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인재를 기용하여 천하를 얻고 제도를 개혁하여 민심을 얻은 혁신가
부제: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원제 曹操傳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0년 10월 29일
ISBN: 978-89-374-8317-2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812쪽
가격: 35,000원
분야 논픽션
인재를 기용하여 천하를 얻고
제도를 개혁하여 민심을 얻은 혁신가
“천하를 다투는 것은 인재를 다투는 것이다.”
중국 역사학계의 원로이자 조조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대학자 장쭤야오의 『조조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탁월한 인재 등용책으로 난세를 평정하고 천하를 얻은 용인술의 대가 조조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모두 담겨 있다. 조조는 수많은 영웅들이 할거했던 위, 촉, 오 삼국 시대에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며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섰고, 정치, 경제,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후대에는 그의 비뚤어진 성격적 면모만 부각되면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악인의 이미지로 새겨져 있다. 저자는 『후한서』, 『정사 삼국지』, 『자치통감』 등 정통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사료에 근거하여, 조조의 업적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잔인했던 사람됨은 비난하며 조조의 온전한 면모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이를 통해 중국 역사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지니고도 오랫동안 ‘간웅’의 모습으로 왜곡되었던 탁월한 정치가 조조를 다시금 발견한다.
머리말
1장 요동치는 세상
2장 난세의 영웅을 꿈꾸다
3장 진류에서 군사를 일으켜 중원을 장악하다
4장 황제를 맞이해 천하를 호령하다
5장 둔전제를 시행하여 경제적 토대를 다지다
6장 천하를 평정하고자 일어나다
7장 원소를 무찌르고 오환을 정벌하다
8장 적벽에서 패하다
9장 밖으로 변방을 지키고 안으로 권력을 다지다
10장 손권과 유비를 치기 위해 먼저 마초와 한수를 무너뜨리다
11장 손권을 공격하여 북방 진출을 저지하다
12장 농을 차지한 데 만족하고 촉을 포기하다
13장 위나라를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다
14장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제거하고 위, 촉, 오 삼국정립을 확정 짓다
15장 사회가 안정되면 예법으로 교화하고 혼란하면 형법으로 통치한다
16장 지략 있고 용맹한 인재를 기용하여 천하를 얻다
17장 조세 제도를 개혁하다
18장 풍속을 바로잡고 교육을 제창하다
19장 중국 문학사의 새로운 경지에 이르다
20장 다재다능하고 간교하다
21장 집안을 다스려 왕조의 기반을 닦다
22장 조조를 논하다
참고 문헌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간웅’이 아닌 ‘혁신가’ 조조를 바로 보다
조조는 후한 말기 환관 조등이 양자로 들인 조숭의 아들이다. 권세 있는 가문에서 자라난 조조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효렴으로 추천되어 낙양 북부위에 임명되었다. 위(尉)는 궐문 수비를 하며 치안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환관의 숙부가 야간 통행금지 규정을 어기자 조조는 가차 없이 그를 죽여 버렸고,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조조가 크게 주목 받는 계기가 된다. 이렇듯 조조는 낮은 관직에서도 세도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폐단을 바로잡으려 진언하며 혁신을 이룬 정치가의 기백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몇 차례 굴곡을 겪으며 자신의 담력, 식견, 능력을 세상에 드러낸 조조는 나이 서른넷에 도위에 임명되면서 본격적 뜻을 펼쳐 나갔고 동탁을 토벌하면서 시작된 그 이후의 행보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조의 독특한 성격과 전쟁터에서의 드라마틱한 사건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널리 회자되었지만 정작 극화된 존재로서가 아닌 실제 인간으로서의 조조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중국 역사학계의 원로로 주로 삼국 시대 연구에 매진하며 여러 굵직한 저서들을 남긴 장쭤야오는 조조 사후 여러 시대를 거치며 계속해서 엇갈렸던 평가들을 모두 되짚어 보면서 좀 더 객관적인 모습의 조조를 재현해 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그의 장단점과 사상을 자세히 분석한다.
① “천하의 인재들이여, 나에게로 오라”
조조는 인재 기용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조조가 성공한 것도 적절한 인재를 제때 기용한 데 크게 힘입었다. 조조는 바른 생각으로 인재를 부리고 나아가 지력과 용력이 뛰어난 인재를 기용한다면 결국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재 한 사람을 얻을 때마다 크게 기뻐했다. 이렇게 모은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낼 것을 독려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도 귀담아 들었으며 그들이 뛰어난 계책을 내놓으면 후하게 포상했다. 이는 조조의 신하들을 비롯하여 사회 전체를 고무시켰고 신하들이 조조를 믿고 따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조조가 인재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재능’이었다. 직무에 맞는 개인의 장점과 특징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그 외의 사람됨이나 직무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단점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조조가 인재를 모으려 발표한 「구현령」과 「취사물폐편단령」, 「거현물구품행론」 등에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품행이 바른 인물이 반드시 진취적인 것은 아니며, 진취적인 인물이 반드시 품행이 바른 것은 아니다. …… 한 개인에게 단점이 있다 하여 등용하지 않을 수 없다. 담당 관원이 이런 이치를 냉정하게 헤아린다면 내팽개쳐져 있는 인재는 없을 것이고, 일을 못 해 관직이 폐지되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 「취사물폐편단령」
나라와 고을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이 적음보다 평등하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보다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 이제 백성들에게 1무(畝)에 네 되씩 전조를 걷고, 가구당 명주 두 필과 솜 두 근만 징수하라. 이 밖에는 마음대로 더 걷을 수 없다. 각 고을 수령들은 확실히 살펴 호족들이 숨기고 조세를 내지 않거나, 힘없는 백성에게 전가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억겸병령」
왜 다시 조조인가
조조는 이렇듯 뛰어난 정치가이자 경세가, 문학가였음에도 의심 많고 잔혹한 성격과 행동으로 역사상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조조는 사람들에게 덕망 있는 유비를 공격하는 힘 있는 악인으로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그 이미지가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지』 관련 저서들이 꾸준히 읽히고 조조의 리더십이 주목 받기도 했지만, 정작 조조 생애의 다양한 면모를 모두 아울러 제대로 평가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조조가 한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역량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되며, 그가 보여 줬던 단호한 결단과 혁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인재 포용은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조는 이런 역사의 풍랑을 무사히 건넌 건장(健將)이다. 그는 출발은 미미했지만 역사가 부여한 기회를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이용해 농민 봉기를 진압하고, 군벌 간의 혼전을 거치며 세력을 키웠다. 비록 통일을 완성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지만, 늘 성공을 이룬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조조는 최고 성공자임에 분명하다. 그는 시대 조건에 적응했고, 나아가 자신의 편에서 역사를 새롭게 썼다. 전마(戰馬)를 타고 전쟁터를 누비며 지혜와 사술(詐術)을 두루 써 천하를 자기 자손에게 넘겨주었다.
조조는 처하는 순간마다 세력을 키우고자 노력했으며, 현실과 역사의 경험적 교훈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사상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은 비록 처음에는 조조를 욕하지만, 결국에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며 사상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본문 중에서