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정치 중심지 북경과 경제 중심지 강남을 이어 거대한 중국을 강력한 국가로 통합한 핵심 요소는 세계 최대의 내륙 수상 운송 네트워크, 대운하였다

대운하와 중국 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

조영헌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1년 5월 30일 | ISBN 978-89-374-8366-0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616쪽 | 가격 38,000원

책소개

정치 중심지 북경과 경제 중심지 강남을 이어
거대한 중국을 강력한 국가로 통합한 핵심 요소는
세계 최대의 내륙 수상 운송 네트워크, 대운하였다
 
 
중국 최고 상인 집단인 휘주 상인의 성장 과정과 대운하라는 유통로가 끼친 영향을 다각도로 해석한 『대운하와 중국 상인―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바다로의 진출을 가장 억제하던 중국의 명·청 시대, 이 거대한 제국의 내부에서 수도 북경과 경제·문화의 중심지 강남을 잇는 유일한 국가적 물류 통로는 장장 1600킬로미터의 물길 대운하였다. 이 책은 대운하가 국가적 물류의 핵심 루트로 자리매김하는 과정과, 이러한 대운하를 둘러싼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여러 요소에 다양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여 중국의 양대 상인 집단 중 하나로 성장한 엘리트 휘주 상인을 다각도로 조명한 역저이다.

편집자 리뷰

중국 최고 상인에게 성공의 노하우를 배운다
 
오늘날 중국의 내로라 하는 재계의 CEO들이 존경하고 모델로 삼으려는 인물 호설암(胡雪巖)은 명·청 시대(1368~1911) 전 중국을 호령하던 최대 상인 집단인 휘주 상인 출신이었다. 휘주 상인은 안휘성 휘주부 출신의 상인 집단으로 휘주부는 안휘성의 8개 부 중 하나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 출신인 휘주 상인이 경제 최선진 지역인 강남에 진출하여 전국적 활동을 펼치며 산서 상인과 경쟁하는 중국 최고 상인 집단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휘주 상인에게 대운하는 단순한 상품 유통로가 아니었다. 회·양 지역에 이주하여 지역 엘리트로 성장케 하는 ‘생명수’였던 것이다. 반면 명·청 정부에게는 그 유지 보수를 위해 끊임없이 재정과 관심을 투자해야 하는 ‘골칫거리’였다. 바다로의 운송을 금지하는 해금 정책으로 인해 대운하는 강남이라는 경제 중심지에서 수도 북경으로 물자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을 통해 대운하라는 유통로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와, 대운하 운영의 장단점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북경 천도와 대운하의 재개통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규명한다. 명초 영락제(永樂帝)의 북경 천도는 원-명-청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일국가의 연속성을 ‘북경 수도론’이라는 틀로 묶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정치 중심지와 경제 중심지의 현저한 분리를 야기하여 결국 강남과 북경을 잇는 대운하가 없이는 제국이 유지되기 어려운 사회ㆍ경제적 구조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시대성을 규명하기 위해 수도론과 연동된 대운하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한 것이 1장이다.
북경이 수도로 정착된 이후 대운하는 긴장 관계를 유발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대운하가 막힐 경우 북경은 식량 조달 문제로 늘 비상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실성 있는 대안은 오직 해운의 개통이었다. 하지만 명조는 대운하를 개통한 직후 바다를 이용하는 조량 운송을 금지해 버렸다. 1572년에 해운은 다시 시도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실시된 조량(漕糧) 해운은 2년 만에 ‘요절’했다. 조량 해운의 ‘요절’ 사건을 복원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ㆍ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히고 아울러 해금 정책이 가진 의미를 밝힌 것이 2장이다.
3장은 외국인들의 견문록에서 대운하 관련 기록을 뽑은 것이다. 이러한 견문록에는 대운하를 경유하는 과정에서 보고 느낀 외국인의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 있어 자국인의 시각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대운하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2부의 4장은 이 책의 분석 대상인 회·양 지역에 대한 소개이다. 북경이 수도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회·양 지역 사회의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이러한 여건이 어떻게 휘주 상인을 비롯한 여러 상인들을 흡입하는 유인 요소가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특히 복잡하게 얽힌 하천과 운하망이 특징인 회·양 지역은 삼대정(三大政)이라 불리는 하공(河工), 조운(漕運), 염정(鹽政)이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삼대정과 관련된 회·양 지역의 특수성은 곧 그 지역에 진출한 상인들의 존재 양태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배경이 되었다.
5장과 6장은 객상으로서 대외 진출을 시작하는 휘주 상인의 존재 양태와 그들이 회․양 지역에 이주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염운법의 변화와 왕조 교체라는 중요 변수에 대처해 나가면서 다른 상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여 ‘체류자(sojourner)’에서 ‘정착자(settler)’로 변모하는 과정과 이후 회․양 지역의 대표적인 상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단계를 설명했다.
 
 
∙중국 역사에서 대운하는 과연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3부에서는 명말․청초의 17세기를 중심으로 운하 도시의 사회․경제적 문제점에 대한 휘상의 대응 방식을 서술했다. 운하 도시는 무엇보다 유통로인 물길의 유지와 보수, 그리고 이와 관련한 재원 마련이 중요했다.
7장에서는 회․양 지역사회의 핵심 사안인 하공 문제에 대한 휘상의 대응 방식을 검토했다. 여기서는 주로 강희제(康熙帝)가 대운하를 따라 움직였던 남순(南巡)의 목적 및 그 수행 방식에 주목했다. 지역사회에서 휘주 상인의 위상이 상승하는 데 남순과 대운하가 대단히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운하와 하공에 대한 중시는 종교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의 끊임없는 발생은 종종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연결되곤 했기 때문이다. 대운하 연변에 존재하는 각종 종교 시설, 즉 사묘(祠廟)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좌절과 극복의 궤적을 잘 보여 준다. 8장은 휘상이 운하 도시에 건립된 수신(水神) 사묘에 개입하는 과정과 그 의도를 검토했다. 종교 시설을 통해 이윤 획득을 추구하는 휘주 상인이 종교 시설 중건을 통해 기대하고 실제 획득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명말․청초는 도시에 선당(善堂)이나 선회(善會)라고 불리는 자선 기관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자선 기관은 기존의 관영 사회 구제 기관과는 달리 민간에서의 자발적인 발기와 참여로 이루어졌다. 9장에서는 운하 도시에 선당․선회가 출현하는 과정 및 휘상의 역할을 검토했다. 특히 양주의 육영당(育嬰堂)과 진강의 구생회(救生會)가 대운하를 이용한 인적 교류의 결과로 탄생한 것인데, 이 과정에 적극 개입했던 휘주 상인의 의도를 탐색했다. 마지막으로 육영당과 구생회의 운영에 함께 참여했던 휘주 상인들 사이에 존재하던 ‘동지(同志)’ 의식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그들의 사회적 역할 및 위상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밝혔다.
 
이와 같이 이 책은 휘주 상인의 성장 과정에 대운하라는 유통로가 끼친 영향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첫째, 휘주 상인이 16세기에 회․양 지역으로 진출하고, 17세기 왕조 교체기에 급성장하여, 18세기까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위상을 제고했던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파악했다. 둘째, 회․양 지역에 정착한 휘주 상인이 막강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을 대운하가 관통하는 회․양 지역의 사회․경제적인 여건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했다. 셋째,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청말에 이르면 ‘신상(紳商)’으로까지 불리던, 장기간에 걸친 상인의 사회적 위상의 제고 및 그러한 상인 위상의 계층적 성격을 설명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휘주 상인의 성장에 관한 세 가지 해석 | 화려한 번영 속에 숨겨진 쇠락의 조짐 | 19세기의 두 가지 현상—회·양 지역 경제 쇠퇴와 대운하의 단절 | 대운하와 관련된 공간과 시간 | 이 책의 구성
 
1부 수도 북경과 대운하
 
1장 북경 천도와 대운하
1 북경의 입지 조건: “유험가의(有險可依)”와 “유수통리(有水通利)”
남경을 선택한 주원장 | 영락제의 쿠데타와 북경 천도 | 왕종목의 북경수도론 | “유험가의” | “유수통리”
2 불안한 정도(定都)
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 순조롭지 않은 정착 과정 | “유험가의”의 양면성 | “유수통리”에 대한 강남인들의 불만
3 대운하의 역할과 한계
북방개발론 | 바닷길과 대운하 | 대운하의 물동량 증가 | 병목현상과 우선권의 문제
 
2장 1572~1573년 조량 해운의 ‘요절’과 그 의미
1 융(隆)․만(萬) 교체기 조량 해운의 시도와 단절
1572년의 성공적인 조량 해운 | 1573년의 사고와 “해운 파기”
2. 정국 변화와 조운 논쟁
고공과 장거정 | 선박 제조의 부담 | 도덕적 결함
3 조운을 둘러싼 명조 관료제
불확실한 책임 소재 | 조운 관료 | 하공 관료 | 조운과 하공의 입장 차이
4 해금 정책
명대 해금 정책의 5단계 | 1572~1573년의 세계사적 의미 | 바다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 해금의 논리
 
3장 견문록을 통해 본 대운하
1 대운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견문록
마르코 폴로, 오도릭, 이븐 바투타 | 최부와 마테오 리치 | 밀레스쿠, 호른과 살단하, 매카트니, 최두찬 111
2 대운하의 노정(路程)과 시설
강남 운하 | 회양 운하 | 사․가 운하 | 회통하 | 영제거와 통혜하 | 대운하의 수리 시설
3 대운하의 운영과 물자 유통
이용상의 운선순위 | 조공단과 황족의 대치 | 환관의 특권 | 조운선의 ‘편법’
4 대운하 연변의 도시 풍경과 항운
항주, 소주, 상주 | 의진과 과주 | 양주와 회안 | 제녕과 임청 | 덕주와 천진 | 항운의 풍경들
 
2부 휘주 상인의 회․양 지역 진출과 성장
 
4장 회․양 지역과 삼대정
1 회․양 지역
수문학적 특징 | 황하의 침입 | 준설 작업 | 배수의 문제
2 삼대정
조운과 하공 | 염정
 
5장 소설을 통해 본 휘주 상인의 대외 진출과 당면 과제
1 휘주 상인의 대외 진출
15세기 중엽의 상업 풍조 | 소설 속의 휘주 상인 | 취급 품목과 업종 | 정보 입수와 시세 차익 | 돈적 | 휘주 상인에 대한 평가
2 유통업의 당면 문제
(1) 자연재해 200
수로의 “풍파지환” | 택일 | 수신 제사
(2) 도적, 무뢰, 아행 205
도적 | 무뢰 | 아행
(3) 세관의 관리
세관 | 서리 | 객상의 다섯 가지 대응 방식
 
6장 회․양 지역의 도시 발전과 휘주 상인
1 도시 발전과 유동 인구
수․당 시대의 양주 | 명․청 시대의 도시 인구 | 양주의 도시 구조 | 회안의 도시 구조 | 도시 발전과 대운하 | 유동 인구 | 외래 상인들의 사치 풍조
2 염운법의 변화와 휘주 상인의 성장
물자 유통과 시세 차익에 대한 정보 | 개중법 | 운사납은제 | 염상의 분업화와 ‘수상’ | ‘내상’으로의 정착 | 광세사 노보의 파견 | 강운법의 등장
3 명․청 교체와 휘주 상인
『양주십일기』 | 휘주 상인의 복귀 | 도시 사회의 재건 | 삼대정의 정상화 | 군향 조달
4 휘주 상인에서 양주 상인으로
총상 | 서원 | 상적 | 문화 사업 | 양주 문화의 활력
 
3부 운하 도시의 현안과 휘주 상인의 대응
 
7장 강희제와 휘주 상인의 만남―남순의 사회 경제사적 의미
1 명말․청초 흡현 잠산도 정씨의 회․양 이주
잠산도 정씨 가계도 | 회안부 안동현 | 정조선의 성공 | 입적의 의미 | 회안의 하하진
2 청초 회․양 지역의 수해와 남순
1665년 안동 수해 | 청조의 대응 방식 | 남순 | 남순의 목적 | 서상의 출현
3 강희 남순과 휘주 상인의 대응
재원 마련의 어려움 | 2차 남순에서의 첫 만남 | 정증 | 3차 남순과 망도하 준설 | ‘파격적인’ 보상의 배후 | 강희제와의 만남 그 이후
 
8장 수신 사묘와 휘주 상인
1 운하 도시의 수신 사묘
수신 사묘의 기능 | 회․양 지역의 수신 사묘
2. 수신 사묘의 확산과 관부의 개입
마조 신앙 | 해신에서 하신으로 | 금용사대왕 신앙 | 황하신과 운하신
3. 휘주 상인의 사묘 중건과 그 의미
(1) 양주의 천비궁(天妃宮)
정유용의 천비궁 중건 | 만안궁에서 광릉역으로 | 대운하의 말뚝 제거 사업 | 정유용의 기대심리
(2) 진강의 금룡사대왕묘
금룡사대왕묘의 건립 주체 | 사묘와 동향 회관 | “휘주인의 복”
 
9장 선당․선회와 휘주 상인
1 양주 육영당과 대운하
육영당의 건립과 휘주 상인 | 왜 양주인가 | “양주수마”와 “남북 왕래의 요충지” | 육영당의 지리적 분포
2 진강 구생회와 구생선
민간결사 | 양자강 도강의 의미 | 구생회의 성립과 운영 | 강희 남순과 구생회 | 구생회 성립 이전의 구생선
3 운하 도시의 공익사업과 휘주 상인 네트워크
오자량의 사회 참여와 수로 교통 | 민세장의 사회 참여와 수로 교통 | 휘주 상인 ‘네트워크’와 ‘동지’ | 지역 사회의 명망
 
결론
휘주 상인의 성쇠를 염업의 성패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 | 휘주 상인의 인상적인 역할과 한계
 
참고문헌
출전 일람
그림·지도·표 일람표
중국어 요약 및 요약문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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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조영헌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방문 학자(2003~2004년)와 하버드-옌칭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2004~2006년)을 거쳐, 2006년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논문 「대운하와 휘주상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이다.
15년간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을 주선해 왔으며, 2021년부터 고려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북아시아 민족 및 지역사 연구회’를 구성하여 공동 연구 중이다. 중국 근세 시대에 대운하에서 활동했던 상인의 흥망성쇠 및 북경 수도론이 주된 연구 주제이고, 앞으로 동아시아의 해양사와 대륙사를 겸비하는 한반도의 역사 관점을 세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대운하와 중국 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와 『옐로우 퍼시픽: 다중적 근대성과 동아시아』(공저), 『주제로 보는 조선시대 한중관계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과 『바다에서 본 역사: 개방, 경합, 공생 — 동아시아 700년의 문명 교류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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