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음악, 군사, 역법,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고대의 모든 제도를 망라한중국 최초의 정사正史,동양 역사학의 전범典範

사기 서

원제 史記書

사마천 | 옮김 김원중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1년 9월 23일 | ISBN 978-89-374-2684-1 [절판]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6x201 · 396쪽 | 가격 22,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
고대의 모든 제도를 망라한
중국 최초의 정사正史,
동양 역사학의 전범典範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의 역작 『사기』가 드디어 완역, 출간되었다. 『사기 본기』, 『사기 세가』, 『사기 열전』 등 『사기』 번역에 매진해 온 김원중 교수의 번역으로 『사기 서』와 『사기 표』가 민음사에서 출간됨으로써, 4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대작이 마무리되었다. 특히 『사기 표』의 완역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업으로서, 김원중 교수의 20년 노고의 결실이다.
『사기 서』는 『사기』 130편 중 예, 악, 천문, 치수 등 모든 사회 제도와 문물을 설명한 8편을 한글세대에 맞춰 현대적으로 옮긴 것이다. 『사기 서』는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에 관한 이론 및 역사를 정리하여 당시 사회의 구제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기에는 사마천이 중요시한 무위의 정치, 즉 국가는 아무 일 없이 안녕하며 백성은 일을 즐거워하며 편안히 살아가게 하는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본기」와 「세가」, 「열전」에서 드러난 사마천의 날카로운 역사적 통찰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중요한 자료인 「보임소경서」를 권말에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편집자 리뷰

「서」란 무엇인가
기전체의 효시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기」, 「세가」, 「열전」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개개인의 활동에서 비롯된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한 것이라면, 「서」는 사회 제도에 주목하여 이상과 현실, 변혁과 민생 문제 등을 보여 주는 전문적 논술이다. 즉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등과 같은 전장(典章)을 기록하고 있어 문화사나 제도사의 성격을 갖는다. 「서」가 여덟 편인 것에는 육관(六官)들이 주관하는 여덟 방면의 정무 혹은 『주역』의 팔괘에서 착안하여 삼라만상의 제 문제를 여덟 가지로 압축해 그려 내고자 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서」 여덟 편은 각기 두 편씩 짝을 이루는데, 첫 부분인 「예서」와 「악서」는 사마천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 제도와 질서 체계를 다루었고, 「율서」와 「역서」는 전쟁을 둘러싼 정치 현실을 거론했으며, 「천관서」와 「봉선서」는 변화와 개혁의 문제를 짚어 냈고, 「하거서」와 「평준서」는 치수와 경제라는 민생 문제를 다루었다.
무위의 정치관을 담다
「서」 여덟 편에 드러나는 주도적 사상은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취지와도 연결된다. 사마천의 사상은 대체로 황로 도가 사상에 속하는데, 노자의 도(道)를 발전시킨 사마천의 도(道)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관된다. 사마천은 한나라 초기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데에는 황로 도가 사상이 유리하다고 보았으며, 「서」를 통해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또한 『사기』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각 제도의 역사와 속성을 설명하면서 당대의 현실, 즉 한 무제 통치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맨 처음에 둔 「예서」에서는 나라를 다스리고 명분을 분별하는 궁극의 도로서 예(禮)를 다루었고, 뒤이은 「악서」에서는 바른 교화를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서 악(樂)을 설명했다. 예는 사람의 겉모습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악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인성에 부합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 번째 「율서」는 고대 군사학을 아우르고 있는데,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명분 없는 전쟁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길이라는 뜻을 담아 한 무제의 무치(武治)를 비판한다. 그다음 편인 「역서」는 농사와 군사 작전에 두루 운용되는 역법을 음양과 오행의 운행 원칙에 따라 풀어 설명했다. 여기서도 사마천은 역법이 도덕과 밀접함을 밝히면서 한 무제가 개인의 사욕을 위해 민생은 등한시한 채 역법 개혁을 시도한 것을 비판한다. 『사기』 전체에서 가장 긴 편에 속하는 「천관서」는 천문의 역사와 천체의 움직임을 읽는 법을 보여 준다. 이 편 또한 천상에서 나타나는 조짐으로 인간의 문제를 예견하고 이를 덕치와 연결시키면서 한 무제의 무치에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국가의 제사를 다룬 「봉선서」에서는 한 무제의 무분별한 봉선을 모두 나열하면서 좀 더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하거서」와 「평준서」는 백성의 생활과 밀접한 치수 사업과 경제 정책에 대해 설명한다. 「하거서」에서는 대대로 국가의 중대한 사안이었던 황하를 다스리는 문제를 주로 다루고, 「평준서」에서는 권력화된 거대 상인의 등장과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등장한 매관매직, 화폐 개혁, 염철 전매 등을 언급하면서 역시 한 무제의 그릇된 통치를 빗대어 보여 준다.
바래지 않는 냉철한 현실 인식
사마천이 「서」에서 각 분야의 제도사를 통해 드러낸 비판적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樂)은 [사람들을 ] 동화하게 하며, 예는 [사람들을] 구별 짓게 한다. 동화하면 서로 친하게 되며, 구별 지으면 서로 공경한다. 악이 지나치면 [사람들로 하여금] 방종하게 하며, 예가 지나치면 [사람들로 하여금] 소원해지게 한다. 감정을 화합하게 하고 외적인 모습을 절제하게 하는 것이 예와 악의 일이다.”(「악서」)와 같은 구절에서 보이듯이 「예서」와 「악서」에는 현대에도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만한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직접적인 민생 문제를 다룬 「하거서」와 「평준서」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치수와 경제 안정 문제에 대한 사마천의 식견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평준서」에서는 물가 안정 정책을 뜻하는 ‘평준’이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상업 또한 중요한 경제의 한 축으로 인식한 사마천의 진보적 면모가 드러난다.
치욕 속에서 탄생한 『사기』
부록 「보임소경서」는 사마천이 임안(任安)에게 보낸 답신으로, 「보임안서(報任安書)」라고도 하는데 본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에 있는 글을 옮겨 와 함께 수록한 것이다. 『사기』 집필 배경이 잘 드러나 있어 이 편지를 통해 『사기』 집필 연대를 추정하기도 한다. 이 편지는 친구 임안이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자 차일피일 미뤘던 답장을 쓴 것인데,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이후 겪어야 했던 아픔과 그의 내면에 쌓인 울분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사형을 며칠 앞둔 임안의 상황이 자신의 억울한 처지와 비슷하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그간의 역경을 구구절절하게 쏟아 낸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궁형을 받게 된 사건의 시말과 궁형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이러한 치욕을 보상받을 대작을 남기려는 발분의 의지로 『사기』를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고통을 견디면서 더러운 치욕 속에 구차하게 살면서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제 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이 있어 비겁하게 세상에서 없어지게 될 경우에 문채(文彩)가 후세에 다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중략) 초고가 다 완성되기 전에 이런 화를 당했으니, 이 일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으므로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그것을 명산(名山)에 감추어 두었다가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성읍과 큰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제가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 비록 만 번 도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할 수 있겠습니까? ― 「보임소경서」 중에서

목차

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1 예서(禮書)
2 악서(樂書)
3 율서(律書)
4 역서(曆書)
5 천관서(天官書)
6 봉선서(封禪書)
7 하거서(河渠書)
8 평준서(平準書)
부록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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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사마천

기원전 145년?~기원전 90년?. 자(字)는 자장(子長)이며 섬서성 용문(龍門) 출신으로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한 무제 때 태사령(太史令)이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 장안에 와서 동중서(董仲舒)와 공안국(孔安國)에게 학문을 배웠다. 스무 살 때 여행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으며 돌아온 후에는 낭중(郎中)에 올랐다.

기원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그에게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108년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중했으며,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했다. 기원전 104년 정식으로 『사기』 집필을 시작했다.

기원전 99년 이릉(李陵)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사마천은 홀로 무제 앞에 나아가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옥에 갇힌 그에게 세 가지 형벌 중에 하나를 고를 권리가 주어졌다. 첫째 법에 따라 주살될 것, 둘째 돈 50만 전을 내고 죽음을 면할 것, 셋째 궁형을 감수할 것이었다. 사마천은 두 번째 방법을 취하고 싶었으나 귀족이 아니었던 그가 그런 거액을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마지막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기원전 93년 사마천은 마침내 다시 무제의 곁에 있게 되었다. 이때는 『사기』의 집필이 대체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지 대략 20년 만이었다.

김원중 옮김

성균관대학교 중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 중앙연구원과 중국 문철연구소 방문학자와 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 중국 푸단 대학 중문과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건양대 중문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이며, 중국인문학회·한중인문학회 부회장,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도 겸하고 있다. 동양의 고전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섬세히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고전 한문의 응축미를 담아내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말의 결을 살려 원전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번역으로 정평 나 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최고의 번역서인 『사기 열전』을 비롯해 개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사기』 전체를 완역했으며, 그 외에도 『삼국유사』, 『논어』, 『맹자』, 『명심보감』, 『손자병법』, 『한비자』, 『정관정요』, 『정사 삼국지』, 『채근담』, 『당시』, 『송시』 등의 고전을 번역했다. 또한 『한마디의 인문학, 고사성어 사전』, 『한문 해석사전』(편저), 『중국 문화사』, 『중국 문학 이론의 세계』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50여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김원중"의 다른 책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3년 6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3년 6월 28일

ISBN 978-89-374-8778-1 | 가격 15,400원

무위의 정치관을 담다

바래지 않는 냉철한 현실 인식

『사기 서』는 『사기』 130편 중 예, 악, 천문, 치수 등 모든 사회 제도와 문물을 설명한 8편을 한글세대에 맞춰 현대적으로 옮긴 것이다. 『사기 서』는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에 관한 이론 및 역사를 정리하여 당시 사회의 구제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기에는 사마천이 중요시한 무위의 정치, 즉 국가는 아무 일 없이 안녕하며 백성은 일을 즐거워하며 편안히 살아가게 하는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본기」와 「세가」, 「열전」에서 드러난 사마천의 날카로운 역사적 통찰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중요한 자료인 「보임소경서」를 권말에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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