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유형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1년 3월 18일 | ISBN 978-89-374-0790-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4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알록달록 유토피아 ‘랜드 하나리’로의 초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레인보 몬스터’
그녀의 시 앞에서 우리의 심장이 새로운 박자로 두근거린다

2000년대 중반 한국 문단을 뜨겁게 달군 미래파의 선두에 섰던 유형진 시인은 2005년 첫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으로 시단에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몸을 낮게 숨기고 은폐된 장막 뒤에서 자본과 현실, 부르주아 문명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시인의 저격”(문학평론가 김용희)이라는 평가를 받은 첫 시집을 통해, 아스팔트조차 밟지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모니터 킨트’들을 대변했던 그녀는, 이번 시집에서 더한층 심화된 동화적 상상력을 보여 주며, 알록달록한 유토피아 ‘랜드 하나리’로 대변되는 동화적 세계로 ‘랜드 킨트(놀이공원 세대)’들을 초대한다. 천진난만한 상상력과 리듬, 생기 넘치는 시어들로 가득한 ‘랜드 하나리’는, 타성과 관성에 젖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평면적인 일상을 신나는 놀이공원처럼 입체적인 세계로 변화시킨다. 시인이 언어로 지은 놀이공원에서는 일상의 지루함이 증발하고, 사랑과 실연의 상처들이 치유된다. 일상의 놀이화는 같은 세대 시인들에게 공통되는 특징인데, 유형진의 시는 말놀이 자체에 집중하는 다른 많은 시인들과 달리, 재미없고 시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놀이공원 속으로 슬쩍 밀어 넣음으로써 자신만의 즐거운 유토피아를 구축하려는, 그래서 무채색의 현실에 알록달록 무지개 색을 입히는 고유한 움직임을 보여 준다. 이를 소설가 윤성희는 “평면인 세계가 입체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문학평론가 허윤진은 “레인보 몬스터가 시간의 유실물 보관소에서 찾아 준 어린 첫사랑”이라고 말했다. 모험이 붕괴된 세계에 모험을 다시 돌려주려는, 그래서 더 격렬하게 요동치는 언어의 비선형적 실험은 유형진의 시에 그 고유한 영토를 확보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형진의 시에서 한국 시의 젊은 모색이 만들어 낸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세상의 모든 소심인(小心人)들을 위한 위로의 레시피

“다이알 비누로 목욕시킨 마론 인형의 냄새같이”, “버블버블랜드의 추잉”, “랜드 하나리에서 오리들의 갸우뚱 피겨스케이팅 대회”, “하늘 가장자리 나라 구름 퀴즈”, “팽이의 마음” 등 이 시집에 실린 제목만 보면 마치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시는 이처럼 천진난만하고 환상적인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오은 시인은 그녀의 이런 동화적 세계를 일컬어, “그녀에게 동화란 단순히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닌, 모험을 독려하는 하나의 심리적 기제이다. 수많은 동화적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그녀의 세계는 동화를 읽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써 내려가면서 진행되고 마침내 완성된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세계는 결코 동화 속에 갇히지 않는다. 동화를 변형하고 급기야 확장시킨다. 그녀가 창조한 동화적 공간을 파고들수록,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더 작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시집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은 사랑과 실연에 관한 시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당신’과 ‘너’를 향해 화자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편지를 쓰고, 달려간다. 이 사랑의 대상 앞에서 화자는 무력하고 또 무력하다. 사랑을 잃는 순간, 사랑하는 존재가 당신을 외면하는 순간, 당신은 그야말로 투명 인간이 된 듯 존재를 부정당한다. 사랑 앞에만 서면 그녀는 한없이 작아진다. “당신을 생각하면 네 개에서 세 개가 되”고, “당신을 생각하면 또 두 개에서 한 개가” 된다. 그러다 “당신을 생각하면 이제 영”이 되어 버린다. 이별하고 상처받고 깨어지면서도 그녀가 사랑을 하는 방식은 바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녀의 시 속에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상처와 두려움의 기억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결코 지리멸렬한 하소연처럼 들리지 않고 경쾌한 어조를 유지한다. 그녀는 이렇게 때로는 비극적인 수사학을, 때로는 희극적인 수사학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신비로운 빛깔을 보여 준다.
한편, 그녀의 시는 마치 가전체(假傳體) 문학을 연상시킬 만큼, 여성으로서 겪은 구체적인 경험들이 시인의 독특한 미학을 구성한다. 그녀의 시는 활유법과 의인법이 두드러지는 동화적인 면모와 함께,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상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진실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형상화한 고전적인 내방가사를 연상시키는 면모도 지니고 있다.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린넨 버드 로빈 코코아 그리고, 때 전 사탕 양말」의 “코바늘로 뜬 눈의 결정 모양 도일리처럼/ 한 코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코를 잃어야 완성되는 그 마음의 가장자리들” 같은 구절은 사소함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을 잘 보여 준다.
시인의 눈길이 닿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살아난다. 이 시집에서는 유난히 어떤 대상을 부르는 돈호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그녀가 불러온 대상들은 그녀의 세계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우리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웃고 울면서 세상의 신비에 전율했던 아이의 시간을 다시 체험하게 된다.

나 어릴 때 창문 아래 살던 작은 나무야
나는 오늘 너를 생각해
너는 서쪽 창가에 언제나 있었지
하늘이 조금씩 붉어질 때 너는
내가 어린 나무란 게 참 좋아, 하고 말했지
난 그 말을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어
―「어린 나무」부분

「랜드 하나리에서 오리들의 갸우뚱 피겨스케이팅 대회―4/5」 는 시인의 유토피아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누군가에게 구어체로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으로 쓰인 이 시에서 첫 번째 주인공은 오리이다. 오리, 풍선, 하늘, 우주처럼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단어들은 시인의 손길을 거쳐 다채로운 동화적 풍경을 이룬다. 우리가 그저 흔히 오리, 라는 일반명사로 부르는 존재들에게 그녀는 “넘어지는”, “자빠지는”, “놀란”, “화난”, “웃는”, “우는” 등의 수식어를 붙여 줌으로써 각각의 오리들이 지닌 세밀한 차이를 존중해 준다. 이처럼 그녀는 소심인(小心人)들에게 ‘대낮의 사람’, ‘철심 교정기의 소녀’, ‘실로폰 양과 데칼코마니 군’ 등의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그녀는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베로니카의 손수건과 그노시스의 손수건」에서처럼, 상처받은 이들의 피땀과 눈물을, 때로는 “베로니카의 손수건”으로, 때로는 “그노시스의 손수건”으로 닦아 준다. 존재를 함께 잃어 가는 것, 그래서 함께 영(0)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꿈꾸는 사랑, 유토피아가 아닐까.

흐름은 없었고 반 바퀴만 돌면 모두 제자리일 것 같은데 꼭 한 바퀴를 다 돌아 어떤 날로 간다.

어떤 날. 목련이 더러운 꽃잎을 떨어트리며 자살하는 봄밤.

텅 빈 곳이 너무 많아 뭉텅뭉텅 잘렸고 밑둥치엔 잘린 것들이 흩어진다. 바람이 불어도 흩어진 것들은 날아가지 못하고.

너는 딸기 맛 솜사탕이 되어 봄 하늘을 하염없이 날고 싶다고 했지. 유치하고 지긋지긋한 것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계속 피할 수 없는 물음표만 들고선 원치 않는 생을 따라 없던 미로를 만들어 헤맨다.

카니발이 끝난 놀이동산의 회전목마가 끄덕끄덕 졸고 있는 새벽, 잎도 나지 않은 나뭇가지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는 꽃들의 간절함이 속수무책일 때.

바람이 지나가고 화르륵 일어서는.
―「봄밤―썩어 가는 목련 꽃잎의 경우」 전문

■ 작품 해설에서

유형진은 관성과 타성에 젖은 시시한 우리 어른들을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같은 자신의 유토피아, “랜드 하나리”로 초대한다. 자신이 쓸모없고 투명하게 느껴진다면 그녀의 유토피아로 달려가 보자. 그녀가 우리 각자의 심장에 재미있는 별명 같은 존재의 이름표를 달아 줄 테니. 동화적인 세계에서 무지개 색으로 되살아나는 시간과 존재 앞에서 우리의 심장은 새로운 박자로 두근거린다. 유형진의 시는 사랑을 잃어 본 적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색색의 알약. 그녀, 레인보 몬스터가 시간의 유실물 보관소에서 찾아 준 어린 첫사랑과 춤을 추자, 샤이니 샤이니 퀵 퀵, 히치 콕, 히치 콕, 히치 히치 콕, 콕! — 허윤진(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유형진의 시는 독자를 바짝 긴장시킨다. 이 암호, ‘곤충의 말’을 어떻게 해야 알아들을 수 있을까. 단초를 잡으려 음향 하나하나, 빛 하나하나를 쫓아가게 한다. 그 곤충의 말은 유형진의 환상 특급. 독자를 어디로든, 아니 어디도 아닌 곳으로, 유토피아로 안내한다. 유형진의 유토피아는 행복이 만발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유형진이며 동시에 아무도 아닌 누군가가 서성이는, “한 코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코를 잃어야 완성되는 그 마음의 가장자리들”.
한편, 유형진의 시는 즐겁다. 세상에 시의 재료가 될 수 없는 건 없구나! 시의 레시피는 끝이 없구나! 그 난만한 이미지와 리듬, 생기 있는 말놀이! 유형진의 말놀이는, 그 그림-음악은, 무엇보다 주술이기도 하다. — 황인숙(시인)

“어두운 방의 하얀 테두리를 좋아”한 소녀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빨간 달리아 꽃을 머리에 이고 우물 속으로 떨어지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치 앨리스가 느꼈을 그런) 현기증을 느끼며 첫 번째 시집을 덮었던 나는 마침내 도착한 우물 밑의 세계를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두 번째 시집을 펼친다. 그 세계는 “삶은 계란 껍질 같은 포장도로”가 있고, “발이 999개인 버스”가 있다. 시간이 멈춘 듯 “단풍조차 늙지 않”는 그 세계에서 나는 자주 “하하하” 웃는다. 웃음이 유일한 무기인 세상이므로. 하하하 웃다 고개를 들어 보면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이 동시에 보인다. “오리들이 넘어지다 쿡쿡, 찍은 스케이트 자국”이 별이 되어 반짝이는 것도 보인다. 나는 이 세계에서, 은유의 진폭을 배우고, 직유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고, 서정과 동화의 세계가 품고 있는 잔인함에 놀라 혀를 깨문다. 평면인 세계가(담요의 세계가) 입체의 세계로(일흔여덟 개의 지구로)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 새로운 “랜드”에서 한없이 놀고 싶다. 책장을 덮으면 “꼬깃꼬깃”한 내 생활이 보일까 봐 두려워하며. — 윤성희(소설가)

목차

1부 겨울밤은 투명하고

샤이니 샤이니 퀵, 퀵―유니콘의 경우
봄밤―썩어 가는 목련 꽃잎의 경우
겨울밤은 투명하고 어떠한 물음표 문장도 없죠―이중국적자의 경우
하얀 앙고라 털이 섞인 스웨터를 짜 줄게
다이알 비누로 목욕시킨 마론 인형의 냄새같이
나쁜 너
빌리지의 뾰족한 소녀와 브렌따노 보이
내 우주의 삼바 축제
연어알 유희
화성인 2인조
가정식 ‘밤의 은빛 머플러’를 위한 레시피
버블버블랜드의 추잉
CNMG(Cubes National Mars Graphics)에서 보내온 열두 번째 메시지
―Peace-9-10-1 \”달빛과 별빛은 우리에게\”

2부 랜드 하나리

빨간 밭
뭉게구름은 침묵을 연주하고
랜드 하나리의 단풍 이야기―1/5
랜드 하나리에서의 산책―2/5
랜드 하나리의 ‘함부로’―3/5
랜드 하나리에서 오리들의 갸우뚱 피겨스케이팅 대회―4/5랜드 하나리에서 피에路의 피에로―5/5
외가
어린 나무
심장―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보라 구슬
심장―세차장의 뱀파이어들
심장―죽은 줄 알았는데 살고 있는 소심한 w양
단정하지 못한 단 하나의 문장

3부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낭만 사회와 그 적들―수선화 화원의 설리번 선생
낭만 사회와 그 적들―낮달들은 잊혀진 별자리를 그리워하고 무당벌레들이 윙윙거리는 오후, 분꽃 정원 십자로에서의 회고담
낭만 사회와 그 적들―파란 별 장군과 군인 아파트 아이
낭만 사회와 그 적들―메리 포핀스 해상에서의 전쟁
낭만 사회와 그 적들―파도바 해부학 극장의 야근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올드밤비’의 마지막 새끼 곰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내 작은 지미니 크리켓에게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어떤 개의 나이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우용’과 101호의 개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얼룩무늬 조로, 웃기지도 않은 웃긴 개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대낮의 사람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철심 교정기의 소녀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린넨 버드 로빈 코코아 그리고, 때 전 사탕 양말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히치콕의 5단 서랍장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베로니카의 손수건과 그노시스의 손수건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조난자의 마지막 기억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어지러운 몇 개의 안부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존 레논의 나날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실로폰 양과 데칼코마니 군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왼돌이 달팽이 심벌즈의 방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저글링의 달인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액자의 세계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하늘 가장자리 나라 구름 퀴즈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팽이의 마음

작품 해설/허윤진
레인보 몬스터

작가 소개

유형진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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