 스위지. 각각 케인스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로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금융 주도형 자본주의 모델의 부상이 초래할 폭탄을 정확히 예측하여 사후에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고, 특히 민스키의 저서는 이베이에서 수백 달러에 거래되었다. 민스키는 이렇게 경고했다. “지금까지의 금융위기는 때가 되면 사라졌기 때문에, 중앙은행 관계자나 정부 관리나 뱅커들이나 사업가나 심지어 경제학자들까지도 당연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믿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깊은 불황으로 이어지는 금융의 한계점이 있다는 카산드라의 경고는 당연히 무시된다.”

독점력을 악용하는 대기업의 반경쟁적 행위, 보험이 가장 절실한 환자들에게 보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의료보험, 금융시장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투기 버블, 이 모든 것이 바로 시장이 실패한 사례에 속한다. 모범 기업이라고 자부하던 구글은 저작권 승인도 받지 않고 모든 도서관 자료를 디지털화하려 하고, 페이스북은 유저들의 프로필 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확보하려고 했다. 시장은 이런 것들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학교, 병원, 공원, 경찰, 공중위생, 빈민가 개발 등 시급한 공공서비스는 늘고 있는데 늘 재원은 부족하다. 경제는 가장 급하지 않은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문제에는 눈을 감는다. 존 갤브레이스는 이것을 “사적 풍요와 공적 빈곤”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느슨한 경쟁이 성장을 촉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특히 테크놀로지 시장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무효화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완벽한 경쟁 모델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설명했다.

50여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혁신, 이윤 창출,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즉 주식시장 버블, 부의 불평등, 환경오염, 신용 경색, 부동산 시장 붕괴 등이 일어날 때 시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류 경제학은 시장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처를 하고 있지 못했다. 시장은 결코 알아서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없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자유시장의 기본 원칙은 애덤 스미스의 명제인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 전체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는 전제에 세워졌다. 하지만 250년 전 국가가 경제를 이끌던 시절에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고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21세기 시장 자본주의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애덤 스미스의 명제를 철통같이 신봉했다. 이 책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핵심, 즉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알아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비현실적인 이론의 흥망사다. 하이에크, 케네스 애로, 하이먼 민스키, 그리고 2008년 주택 버블의 붕괴에 이르러서야 환상이 깨지는 드라마틱한 경제사가 펼쳐진다.

“조직의 이기심, 특히 은행 등의 이기심이 그들의 자기자본과 주주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점은 내 오판이었습니다. … 문제는 매우 견고한 건축물처럼 보였던 어떤 것, 실제로 시장 경쟁과 자유 시장의 중요한 기둥이 하나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나에게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미 벌어진 사태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서문」에서

1부에서는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의 유토피아 경제학, 즉 시장은 알아서 돌아간다는 자유시장 이론이 어떻게 주류 경제학으로 정착했는지 설명한 다음에, 2부에서는 왜 시장은 이론과 달리 혈실에서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것을 ‘현실에 기반한 경제학’이라고 명명한다. 3부에서는 양쪽 이론을 적용하여(미국은 자유시장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신뢰한 나머지 시장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데도 규제 완화로 일관한 결과 금융 위기를 맞았다.) 일련의 주택 버블과 세계 금융 위기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지난 4월 부산 저축은행 사태는 과도한 금융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시장 실패의 대표적인 실례다.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은 예금취급금융회사법에 서명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저축 금융기관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10년도 안 돼 700개가 넘는 저축 대부 기관들이 파산했고, 여기에 돈을 맡겼던 예금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돈을 떼인 사람은 없었으나 이 혼란을 수습하는 데 들어간 총비용은 약 1250억 달러였고, 이 돈은 고스란히 미국 납세자들의 몫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바꾸어 놓는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파국에 이른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착각에서 비롯됐다. 규제 없는 금융 시장은 고삐 풀린 도박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들은 왜 그토록 ‘시장의 자정 능력’을 맹신했을까? 경제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 탁상공론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할 때 모두가 협력하여 공익을 이룬다는 기본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하이에크에서 밀턴 프리드먼까지 시카고학파가 탄생시킨 유토피아 경제학의 환상을 깨고, 케인즈와 아서 피구에서 조지 애컬로프와 대니얼 카너먼까지 현실에 기반을 둔 경제학의 흐름을 추적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변천 혹은 왜곡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고, 오늘날 미국과 세계 경제가 왜 비틀거리고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모든 것이 최선의 상태로 작동하도록 보장해 주는가? 이 책은 경제 교과서는 아니지만 독자들을 매일 신문의 헤드라인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로 이끌어 주고,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법과 경제 정책을 만드는 이론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_「서문」에서
 

★ 교과서에 다루지 않는 ‘시장 실패 경제학’이란?

월드뱅크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저명한 영국 경제학자 니콜러스 스턴의 「스턴 보고서」는 지금까지 지구온난화를 과학적, 정치적, 윤리적인 각도에서만 보았던 것을 ‘시장 실패’로 규정함으로써 경제적인 관점을 처음으로 제공했다. 지구온난화와 시장 실패의 핵심은 “경제학자들이 부정적 과잉효과나 외부효과라고 부르는 것의 준재”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석탄을 태울 때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는 하나의 부산물로, 그 양이 일정 분량 이상으로 넘치면 대기 속으로 들어간다. 발전소는 이런 오염 행위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중단할 만한 어떤 인센티브도 갖고 있지 않다. 실제로 기업을 일차적 오염 주체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의 인센티브이다. 즉 거대한 풍차 농장을 세우거나 태양열전지판을 설치하는 것보다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석탄을 태우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태우는 당자상의 사적 비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9 아서 피구 vs. 존 케인즈」에서

「스턴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환경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유발하는 기후변화는 기본적으로 위부효과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과 후세에 그 비용을 부담시킨다. 그들은 자신의 활동이 초래하는 결과적 비용 전체와 직접 부딪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변화는 시장 실패라고 지적한다. “기후변화는 정책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어떤 기관이나 시장을 통해서도 ‘바로잡히지’ 않는 그런 실패이다.”

‘시장 실패’라는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인 프랜시스 베이토다. 아무리 완벽하게 예측이 가능한 세계에서도 시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독과점.  

대부분 제조업은 생산라인을 기반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단위 비용은 떨어진다. 포드나 도요타는 주당 800대를 생산하는 공장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주당 1000대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대기업은 웬만하면 중소기업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몇 안 되는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경쟁이 몇 안 되는 큰손들에 국한되면서 기업들은 비용 이상으로 가격을 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경제의 효율성에 필요한 조건은 문란해진다.
―「9 아서 피구 vs. 존 케인즈」에서

두 번째 시장 실패는 기업이 교량, 병원, 공원, 소방서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생산할 인센티브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미스와 피구가 다룬 ‘공공재’의 문재이지만 로잔 학파와 시카고 학파는 이 문제를 얼버무렸다.” 세 번째는 과잉효과(혹은 베이토가 만든 용어인 ‘외부효과’)이다. 이런 시장 실패들이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주요 분석에서 참고 정도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시장 실패는 자유시장이라는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특수한 예외로 치부되고 만다. 예를 들면, 스탠퍼드 대학교 석좌교수인 W. 브라이언 아서는 열등한 기술도 우연한 계기나 네트워크 효과가 있으면 우등 제품을 누르고 시장을 접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다가 면전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타박을 받은 적이 있다.

수익을 창출할 필요가 있는 보험회사는 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험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는 비인간적이고 비능률적이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 비합리성’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시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연구해야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 실업과 의료보험, 그리고 ‘레몬 시장’과 ‘노이즈 트레일러’

1960년대에 MIT 출신에 사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범생이었던 조지 애컬로프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있을 때 정보와 중고차 판매에 대해 연구했다. 당시 경제이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성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콧대 높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명문대 교수가 중고차 같은 세속적인 일상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애컬로프의 결론은 중고차 딜러는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중고차보다 새 차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고차 딜러의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딜러는 결함 있는 차부터 팔아치우려고 할 것이고 소비자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값을 깎으려 들 것이고, 딜러는 결함 없는 차라도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없기 때문에 멀쩡한 차는 시장에서 빼돌리기 일쑤고 결과적으로 중고차 시장은 레몬(불량품)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애컬로프는 이 논문을 여기저기에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애컬로프는 사람들이 ‘정보’ 문제를 소홀히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답은 이 논문이 맞다면 경제학 교과서는 처음부터 다시 쓰여야 한다는 것. 결국 197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오늘날 가장 많이 조회되는 논문으로 꼽히게 되었으니 경제학은 다시 쓰여야 마땅하다.  

감추어진 정보가 너무 예민해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실업자들은 노동시장에서 그런 사실을 수시로 절감한다. 흔히들 하는 말로 실업자보다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더 쉽다. 이유는 감추어진 정보 때문이다. 사람을 구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레몬일 확률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어도 실직은 명예롭지 못한 꼬리표이다. 실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은 실직 기간과 비례해서 떨어진다고 한다. 결국 많은 실직자들은 실의에 빠져 적극적으로 직장을 구하지 않게 되거나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당하고 만다. 자유시장 이론은 이런 문제를 무시한다.
_「12 숨겨진 정보와 ‘레몬’ 시장」에서

자유시장 이론은 사람들이 장기간 실직상태에 있으면 적당한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간주한다. 보험시장도 대표적인 레몬 시장이기 때문에 자유시장 모델로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미국에서 노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제정한 메디케어 덕분이다. 감추어진 정보가 초래하는 시장 실패는 정부가 개입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업자들이 노인들처럼 위험도가 높은 집단을 보험에 가입시키기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보험이 레몬시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가 5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험료가 비싼 상품을 제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현재 그런 고령자 보험이 없다고 하자.) 보험료는 나이가 들수록 오르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험을 해약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보험회사들은 약하거나 병든 사람들만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럴 경우 보험회사는 비용에 비해 수입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험료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은 보험을 해약하려 들 것이다. 결국 중고차시장처럼 레몬만 남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_「12 숨겨진 정보와 레몬 시장」에서

“시장이 반드시 자원을 할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널리 퍼진 가정”은 잘못되었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일부 공화당원들이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신봉하고 있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해서 자신의 이익 추구가 결국 공동의 선을 유발한다는 자유시장 가설은 금융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금융 시장은 어떤 논리가 지배할까? 바로 “투자는 근본적으로 똑똑한 자와 어리석은 자들이 벌이는 게임”이라는 것. “똑똑한 자들은 철저히 합리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들은 많은 정보를 보유한 데다,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회성 사건에서 중요한 뉴스를 뽑아내는 능력이 있다. 어리석은 무리들은 순진하고 심리적 능력에 한계가 있다.” 어리석은 자는 “금융 전문가들의 충고를 맹신하고, 다양화를 추구할 줄 모르고, 거래에 적극적이며, 포트폴리오의 회전율을 높이고, 오를 주식을 팔고 내릴 주식을 보유한다. 그래서 과세소득세액을 증가시키고, 자주 사고팔고, 뮤추얼펀드를 소모적으로 운영하고, 주가 패턴이나 다른 인기 있는 모델을 따른다.” 간단히 말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노이즈에 반응한다.

정보 폭포 이론은 개인의 입장에서 목적이 뚜렷하고 신중하게 선택한 행위가 어떻게 집단적인 비합리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좋은 예이다. 하이에크가 강조한 것처럼, 자유시장의 가격 체계에서 주요 역할은 정보를 기호화하여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 폭포에서 이런 신호 체계는 실패한다. “공적 정보는 더 이상 쌓이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오독이 초래한 왜곡의 역사

일반균형이론은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적 증거를 제공했다.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은 완벽한 시장경제에 대한 맹신을 퍼뜨렸다. 그러니 완벽한 시장경제 이론에 실직, 은행 베일아웃, 기업의 탐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실은 왜 이론과 다른가?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경제에서 개인의 이기심 추구는 효율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공공재와 공공비용이 줄어드는 현상은 사적 시장의 결정을 그르치는 원인이 된다. 시장가격은 필요의 관점에서 진정한 희소가치를 산출해 내지 못할 것이다. 시장가격에는 그릇된 정보가 담길 것이고 생산자의 이윤 산정에서 공공재와 관련된 사적 혜택은 대부분 배제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헛손질만 해대고 사람들의 시장 선택이 분산되면 각자의 취향을 효율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토(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사람들은 이기적인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케인즈는 경제활동에서는 ‘야성적 혈기(animal spirits)’나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자발적인 충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케인즈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이 구절을 들어 그의 이론이 대중의 비합리성에 의존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것은 착오다. 그의 이론은 합리적 비합리성, 즉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합리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저자 존 커시디

주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다듬고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인간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백년 뒤에 로잔학파는 일반균형이론으로 ‘보이지 않는 손’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했고, 또 백년 뒤에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시카고학파는 규제 없는 자유 경쟁을 외쳤다.

공산주의 체제에 관한 한 하이에크의 주장은 예리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철저히 중앙 집중화된 경제를 수립하려는 모든 노력에는 일당 독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주요 타깃은 소련이나 중국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영국과 프랑스와 그 밖의 다른 유럽 사회민주국가와 심지어 미국까지도 전체주의에서 한 발 더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_「3 하이에크의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자연이론은 경제가 스스로 균형을 잡아 가기 때문에 장기 침체는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케인즈 식의 경기 부양책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드먼은 케인즈주의를 무력화했다기보다는 이미 수명이 다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고 노동 불안이 만연했던 격동의 1970년대에 케인즈 학파의 섬세한 경제 이론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케인즈주의는 치욕을 당했고 프리드먼은 승리의 순간을 만끽했다. 1980년 1월에 『선택할 자유』가 나왔을 때, 프리드먼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되어 있었다.
_「6 복음 전파자 밀턴 프리드먼」에서

경제 전문가들이 베누아 만델브로의 비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정량 기법을 사용하는 일은 갈수록 흔해졌다. 동전 던지기 이론은 교과서에 실렸고 버튼 멜키엘 덕분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 많은 MBA 학생들은 여전히 효율적 시장 가설이 현실을 설명해 준다고 배웠고, 만델브로의 비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만델브로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현대 금융은 공인된 종교였다. 내 가설은 그 종교와 맞지 않았다. 나는 니케아 공의회의 이단자 아리우스처럼 경제의 기성 교회에서 홀대받았다.”
_「7 동전 던지기 모델 vs. 복잡한 금융 이론들」에서

상황이 좋을 때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최근의 이론을 납득시키고, 불평등의 심화, 만성적인 예산 적자, 허점투성이의 의료 제도, 금융 불안의 잠재성 같은 불편한 문제를 무시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이런 문제들이 불거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인구의 대다수가 직장을 가지고 있고, 건강하고, 쉴 집이 있는 한, 민간 기업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밀턴 프리드먼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개혁은 어떤 매우 매력적인 이상을 내세우는 경제적 선언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기업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정부 축소론자들이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_「8 유토피아 경제학의 승리」에서

반면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 조지 애컬로프의 정보 불균형과 레몬 이론, 하이먼 민스키의 폰지 금융, 대니얼 카너먼의 심리학 실험들은 ‘합리적 군중’에 대한 맹신, 즉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지적하면서 자유시장의 불안정성을 밝혀내고 유토피아 경제학의 전제들을 뒤엎었다.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애로와 드브뢰의 일반균형 이론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일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그 이론의 부정적 결과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자, 똑똑한 소장파 학자들 대다수가 일반균형을 포기하고 게임이론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다.
_「5 지복(至福)의 수학에서」에서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의 신봉자들은 규제에서 벗어난 신용 버블의 위험성을 지적한 애덤 스미스의 경고는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규제 없는 시장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린스펀은 주택 버블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가 전 세계를 고삐 풀린 금융 도박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주택 버블을 묵과한 벤 버냉키의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방준비제도는 자신들의 역할이 버블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터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는 기본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실체로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_「22 “런던 브리지 이즈 폴링 다운”」에서

밀턴 프리드먼이 부추겼던 ‘보이지 않는 손’의 현대판 이론은 너무 적은 것으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했다. 핵심만 추리자면 내용은 간단하다. 이기심에 경쟁심을 보태면, 그것이 곧 지상낙원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방정식에 다국적기업, 파생상품 시장, 겸영 은행, 뮤추얼펀드 같은 현대 자본주의 제도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정보 불균형, 불확실성, 모방 행동, 네트워크 효과, 근시안적 재난 불감증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는 이런 모든 불편한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_「맺는말」에서 

우리는 지금 ‘사회적 통념’ 때문에 경고에 귀를 닫는 재난 불감증을 겪고 있다. “아무리 멍청한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멍청한 짓을 한다면” 바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에서 벤 버냉키까지 경제학의 변천 혹은 왜곡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현실에 기반을 둔 사고를 하도록 이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신고전경제학은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대통령이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는 판에 완전고용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저자는 학교에서 배운 시장가격과 합리적 인간에 대한 환상을 깨고, 죄수의 딜레마, 과잉효과, 정보 불균형, 재난 불감증, 폰지 금융 등 교과서가 빼먹은 경제 이론, 그리고 신고전학파의 탁상공론을 현실로 끌어내린 심리학 등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경제학의 변천 혹은 왜곡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현실에 기반을 둔 사고를 하도록 이끈다. 외환위기 이후 IMF의 권고를 착실히 따르며 미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은 지금 이 책을 손에 들어야 할 때다.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유토피아 경제학
1 경고에 귀를 닫는 사회적 통념
2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3 하이에크의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스템
4 로잔의 완벽한 시장
5 지복(至福)의 수학
6 복음 전파자
7 동전 던지기와 금융
8 유토피아 경제학의 승리

2부 현실 경제학
9 아서 피구 vs. 존 케인즈
10 실패의 분류학
11 죄수의 딜레마와 합리적 비합리성
12 숨겨진 정보와 레몬 시장
13 케인즈의 미인 콘테스트
14 합리적 군중
15 경제의 심리적 보상
16 하이먼 민스키가 경고한 폰지 금융

3부 오늘의 경제학
17 머쓱해진 그린스펀
18 부동산의 유혹
19 서브프라임 사슬
20 알파벳 수프에서
21 경제는 한마디로 인센티브의 문제
22 “런던 브리지 이즈 폴링 다운”
23 우리 시대의 사회주의

작가 소개

존 캐서디

존 캐서디 (John Cassidy)

1963년 출생, 옥스퍼드 대학교와 뉴스쿨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선데이 타임스》, 《뉴욕 포스트》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현재 《뉴요커》 경제 담당 기자이며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닷콘: 인터넷 시대에 미국이 어떻게 정신과 돈을 잃고 있는가?(Dot.con:How America Lost Its Mind and Money in the Internet Era)』가 있다.

1987년 주가가 빠른 속도로 대폭락한 블랙먼데이에 존 캐서디는 월 스트리트의 비명을 기사화하려고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으로 월 스트리트의 바에 모인 화이트칼라 족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날 팔자 일색의 주식 거래량은 사상 최대였고, 수수료를 챙겨 먹고 사는 트레이더들은 가장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날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실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늘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잊지 못할 교훈을 얻는다.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는 십여 년 전에 죽은 하이먼 민스키의 책이 이베이에서 수백 달러에 거래되었다. 수십 년 전 민스키라는 무명의 경제학자가 경고한 금융 위기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유토피아 경제학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추진력인 자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경제학자이자 경제 전문 기자로서 존 캐서디는 주류 경제학이 놓친 경제 이론들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제 교과서가 무시했던 애덤 스미스의 또 다른 목소리, 아서 피구, 만델브로 등의 주장을 살피면서, 독자에게 현실 경제를 다른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참신한 틀을 제공해 준다. 『시장의 배반(How Markets Fail)』은 미국에서 출간 이후 큰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다. IMF 이후 금융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독자에게도 큰 통찰력을 전할 것이다.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등에서 근무했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로 국제협상에 참가했다. 이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초록정치연대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경제와 사회, 문화와 생태의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글쓰기와 강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음식국부론》《한미FTA 폭주를 멈춰라》《88만원 세대》《직선들의 대한민국》《조직의 재발견》《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생태요괴전》《생태페다고지》《디버블링》《나와 너의 사회과학》 등이 있다.

이경남 옮김

이경남

숭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뉴욕 《한국일보》 취재부 차장과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인트랜스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내가 다섯 살이 되면』, 『슬로푸드』, 『좋은 아침』,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아마티아 센, 살아 있는 인도』,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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