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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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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숲속 늙은 부부 앞에 나타난 학대당한 개 한 마리 그 개가 가르쳐 준 광대한 세계와 그 세계를 사랑하는 법에 관하여

원제 Un chien à ma table

클로디 윈징게르, 김미정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12월 15일

ISBN: 978-89-374-5476-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2x188 · 396쪽

가격: 18,000원

분야 외국 문학, 외국문학 단행본


책소개

2022년 페미나상 수상작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


목차

내 식탁 위의 개 11

 

옮긴이의 말 387


편집자 리뷰

2022년 페미나상 수상작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

 

숲속 늙은 부부 앞에 나타난 학대당한 개 한 마리

그 개가 가르쳐 준 광대한 세계와 그 세계를 사랑하는 법에 관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클로디 윈징게르, 이 진실한 80대 여성 작가가 우리를 ‘부아바니(추방당한 숲)’로 초대한다. 노부부 소피와 그리그가 3년째 살고 있는 그곳은 배제의 고통으로부터, 쇠락의 외로움과 소멸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도피처이자 실패하는 사원이며 시끄러운 정원이자 고립된 꿈의 장소다. 어느 날 학대받고 도망친 개 “예스”가 등장하면서 타자들 사이의 용인과 환대가 그들만의 생태계 밖으로 확장된다. 무수히 다른 존재들의 경계 넘기는 자주 뭉클하고 더없이 시적이다. 엘렌 식수가 말한 “성(性)이나 종(種)의 경계를 정의해야 하는 곤경” 너머, 클로디 원징게르는 빙퇴석의 속도로 우리를 책임감의 의미에서 “더 큰 존재”이므로 더 크게 사랑해야 할 자리로 옮겨 놓는다. 그러므로 그 자리의 비문(碑文)이자 마지막 문장,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는 이 파괴적인 세계를 향한 최선의 다짐이자 사랑일 것이다. 텅 빈 기원과 창조된 타자에서 시작하는 모든 쓰기가 그렇듯이.

_김지승(『술래 바꾸기』, 『짐승일기』 작가)

 

 

 

 

2022년 페미나상 수상작

숲속 늙은 부부 앞에 나타난 학대당한 개 한 마리

그 개가 가르쳐 준 광대한 세계와 그 세계를 사랑하는 법에 관하여

 

세상과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늙은 부부 앞에 어느 날 학대당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난 후 두 사람의 일상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감동적으로 그린 2022년 페미나상 수상작 『내 식탁 위의 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인 클로디 윈징게르는 올해 여든세 살의 작가이자 조형 예술가로 한국에는 처음 소개된다. 70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으나 그는 이미 1970년대부터 알자스 지방 보주산맥에 있는 방부아 숲에서의 삶을 이야기한 책들을 발표하고 또 이와 관련한 일련의 조형 예술 활동을 활발히 해 온,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예술가이다. 클로디 윈징게르는 히피 문화가 꽃피던 1965년 남편인 프랑시스 윈징게르와 소비 사회를 떠나 새로운 형태의 삶을 실험하고자 방부아 숲으로 떠나 60여 년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양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한편, 지의류를 염료로 만들어 양털을 염색하고 풀의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등 자연을 주제로 한 조형 예술 작품을 발표하고 글을 써 왔다. 첫 소설부터 발표한 거의 모든 소설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른 윈징게르는 열한 번째 소설인 『내 식탁 위의 개』로 2022년 마침내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철저하게 비주류적인 윈징게르의 문학이 시대의 요청에 의해 중심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우리를 더 크게 사랑해야 할 자리로 옮겨 놓는 소설

 

소설의 제목 ‘내 식탁 위의 개’는 클로디 윈징게르가 정신적 쌍생아로 여기는 호주의 소설가 재닛 프레임의 『내 책상 위의 천사』를 변주한 것으로, 우리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을, 그리고 우리 인간 중 가장 여린 존재들을 초대하는 환대의 부름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소설은 인간에게 유린당한 개 ‘예스’와 노부부 사이에 싹튼 놀랍고도 감동적인 우정을 통해 종의 경계 너머로 확장되는 사랑을 그리는 한편, 하루하루 급격히 노쇠해지는 80대 작가가 탐사하듯 살아가는 노년이라는 시간과 매해 새로운 충격을 주며 무너져 가는 기후 위기 시대의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섬세하기 그지없는 시적인 언어로 사유한다.

남성적 권위를 지닌 공쿠르상의 대안으로 여성 작가들에 의해 제정된 페미나상 수상작답게 『내 식탁 위의 개』는 주류에서 잘 다루지 않지만 지금 이곳의 문학이 이야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을 다룬다. 이 세계에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가.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곳에서 물러나 다른 삶을 살았던 작가가 한 마리 연약한 동물을 만나 또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세계의 지평을 넓혀 가는 이야기를 읽고 우리는 지금 발 딛고 선 현실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물론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계를 새롭게 상상하고, 바라건대 어떤 이들은 조금 다른 삶을 꿈꾸고 어떤 희망까지 발견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 김지승의 말을 빌리면 “엘렌 식수가 말한 ‘성(性)이나 종(種)의 경계를 정의해야 하는 곤경’ 너머, 클로디 원징게르는 빙퇴석의 속도로 우리를 책임감의 의미에서 “더 큰 존재”이므로 더 크게 사랑해야 할 자리로 옮겨 놓는다.” 12월 최고 기온과 최다 강수량이 연일 갱신되는 이 겨울, 그야말로 모두의 생존을 생각하게 되는 날들 속에서 『내 식탁 위의 개』는 더 크게 사랑해야 할 그 자리에서 “이 파괴적인 세계를 향한 최선의 다짐과 사랑”을 결심하게 한다. 그것 말고는 우리 앞의 미래라는 시간과 미래의 문학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

 

소설가인 ‘나’ 소피와 남편 그리그는 ‘추방당한 숲’이라는 뜻을 가진 ‘부아바니’에서 살고 있다. 서른 살이 채 되기 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험하고자 도시를 떠나 알자스 지방의 산속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60년이 되어 간다. 여든 줄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걷는 것조차 버거워져 그 좋아하던 하이킹도 호수 수영도 등산도 불가능해진 것은 물론, 얼마 전에는 크게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낮잠과 읽고 쓰는 것 외에는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그들 부부 앞에 어느 가을날 저녁, 목줄이 끊어진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인적 없는 산속이건만, 어디서 온 걸까? 짐승이 낯선 사람에게 제 배를 순순히 보여 주며 누웠을 때, 나의 머릿속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마지막 문장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 동물 학대범에게 유린당한 듯 생식기가 처참하게 찢긴 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찬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상처를 돌봐 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지만, 곧 개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튿날 나는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서점 행사를 위해 리옹으로 떠난다. 산속에 묻혀 살지만 이렇게 소설을 발표한 후 독자들과 만나면서 세상과의 연결을 놓지 않는다. 대안을 찾기 위해 산속에서의 삶을 택했지만, 한 해 한 해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 나는 여성이자 자연 속에서 사는 인간, 변방을 대변하는 작가로서 발언하기 위해 도시로 나왔다. 하지만 행사는 영 불만족스럽게 끝나고, 나는 파업 때문에 연착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그리그만이 아니다. 이틀 전 사라진 예스가 돌아와 있다. 예스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처럼 친밀감을 나타내고, 예스에게서 우리 인간과 대등한 태도를 발견한 나는 금세 그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예스 덕분에 나는 영영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한 육체적 능력을 조금씩 되찾고 삶의 경이를 새로이 발견한다. 그리그 역시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예스와 함께 책을 읽고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생의 황혼녘에 나타난 개 한 마리로 인해 단조롭고 무거웠던 노부부의 일상은 조금씩, 그러나 혁명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은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창밖 먼 산책로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의 실루엣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빠진 예스를 보고, 나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예스를 떼어 놓고 홀로, 노인에게는 모험이나 다름없는 탐사를 떠나기로 한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지극히 아름다운 이 소설의 마지막을 다 알려줄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이 가득 차오르게 될 거라는 건 말해두어야겠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그녀와 늙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난 인간애에 대한 눈물이자, 그녀가 사는 깊은 숲속 야생의 장엄함에 대한 눈물이다. _르 피가로

 

구술의, 자연의, 시의 언어로 클로디 윈징게르는 일견 사소해 보이는 주제를 인류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찬란한, 황혼의 소설을 써 냈다. _르 몽드

 

가히 ‘기쁨의 기술’이라고도 불릴 만한 책. 『내 식탁 위의 개』는 완벽한 선택이다. 이 소설은 가라앉고 있지만 동시에 곧 다시 태어날 세상에 대한 예리한 지각과 함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줄 많은 감정과 생각, 기억 그리고 발견이 담겨 있다. 클로디 윈징게르의 식탁에서 독자는 배불리 먹고 희망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_텔레라마

 

클로디 윈징게르는 노령의 시간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탐험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접근한다. 자유로운 야성의 작가라는 자화상을 거의 숨김없이 보여 주는 찬란한 소설. _뤼마니테

 

새, 양치류, 안개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에 관한, 장 지오노의 집에서 펼쳐질 법한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에 대해, 나이 듦에 대해, 기쁨에 대해, 환희에 대해, 그리고 분노에 대해 말하는 소설. _리르

 

 

■ 본문 중에서

 

고사리 잎 사이로 기어 오는 그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은 디기탈리스가 자라난 곳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끊긴 사슬 토막이 눈에 들어왔다. 도망자. 도망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상대를 알아채기 전 그쪽에서 먼저 나를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러는 찰나 그것은 사람 키만 한 고사리 뒤로 사라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결국 도망쳐 버렸다. 나는 상대의 움직임을 더 잘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옆길로 빠졌다가 이제 내 쪽으로 곧장 내려오고 있었다. 열 걸음 거리에서 속도를 늦추고 머뭇거리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꼬질꼬질한 회색 털 뭉치는 굶주린 채 기진맥진해 있었다. 커다란 밤색 눈동자가 시선을 피하지 않 고 눈 깊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왔지? (12쪽)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지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개는 ‘예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여기 있어, 예스. 나는 쪼그려 앉았고, 개의 목덜미 털에 손가락을 넣어 쓸어 주었다. 기다란 나무딸기 줄기와 자작나무 잎, 그리고 이끼로 범벅된 그 젖은 털을. 도망자는 나보다 앞서 비를 맞은 듯했다. 아까 비가 내린 서쪽에서 왔는지 물에 젖은 개 냄새가 났다. (15쪽)

 

그리그와 나, 우리 둘은 삼 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예전 집에서 가져와 사용하거나 보관 중인 물건은 거의 없었다. 그곳을 점거하고 있는 물건은 평생 비웃던 것들이었다. 비축 식량, 금속 통, 유리병, 뚜껑이 꼭 맞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깊숙한 벽의 선반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실제로 우리가 이곳 부아바니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숲에 사는 온갖 종류의 작은 설치 동물들이 우리 주방에 와서 먹을 것을 한 짐씩 싸 들고 갔다. 안경겨울잠쥐는 밤마다 와서 사탕수수로 만든 각설탕을 가져갔고, 들쥐들은 제 몸집만 한 호두를 한 알 한 알 가져가서 결국 바닥을 냈으며, 생쥐는 코코넛 밀크 팩에 구멍을 뚫어 훔쳐 먹었고, 다락에서 희미하게 바스락거리던 쥐들은 앞발에 빵을 움켜쥐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기들의 비밀 기지까지 끌고 갔다. 그런데 등줄쥐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코앞에서 등줄쥐를 마주치거나 툭 튀어나온 그 검고 반짝이는 눈을, 물방울처럼 세상의 모습이 거꾸로 비치는 그 눈을 얼핏이라도 본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20~21쪽)

 

예스는 자기에게 사슬을 채운 소아 성애자의 덫에 오랫동안 걸려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으리라. 이런, 주의하자. 소아 성애와 동물 성애는 같지 않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둘이 같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특별해서?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한 게 맞나?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둘은 같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 왜 그 작은 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등한 태도로 나를 쳐다보았는지에 관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대등함을 발견한 계기도, 그걸 나에게 상기시켜 준 계기도 바로 그 개의 눈이었다. 그런데 왜 그 개는 우리가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바로 떠났을까? 우리와 우정을 나눌 가능성을 허락해 줄 것만 같았는데, 무슨 이유로 거부했을까? 왜 도망쳐야만 했을까? (40~41쪽)

 

내가 인생의 어느 때보다 약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으니까. 끝까지 달리고 나서 얻은 결론이다. 무기를 반환하고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야말로 늙었어. 그래, 늙었어. 몸이 곤두박질친다. 더 이상 숲을 헤치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나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여전히 숲이다. 그곳에서만 나는 말할 수 있다. 숲에 대해 말하기.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피부 깊숙이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숲의 이야기, 솜털로 뒤덮인 어두운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 (50쪽)

 

그것은 잊힌 집, 우리가 예전에 살던 어떤 집보다 잊힌 집으로, 하얀 잔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非)역사적 순수의 원형이되 조각조각 파편화한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덕분에, 마지막 구원의 부재 안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 가득했다. 그것이 우리가 그곳에 그토록 매혹된 이유였다. 하지만 아래쪽에 펼쳐진 초원에 비하면 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내팽개친 충적세의 한 조각.

 

초원에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무성했다. 생기가 넘쳤다. 비현실적이었다. 방치된 곳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 그곳에 관한 계보 연구를 다 마친 후 마침내 그리그와 나는 그 집과 초원 63아르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곳에 붙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예감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 예감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리그는 스스로 추방당했다고 느꼈으며 그 사실을 줄곧 좋아했다. 심지어 그 문장의 의미를 음미하기까지 했다. 자신은 죄 많은 세상에서 내쫓긴 거라고 그는 말했다. 즉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바로잡은 셈이었다. 무구하고 추방당한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69~70쪽)

 

그럴 리 없어, 너는 비정상이 아니야. 네가 느끼는 감정은 너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야. 분명 다른 어딘가에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매가 있을 거야. 실제로 그런 존재가 한 명 있었다. 재닛 프레임이 『또 다른 여름을 향해』―그녀의 첫 소설이자 『내 책상 위의 천사』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 그녀가 생전에 출간을 원치 않았고 이를 열두 번도 더 확인했기에 그녀 사후에야 발표된 책―에 자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며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철새라고 쓰지 않았던 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충격과 나를 압도한 놀라움과 기쁨이 내 존재 깊은 곳에 있던 소외감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내게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가 사라지고, 불현듯 내가 사랑의 전율, 단 하나뿐인 진정한 사랑을 마주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가 기이하게도 가까이 느껴지는 일이 이따금 일어나기도 했다. 혹은 깊고 비밀스러우며 메아리로 가득한 우정이라는 작은 숲을 마주하거나. (80쪽)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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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 윈징게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조형 예술가. 1940년 프랑스 북동부 오랭(Haut-Rhin) 지방의 콜마르에서 태어났다. 1965년 배우자와 함께 알자스 지방의 보주산맥에 있는 방부아 숲속의 낡고 오래된 집으로 이주해 양을 기르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고 글을 쓰고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3년, 방부아 숲에서의 삶을 이야기한 『방부아, 초록의 삶(Bamboi, la vie verte)』을 출간하여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대 책과 책에 가해진 폭력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조형 예술가로 첫발을 내디뎠으며 이후 자연, 그중에서도 식물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70세의 나이로 『그녀들은 희망을 안고 살아갔다(Elles vivaient d’espoir)』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잔존(La Survivance)』(2012), 『새들의 언어(La Langue des oiseaux)』(2014), 『작열(L’Incandescente)』(2016) 등을 발표했으며, 거의 모든 작품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2019년 『위대한 사슴들(Les Grands Cerfs)』로 데상브르상을 받았다. 2022년 『내 식탁 위의 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메디치상, 르노도상 후보에 올랐고,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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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현재는 밤의서점을 운영하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인간의 대지』, 『파리의 심리학 카페』, 『어린 왕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